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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06. 2022

작전 시작한다!

Feat. 무지개다리

https://brunch.co.kr/@jsmbja/556

영어학원을 다니는 딸아이가 요새 즐겨 부르는 동요가 있다.


I can sing a rainbow! sing a rainbow!


학원에서 배웠다고 한다. 평소에 색칠공부를 하거나 어떤 것을 꾸며야 할 때 무지개 빛깔을 선호하는 딸에게 아주 찰떡인 노래네. 하며 딸의 무한반복 노래를 듣다가 같이 부르기도 하다가 장난도 치다가 갑자기 마음이덜컹 내려앉았다. Rainbow.. Rainbow.. 무지개.. 무지개..



2022.6.2. 방온이(원래 키우던 방울토마토 애칭)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이었다. 내 팔정도 길이의 방온이는 친정엄마 화단에서 크던 방울토마토 모종 중에 가장 빠른 성장을 보여 우리 집으로 입양 온 녀석이었다. 엄청난 생명력으로 화단이 아닌 베란다라는 안 좋아진 환경에서도 키가 쑥쑥 크던 방온이는 어느 순간 자라지 앉았다. 원줄기가 해를 따라 한쪽으로 휘기 시작하더니 그 상태로 멈춰버린 것이다. 꽃도 피지 않고, 키도 크지 않는 상태로 내 걱정이 나날이 짙어지던 어느 날, 친정엄마의 제안으로 다시 화단으로 돌아갔다. 방온이를 데려가신 엄마는 화단에서 꽃이 핀 다른 방울토마토를 가져다주셨고, 한동안 나는 마음을 주지 못했다. 베란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지만 나의 눈길이 가장 짧게 머무는 이름도 없는 새 방울토마토.


그렇게 방온이에게 주던 마음을 다른 화분들에게 더더더더 쏟던 어느 날. 우리 집에서 친정엄마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던 중 물었다.


"엄마 우리 집에 있던 방울토마토는 살았어?"

"아니 그냥 뽑아버렸어."

"..."

"키도 안 크고 꽃도 안 피는 게 곁가지가 자꾸 나오길래 그냥 뽑아버렸지"

"..."

"왜?"

"속상하다.."


진짜 속상했다.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다니. 요새는 화분 분갈이도 하고, 열매도 맺고, 새로운 식구를 들이느라 많이 생각은 못했지만 그래도 새로 온 방울토마토가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열매를 못 맺고 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간혹 생각은 났었는데. 침울해진 내 표정을 보고 친정엄마께서 물으셨다.


"왜? 속상해?"

"속상하지.."


흔히 키우던 반려동물이 생을 다하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한다. 그러면 식물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인터넷에 검색해봤더니 많지는 않아도 반려식물에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반려식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쉽게 들였다가 보냈기에 미안하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베란다를 다 채우고도 넘칠 만큼 주었으니 방온이에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방온아 고마웠어. 엄마 화단을 볼 때마다 널 기억할게.
그곳 무지개다리에서는 꽃도 활짝 피고 방울토마토도 주렁주렁 맺으렴.
안녕. I can sing a rainbow! I can sing a rainbow!
 


방온 이를 마음속에서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친정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화단임에도 불구하고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키만 쑥쑥 크고 꽃만 계속 피고 지고 하던 방울토마토 묘목에서 토마토가 열렸다는 소식이었다. 우와! 신기했다. 사실 학교 텃밭에서는 이미 주렁주렁 넘치게 달린 것을 보았기에 특별한 것도 없었지만 내가 방울토마토를 키우다가 실패하고, 새로 들어온 묘목과 정을 붙이던 중이라 그런지 더 놀랍게 느껴졌다. 친정엄마는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는 우리 집 방울토마토가 생각나셨는지 사진 속 묘목에 토마토가 열개 이상 달리면 가져다주신다고 했다. 하지만! 실패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 방온이처럼 꽃이 안 핀 것도 아니고 꽃은 계속 피고 지고 있으니 이제 내가 진짜 토마토를 열리게 하리라!


출근해서 일을 한바탕 하고 점심 먹고 와서 비장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검색 실시!


방울토마토 인공수분!


바깥에서 키우는 방울토마토들은 자연바람에 흔들리거나, 꽃과 나비가 와서 수분을 해주지만 베란다에는 방충망 때문에 바람이 잘 들지 않을뿐더러 꽃과 나비는 들어올 수가 없으니 키우는 사람이 인공적으로 수분을 해주어야 한다. 인공수분은 사실 강낭콩의 꽃이 활짝 피지 않고 봉우리가 터질듯한 모습에서 시들길래, 이유를 찾아 수많은 블로그를 헤매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검색을 해보니 세 가지의 방법이 나왔다. 

첫째.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살랑살랑 흔들어준다.(이때 원줄기가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둘째, 꽃이 피면 살살 만져준다. (꽃송이 안 떨어지게 조심!)
셋째, 면봉으로 꽃수술 있는 곳을 톡톡 쳐준다. (마치 나비와 벌이 건드리듯이.)

오호! 그래~? 좋았어! 오늘부터 시작한다! 항상 저녁 먹고 책 한 권씩 읽어주고 아이들이 원하는 만화를 하나씩 보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을 이용해 물을 주곤 했다. 이제 물 주러 나가서 물 주기 전에 저 순서에 따라 시도해봐야겠다. 살랑살랑 흔들어주고, 꽃송이를 만져주고, 면봉으로 톡톡톡 건드려주기. 하지만 한편 너무 걱정이다. 난 식물을 아직도 잘 못 만진다. 특히 손으로. 숟가락이나 지지대로는 만지겠는데 손으로 만지면 뭔가 견딜 수 없는 오그라듬이 있다. 피부에 무언가 날듯한 그런 불안한 기분이랄까. 굳이 식물이 아니어도 물만으로도 나의 손은 습진과 포진으로 난리난리인데, 식물을 맨손으로 만지면 더 안 좋아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아마... 두 번째 방법은 못하지 않을까. 하지만 모든 건 해봐야 하는 법!


오늘부터 방울토마토 열매 맺기 작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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