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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25. 2022

아름다운 희생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https://brunch.co.kr/@jsmbja/581

베란다를 나서면 가장 키가 큰 방울토마토가 보인다. 아직 토마토가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꽃은 열심히 피고 지고 있고, 키도 쑥쑥 크고 있다. 엄마 집에서 방온이는 어찌 지내려나. 오늘 엄마가 오시면 여쭤봐야겠다. 방울토마토를 지나면 우리 집 미모 담당 란타난이 보인다. 몸집이 점점 커지는 듯한 이 녀석. 수줍게 내놓은 꽃망울이 다 핀, 만개의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 마주하는 그녀의 美의 절정이지만 늘 볼 때마다 새롭고 웃음이 절로 난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내일부터 서서히 지기 시작할 것이기에 오늘 하루 누릴 수 있는 이 사치스러움을 혼자 누릴 수는 없으니 올려본다.

어제의 모습이다. 란타나의 매력은 늘 말하듯이 필 때마다 달라지는 색이다. 봉오리가 맺힐 때에는 노란색이다가 점점 피기 시작하면서 색이 진해지고 많이 폈다 싶으면 다홍색으로 변화한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만개를 하게 되면 노란색과 다홍색이 공존하는, 신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 만개한 모습! 갓 피어난 꽃들은 노란색, 바깥으로 갈수록 그 색이 진해지는 것이 보인다. 어쩜 이렇게 매력적일까. 란타나가 다년생인 것인 참 다행이다. 물론 어떻게 가지를 쳐줘야 할지 아직도 감을 못 잡아서 저번 글에서의 다짐과는 달리 몸집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지만, 내가 주는 사랑보다 더 큰 아름다움을 선사해주는 란타나는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을 때까지 나와 함께 할 것 같다.



란타나를 지나면 그 뒤로 키가 자신을 담고 있는 화분만큼 커져버린 바질과, 어느새 쑥 자란 무명이(무명이 이름을 지어줘야 할 것 같은데, 정체조차 알 수가 없으니..) 그리고 매일매일 새 싹을 틔우고 있는 당근, 그리고 저번 글의 주인공인 강낭콩이 있다.


강낭콩에 꽃봉오리가 점점 많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한번 꽃봉오리가 허무하게 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마음 한편, 꼭 피기를 피었다가 지면서 콩꼬투리도 맺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 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다음 날 퇴근길은 조금 더 설렜던 것 같다. 물론 업무적으로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요구를 받아 화가 났지만 활짝 핀 강낭콩 꽃을 보면 모든 울화가 씻겨 내려갈 것만 같았다. 주차를 하고, 집 문을 열고, 베란다로 향하는 발걸음에 설렘이 뚝뚝 떨어졌다. 방울토마토를 지나, 란타나, 바질, 무명이, 당근, 상추에게 인사를 서둘러 건네고 도착한 강낭콩 앞자리! 두 근 두근두근두근.


"..."


한숨이 흘러나왔다. 생생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꽃봉오리들은 쪼그라들어 시든 모습이었다. 대체 왜 이럴까. 왜 피지 않는 걸까. 이 아이들은 이미 꽃봉오리가 터져서 꽃잎들을 활짝 피기만 하면 될 상태였는데, 왜 활짝 그 모습을 피어내지 못하는 걸까. 영양제는 이미 한병 다 먹어서 한 달이 지나지 않으면 더 주지도 못하는데, 물이 부족한가, 역시 직접 받는 햇살이 아닌 베란다 창을 투과한 햇빛을 받아서 그런가, 바람이 안 들어서 그런가. 대체 뭐야! 속상한 마음이 울컥울컥 솟아올랐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시든 꽃봉오리 속에서 무언가 보였기 때문이다.  

콩 꼬투리를 본 적이 없는 내게는 시든 꽃봉오리의 모습만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받침과 봉우리 사이에 저건 줄기가 아니었다. 바로 콩 꼬투리였다. 꼬투리~~~~~~~~~~~~~~~~~~~~! 소리 질러~~~~~!

우와 세상에나 진짜 꼬투리가 열린 거야!? 드디어 콩이 열리기 시작한 거야!? 이게 웬일이야!!!!!!!!!! 이미 콩을 수확해본 수많은 블로거들의 기록을 보며 강낭콩은 꽃이 피지 않아도 봉우리 상태애 서도 꼬투리를 맺는다고 해서 살짝 기대했지만, 실제 이렇게 눈으로 보니 너무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엄지손톱만 한 콩 하나가 쑥쑥 커서 엄청나게 큰 잎사귀들을 내놓더니 꽃봉오리를 맺고 꼬투리까지 만들어내다니, 정말 생명이란 신비하고도 강하다는 걸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주체할 수 없이 뛰는 심장을 겨우겨우 가라앉히고 다른 봉오리들은 어떤가 싶어 살펴보니 그동안의 맘고생을 다 보상해주려는 듯 저마다 다 어여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얼굴을 보이기 시작한 봉우리부터 꽃이 피기 직전의 모습인 봉우리까지 하나하나 다 안 예쁜 것이 없었지만, 마지막 사진의 봉우리가 다 열려 이제 꽃잎만 바깥으로 내밀면 되는 봉우리가 가장 예뻤다. 강낭콩은 꽃이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분홍색이구나. 물론 이렇게 한껏 기대감을 심어주다가 저대로 시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내가 또 언제 내 손으로 키워 이렇게 아름다운 식물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조급한 마음은 내려놓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건네니 더 큰 사랑으로 보답받은 느낌이다. 식물들과 동거 동락하며 가장 많이 떠올랐지만 괜스레 쓰고 싶지 않은 단어가 있었다. 바로 "식 집사"라는 단어이다. 내가 심고 물 주고 분갈이도 하고 지지대도 세우고 지지대로 묶고 하니 집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의 마음을 내어주고 벌레에 갉아먹히는 모습에 속상해하고 잘 크는 모습에 기뻐하고 뿌듯해하며 나 역시도 스스로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맞이했기에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교감을 하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려식물"이라는 표현도 썩 내키지 않았다. 너무 무거운 느낌이랄까. 어쩌면 확신이 안 서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마음을 기대다가 어느 순간 싹 치울 수도 있다.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하다고. 아마 강낭콩이 모든 열매를 맺고 시들시들해져서 이제 정말 보내줘야 할 때쯤에 그 정리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오랜 시간을 고수했던 식물을 외면한 시간들. 그 시간이 무색하게 나는 지금 하루에도 몇 번씩 식물들 가운데서 짝사랑에 푹 빠져버린 소녀처럼 기웃기웃 대고 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기록하는 이유는 먼 훗날에도 이 시간들을 추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조건 없이 사랑을 내준 시간들, 그리고 씩씩하고 어여쁜 모습으로 내 사랑을 받고 쑥쑥 자란 식물들의 모습까지.


"란타야, 바질아, 당근아, 강낭아, 그리고 이제 싹을 틔운 상추야. 고마워."


마지막으로 오지라퍼 아줌마가 제안하는 한 가지!
식물의 키가 쑥쑥 커서 지지대에 묶어줘야 할 때, 재활용을 통해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방법 하나!
바로 마스크 끈을 이용하는 거예요.
탄력성도 있고 묶이기도 잘 묶여서 저는 방온이도, 강 낭이도 다 마스크 끈으로 묶어주었었답니다.

(강낭이 사진 속 흰 끈이 바로 마스크 끈! 마스크 버릴 때 어차피 동물들을 위해 - 마스크를 그냥 버리면 바다 동물들 주둥이나 꼬리, 지느러미에 엉키거나, 새들 발에 걸리는 등 동물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힌답니다! - 끈을 끊는데 이제는 한 곳에 모아서 지지대 묶는데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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