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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04. 2022

어느 날, 녀석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1추2추3추4추5추야 반가워

https://brunch.co.kr/@jsmbja/582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을 보여준 바질이를 유심히 보다가 깜짝 놀랐다. 키만 쑥쑥 큰 줄 알았더니 그만큼 뿌리도 깊게 내려 화분을 탈출한 것이 아닌가. 그동안 위에서만 볼 줄 알았지, 미처 밑을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먹었다. 바질이를 분갈이 해주기로. 그런데 분갈이해주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수확. 수확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지만 단 몇 장을 따도 수확은 수확이니 큰 맘먹고 바질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 장, 두장, 세장, 네 장, 다섯 장, 여섯 장의 잎을 땄다. 그런데 역시 처음은 서툰 법이다. 첫 장을 딸 때 너무 긴장을 해서 손이 떨렸는지 원줄기에 생채기가 났다. 윽. 내 마음에 상처가 난 듯 속이 상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더 신중히 분갈이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빈 화분에 배양토를 채우고 가운데를 푹 파서 공간을 만들고 나니 또다시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바질이를 기존 화분에서 잘 꺼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혹여나 정석이 아닌 분갈이에 적응 못하고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양 어깨를 짓누르는 듯 느껴졌다. 하지만 칼을 뽑았으면 두부라도 잘라야지! 하는 심정으로 과감하게 숟가락으로 화분 가장자리를 푹 팠다. 첫 숟가락질에(삽질 아니고 숟가락질) 뭔가 덜컹 걸려서(아마 잔뿌리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흡! 하고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지만 절묘하게 그 순간! 언젠가 친정엄마가 잔뿌리는 일부러 뽑기도 한다고 말씀해주신 게 떠올랐다. 그래서 과감히 가장자리를 빙 둘러가며 푹 푹 푹 파니 화분에 딱 붙어있던 바질이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기회는 이때다! 녀석을 번쩍 들어 새 화분으로 쑥 집어넣고 미리 담아두었던 배양토를 듬뿍 부었다. 그렇게 조금은 허무하게 분갈이가 끝났다.


큰 화분에 휑해진 바질이를 보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서툰 분갈이의 결과, 화분 정중앙이 아닌 왼쪽으로 기운 모습. 그리고 싱싱한 바질 잎!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바질을 수화한 뒤에는 비료를 줘야 또 쑥쑥 큰다는 글이 있었다. 그래서 얼른 집에 있는 알 비료를 꺼내다가 흙에 얹어주고 물도 듬뿍 주었다. 수확한 바질은 뭘 할까, 하다가 바질 페스토가 가장 많이 보이 길레 시도를 하려 했으나.. 일단 바질 양이 너무 적었다. 그리고 올리브 오일도 없었다. 그래서 바질 페스토는 아니어도 내 마음대로 이것저것 넣어 갈아보자 싶어 집에 있는 호두, 캐슈너트, 자연치즈에 올리브유 한 숟갈 그리고 우리의 바질 잎을 넣어 샥샥 갈았다. 결론은? 아무도 안 먹고 나만 모닝빵에 넣어 샌드위치로 먹었다. 맛은!? 치즈 덕에 간간하니 괜찮았지만, 나중에는 그냥 햄치즈 토스트에 토마토와 함께 곁들이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그 후로 바질이에게 괜스레 더 신경이 쓰였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다행히 녀석은 다시 씩씩 자라고 있다.

아직은 그 전처럼 풍성하지는 않지만 다행히 새 화분에 잘 정착한 기특한 바질이. 엄마가 사랑해!



다음은 아주 오랜만에 근황을 전하는 우리 당근이다. 당근은 처음에 욕심껏 씨앗을 뿌렸고 싹이 많이 났었다. 그런데 공간이 좁아서 그랬는지 씨앗 자체가 튼튼하지 못해서인지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제발 하나라도 살아남아라 하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며 지켜보던 어느 날 새 싹들이 쑥쑥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 너희 둘 다 살아남은 거야!? 이렇게 기특할 수가!


이때만 해도 혼자 하는 분갈이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친정엄마께 부탁드렸다. 언제나 화분 키우는데 슈퍼맨 같은 역할을 하시는 친정엄마! 큰 화분을 가져다가 쓱쓱 분갈이를 해주셨다. 다행히 두 녀석 다 뿌리를 잘 내렸고 지금까지 잘 크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같은 시기에 학교 텃밭에 심은 당근들은 잎이 우리 화분에 있는 두 녀석의 잎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무성해서 이미 몇 개를 수확했고 선생님의 배려로 나도 내 눈으로 직접 주황의 당근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온전한 당근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직접 뽑아왔다며 보여주는데 너무너무 신기했다. 우리 당근이들은 언제나 주황 얼굴을 보여주려나. 바람도 안 통하고 햇빛도 창문을 투과해야 겨우 받을 수 있는 베란다라는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꾸준히 새 싹을 내미는 우리 당근이 들.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을 때쯤에 주황빛을 아주 조금이라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 우리 집 새 식구를 소개하려 한다. 짜잔!

무엇일까요~? 너무 쉬운 질문인가. 모두가 예상하셨겠지만 바로 상추다. 여러 번의 분갈이를 거치며 남는 화분들이 많아서.. 수확을 금방 할 수 있는 어떤 걸 한번 심어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남편이 사무실에 상추씨가 있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얼른 가져오라고 했고, 당직을 섰던 어느 날 상추씨가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상추씨도 당근 씨만큼이나 작았고 이번에도 양껏 심었다. 그런데 결과는 처참했다. 싹이 나기는커녕 상추씨를 먹고 컸는지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강낭콩 잎에서 봤던 아주 아주 아주 작은 벌레가 아닌 새끼손톱만 한 지네 같은 벌레! 으억! 결국 다 퍼내서 버리고 친정엄마 공수로 농약을 뿌렸다. 확실히 농약은 강하다. 농약을 뿌리자마자 벌레는 자취를 감췄고, 상추를 키우고자 했던 내 마음도 스르르 사라졌다.


그런데 어느 날! 정체모를 싹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여섯 개나 얼굴을 내민 것이 아닌가. 혹시...? 상... 추....? 하는 기대감이 불쑥 솟아오르는걸 잠재우느라 애좀 먹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이니 말이다. 그런데 싹의 모양이 심상치 않다. 이건 분명 상추다!!!!!!!!!!!!!! 산삼을 발견한 것은 아니지만 산삼을 찾은 듯 기뻤다. 내가 또 하나의 싹을 틔웠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문제가 생겼다. 손바닥 만한 화분에 여섯 개의 싹이라니. 분명 이대로라면 당근처럼 한두 개밖에 못 살아남을 텐데.. 어쩌지..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겐 슈퍼맨, 아니 원더우먼이 있지! 친. 정. 엄. 마. 아이가 미열이 있어 봐주러 오신 날, 엄마는 냉동식품을 담고 있던 스티로폼에 이렇게 예쁘게 일렬로 상추들을 분갈이해주셨다. 어쩜 이리 귀여울까. 상추를 그렇게 많이 먹었어도 단 한 번도 귀엽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는데, 이 싹들은 보면 볼수록 너무 귀여워서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이다.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의 새끼들은 다 귀여운가 보다. (예외 있음 - 벌레, 곤충, 바이러스 등등 혐오대상)


씨앗 봉지를 보니 8월에 파종한 것은 10월에 수확하면 된 다한다. 진심을 담아 여섯 개의 싹이 다 살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작고 약해 보였던 싹 하나는 이미 스러지고 있다. 우리 6 추이다. 6 추가 뭐냐고!? 상추 분갈이를 한 후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1추 2추 3추 4추 5추 6추. (교행직이라면 아마 추가경정예산을 생각하시겠지만 그거 아닙니다. 우리 상추 꼬맹이들 이름입니다. ㅎㅎㅎ)


상추 꼬맹이들의 폭풍성장을 기대한다.



베란다에 새 식구들을 들이고 난 후 내 삶에도 서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아파트 단지에 촘촘히 심겨 있는 이름 모를 꽃들과 풀에는 관심도 없었고, 혹여나 우연히 보게 돼도 몸서리치기가 바빴는데 요새는 조금 유심히 보게 되었다. 엄청나게 애정 어린 눈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 녀석은 피었구나, 저 녀석은 생을 다했구나 하는 정도의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이나 나뭇잎이 내 몸에 닿으면 섬찟섬찟하지만 예전만큼 짜증이 난다거나 공포심이 일지는 않는다. 엄청난 변화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 스스로 느끼는 성장이다. 이전 글에 한 브런치 작가님께서 자연을 사랑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남겨주셨다. 아직 어른 인지도 자연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댓글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어쩌면.. 진짜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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