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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20. 2022

열릴까 말까

feat. 세 번째 피었다.

https://brunch.co.kr/@jsmbja/580

베란다에 화분을 키우며 적는 여섯 번째 글이다. 글이 쌓일수록 열 편이 되면 대대적으로 퇴고를 해서 브런치 북으로 묶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화도 진저리 치던 나란 사람이 조금씩 자연친화적으로 바뀌는 성장기를 담은 특별한 글 묶음이 되지 않을까.


우리 집에 "미모"를 담당하고 있는 란타나는 이쁨의 최고점을 찍고 다 떨어졌다. 다년생이라고는 하지만 5월에 한번, 6월에 한번 활짝 피었기에 이제 휴식기를 가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녀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성실함을 두루 갖춘 아주 모범 화초였다.

미모를 담당한다고 써놨는데 이렇게 보니까 예쁘지 않다. 사실 씨앗도 맺히지 않고 꽃도 더 이상 안 피는 줄기들은 잘라줘야 하는데 게으른 내가 저번에 시든 줄기들만 쳐냈더니 이렇게까지 몸집이 커졌다.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보다 족히 세배는 커진 모습이다. 꽃들이 다 지고 나서는 친정엄마 댁으로 간 방울토마토와 당근에 신경을 쓰느라 란타나에게는 조금 소홀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준 눈길에 놀라운 모습이 담겼다. 바로.

새로운 꽃송이들이 맺힌 것이다. (아이패드로 찍을 때는 가까이서도 잘 찍혔는데 새로 바꾼 핸드폰은 사용법을 잘 모르겠어서 가까이만 가면 희뿌얘진다. 기계치는 이럴 때마다 슬퍼진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오른쪽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씨앗들이 주렁주렁 맺힌 것. 처음엔 씨앗인지도 몰랐다. 열매인가? 했다가 화초에서 열매가 나올 리가 있나, 싶어서 검색해보니 씨앗이라 한다.

요기도 주렁, 저기도 주렁 열린 데다가 이미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색이 까맣게 변한 것도 있는 걸 보니 열린지는 좀 되어 보인다. 잎사귀가 너무 많아 다 찍을 수 없었지만 세어보니 열개가 넘게 열렸다. 그래서 초보인 나는 또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여기저기 블로그를 뒤적뒤적해보니 란타나의 씨는 초록색으로 열려 커지다가 검으색으로 바뀌면서 쪼글쪼글 해지면서 떨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사진 속 쭈글쭈글한 검은 씨앗은 열린 지 꽤 된 씨앗이다. 쟤가 언제 떨어지나 고대하고 있다. 누군가 화분 밑에 신문지를 깔아놔야 안 잃어버린다고 조언해줬는데 역시나 게으른 나는 매일매일 확인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살펴보니 대부분의 씨앗이 검은색으로 바뀌고, 미모 담당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피었다. 꽃!

만개한 것도 아니고,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역시 꽃은 핀 모습이 참 예쁜 것 같다. 그리고 질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들겠지. 지금까지 그랬듯이. 눈썰미가 있으신 분은 꽃 옆에 씨앗이 검게 변한 것이 보일 것이다. 꽃과 씨앗이 같이 익어가는 모습은 약간 신기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했다. 나에게 이런 소소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란타나를 위해 이제는 게으름을 던져버리고 곧 씨앗도 맺지 않고 꽃도 피지 않을 꽃자루들을 다 잘라내야겠다.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예쁜 모습으로 우리 집 베란다를 지킬 수 있도록.



#2.

6월 16일. 둘째 아이가 열이 나서 출근을 하지 못했다.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 이것저것 하다가 문득 아이 꿈 키트에 들어있던 강낭콩 키우기가 생각이 났다. 배양토와 씨앗, 플라스틱 임시 화분이 들어있어 간단하게 할 수 있겠다 싶어 아이와 심었다. 세 개를 다 심었는데 그중에 하나만 싹이 났고, 싹이 나기 무섭게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지지대가 필요할 정도로 커버렸다. 그래서 지지대를 하나 세우고, 그것도 넘어서서 더 긴 지지대를 세운 지 며칠 만에(and 며칠 전에) 꽃봉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 드디어 나도 열매를 보는 건가? 강낭콩 꽃은 분홍색인가 보다! 하고 두근두근 거리며 요리조리 살핀 지 이틀째. 왼쪽에 보이는 잘 여문 꽃봉오리는 떨어져 버렸다. 정말 허무하게. 사실 강낭콩 성장기를 사진으로라도 기록해두지 않은 것은, 강낭콩에 총채벌레가 생겨 잎사귀가 시들기 시작하면서 약간 흉측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그쯤 되면 시든 잎사귀를 단호하게 잘라냈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벌레들은(진짜 조그맣고 징그러운 총채 벌레) 기어 다니고. 아주 총체적 난국이었다. 살충제를 뿌려야 하나, 농약을 뿌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화단을 가꾸시는 친정엄마에게 상담했더니 다다음날 농약을 가지고 출동하셨다. 그리고 거침없이 농약을 숙숙숙 뿌려주시는데, 걱정도 되고 안심도 되고. (왜냐면 잎사귀에서는 아주 작은 벌레들이 기어 다녔지만 뿌리가 있는 흙 쪽에서는 성충이 보였다.. 으.... 지금 생각해도 극혐) 친정엄마께 그래도 이건 열매가 열리면 먹어야 하는데 농약 괜찮냐고 물으니 "너 마트에서 사 먹는 거 다 이렇게 키우는 거야 이것아"라는 명언을. 아! 그렇네. 역시 초보는 서툴기도 하고 생각이 짧기도 하다.


농약을 뿌린 이후로 성충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잎사귀를 갉아먹고 사는 벌레들은 종종 보였고, 인터넷에서 알게 된 일명 분무기를 이용한 강한 물 뿌리기로 떨쳐내고 있었다. 이런 안 좋은 상황에도 쑥쑥 자라 던 꽃봉오리라서 정말 기뻤지만... 피어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떨어진 첫 봉오리. 너무너무 속상했다. 그러나 다행히 오른쪽에 보이는 꽃봉오리가 쑥쑥 크고 있었고 제발 너만은... 하고 물주는것외에 일절 건드리지 않고 기다렸으나, 오늘 퇴근해서 확인하니 시들어버렸다. 왜 시들었지!? 물이 부족했나!? 아닌데.. 힝..


남들은 그냥 내버려 둬도 콩꼬투리가 주렁주렁 열린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 조급해하는 걸까. 매일매일 확인하니 당연히 성장이 느리게 느껴지는 거겠지. 그리고 열매를 맺고 나면 모든 잎사귀가 시들면서 완전히 보내줘야 한다는데,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침울해지면서도 왜 꼬투리를 못 봐서 안달일까.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여하튼 꽃이 꼭 피어야만 콩 꼬투리가 열리는 건 아니라는 한 블로그의 강낭콩 성장기를 보며 마음을 좀 내려놓기로 했다. (하지만 다이소에서 식물영양제 사온 건 안 비밀ㅋㅋㅋ이런 이중적인 마음이란 ㅜㅜ) 꽃이 한송이라도 피거나, 꼬투리가 열릴 그날, 강낭콩에 대해 또 한 편의 글을 쓰고자 한다. 그날이 제발 오기를.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너무도 자주 들은 명언을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독촉한다고, 애태운다고 될 것 같았으면 아마 진즉에 되지 않았을까? 기다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건 아직 무언가 이루기에 때가 안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독촉하지 않아도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은 란타나를 봤으면서도 깨달음이 늦었다.)


식물을 키우며 나의 육아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아이에게 내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할수록 나도 알지 못하게 어떤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방울토마토야 열려라. 콩꼬투리야 열려라. 하는 것처럼 영어학원 다녔으니 영어로 말 좀 해봐, 책을 5년 넘게 읽어줬으니 남다른 문해력을 보여야지.라고 말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는지 아닌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으니 식물이나 너무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나 독촉하지 말고 속이 타들어가도록 너무 애태우지 않으려 한다. 나의 최선을 다하고(최선이라고 써놓으니 좀 부끄럽지만) 기다리다 보면 알맞은 때에 어떤 결과가 나올 테니.


#란타나 #강낭콩 #꽃봉오리 #피어라 #콩꼬투리 #씨앗


#란타나 #강낭콩 #꽃봉오리 #피어라 #콩꼬투리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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