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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22. 2022

너를 보내며

Feat. 두 달 여정의 소회

https://brunch.co.kr/@jsmbja/599

강낭콩 : 2022. 6. 16. - 2022. 8. 21.

긴 휴가를 다녀오며 가장 걱정되었던 건 바로 식물들이었다. 엄마가 하루 들러 물을 주셨다고는 했지만 매일매일 물을 주다가 갑자기 3일에 한번 주는 꼴이 되었으니 과연 잘 버티고 있었을까, 햇빛이 너무 강한데 급격히 마르고 있는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짐 정리를 하고 베란다로 향했다. 다행히 엄마의 손길로 다른 아이들은 멀쩡해 보였다. 나의 강낭콩만 빼고.


휴가를 떠나기 전 이미 죽음의 길로 들어선 강낭콩은 말 그대로 다 죽어있었다. 사실 줄기는 아직도 푸르렀고 잎사귀들만 다 바삭바삭 마른 상태였기에 완전 생명이 다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실상 열매들도 마르기 시작했기에 소명도, 남은 생도 끝이 보인다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


참담한 마음으로 잎사귀 색깔과 비슷해진 강낭콩을 급하게 수확했다. 첫 수확이었다.

가장 빠른 성장과 튼실한 모습을 보였던 꼬투리는 안에 네 알의 설익은 콩을 품고 있었다. 수확은 내가 했지만 꼬투리를 여는 것은 딸에게 부탁했다. 딸은 신나서 열었고 콩이 네 개나 나왔다며 좋아했다. 평소에도 콩을 좋아하는 딸은 한 손의 손가락 개수만큼도 못하는 네 알의 콩을 밥에 퍼주자 마자 쏙쏙 빼먹었다. 나도 한 알 맛보고 싶었는데.. 그렇지만 딸의 한마디에 아쉬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엄마! 진짜 맛있어!


다음날, 사흘 만에 집에서 청하는 잠인데, 드디어 남편의 코골이에서 벗어나 꿀잠을 잘 수 있는 기회인데, 꿈이 너무 뒤숭숭했다. 꿈속에서 나는 코로나에 반복적으로 확진되고, 누가 나에게 뭘 준다고 하고(?), 맡겨 놓은걸 달라고 독촉받고 하나같이 너무 정신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거의 10시간을 내리 잤지만 10분도 제대로 못 잔 느낌으로 부스스 눈을 떠 식물들에게 안부인사를 하러 갔다.


베란다로 나서자마자 보이는 나의 강낭콩. 그리고 다시 색이 바래버린 꼬투리들. 때가 되었음을 알았지만 하루라도 미루고 싶었던 마음이 차분해지며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딸! 아들! 이리 와 봐!

아이들을 불렀다. 영문도 모른 채 베란다로 소집된 아이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오늘 강낭콩 수확을 할 거야. 어제는 엄마가 땄지만 오늘은 너희들이 따 보자!"


아이들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평소에는 식물들 앞에 쪼그려서 한 문장 이상을 말하면 눈빛에 점점 초점을 잃어가던 녀석들이 손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소리에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며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구나, 하는 마음과 아직은 나의 이런 복잡한 심경을 공유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현실이 동시에 느껴졌다.


꽃봉오리가 맺히기 전부터 강낭콩을 동생과 심었으니 수확은 꼭 내가 먼저 해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받은 딸은 그동안 오래 벼렸다는 듯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꼬투리를 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지! 요령도 없이 의욕과 힘으로만 하려니 그게 쉽게 될 리가 있나! (반전은 이렇게 말하는 나도 처음에 너무도 강하게 매달려 있는 꼬투리에 흠칫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딸은 포기하지 않았다. 퍽! 퍽! 몇 번의 콩 줄기와의 줄다리기 끝에 손에 꼬투리를 쥐었다. 그리고 뒤이어 아들도 수확 성공! 총 6개의 꼬투리를 수확했다. 조금 더 익었으면 더 콩들이 실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헤어짐이 아쉬웠던 나의 미련이었기에 더 이상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문득 내가 강낭콩 꼬투리 열렸다고 한 지인에게 자랑스럽게 말했을 때 그 지인의 반응이 떠오른다.


"그거, 실제로 열어보면 콩이 없을 수도 있다는데 진짜 열렸어요?"

"네! 딱 꼬투리를 만져보면 콩이 있는지 없는지 느껴져요."


진짜였다. 꼬투리가 얇은 것은 아니었지만 콩 역시도 그 존재감이 약하지 않았기에 꼬투리가 점점 커갈수록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껍질만 있는지, 콩이 들어있는지. 비단 콩에서 그치는 이야기일까. 어쩌면 나라는 사람도 어떤 부분에서는 가득 채워져 있고, 다른 부분에서는 아무리 비어있지 않은 척을 해도 껍질만 있다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정확해질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인간을 대할 때 정직하게 살고 싶고 그래야 한다고 배워왔지만, 어느 순간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워 껍질만 키우는데 집중한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생각보다 질긴 꼬투리 껍질을 열심히 깠다.

개중에는 잘 익은 콩도 있었고, 아직 익어가던 콩도 있었고, 몸집을 채 불리지 못한 채 이제 막 탄생한 듯한 모습의 콩들도 있었다. 총 9개의 콩이 수확되었다. 어제 4개까지 합치면 12개. 두 달간 마음을 다해 키운 것 치고는 수확이 너무 소소해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아이들에게 꼬투리를 따고, 열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 주었으니 만족한다. 게다가 늘 느껴왔듯이 콩 한알이 지지대 두 개를 필요로 할 만큼 쑥쑥 자라 잎사귀를 사정없이 갉아먹는 벌레의 습격도 이겨내고 꼬투리를 7개나 맺은 건, 정말 생명이기에 할 수 있었던 위대한 여정이 아니었을까.


평소에도 콩을 좋아하지만 엄마가 키운 콩이라며 더 빨리 먹어보고 싶다는 딸의 성화에, 저녁을 치킨을 시켰음에도 밥을 안쳤다. 콩이 너무 작아서 불려서 밥에 넣으면 더 탐스러워지려나 하는 생각에 검색해봤지만 그냥 넣는 거라 길레 그냥 넣었고, 크기가 더 작아지긴 했지만 애정이 많아서였을까, 너무도 맛있어 보였다.

(한 가지 더 말해보자면 성격 급한 우리 딸이 익히지 않고 한 알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그래도 되는지 검색해보았는데 강낭콩은 생으로 먹으면 독성이 있다 하여 급하게 말렸다.)

치킨을 배부르게 먹었음에도 콩의 존재를 잊지 않고 콩만 가져다 달라는 딸의 아우성에 밥도 먹을 겸 퍼갔더니 곧 딸 손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쏙쏙 쏙쏙! 안돼~~~~~~~~~~! 이번에는 나도 먹어볼 테다~~~! 생각지도 못한 콩 사수를 위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콩을 전혀 먹지 않는 아들에게 하나라도 먹여보겠다는 엄마의 마음도 보태져 딸을 온몸으로 막아섰다.(ㅋㅋㅋㅋㅋ 이 무슨..ㅋㅋ)


아들이 꺼낸 가장 잘 익은 콩 하나와, 가장 익지 않았던 시퍼런 콩 두 개는 그렇게 나와 아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딸의 아쉬움이 표정에서 가득 드러났지만 여하튼 키운 사람은 나인데 나도 하나 먹어봐야 하지 않은가. 그 와중에 자기가 수확한 콩도 안 먹겠다는 우리 아들에게 콩 한번 먹여보겠다고 이거 먹으면 영상 틀어줄게.라는 딜을 한 나란 엄마. 참 애쓴다. 우리 아들은 영상을 보기 위해 억지로 입에 콩을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표정이 애매해서 "맛없어?"라고 물었더니 "맛이 없는데 맛이 있어"라는 희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오~~ 좋아... 강낭콩 한번 더 키워? (아서라..)



수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긴 강낭콩 키우기. 아마 내가 모를 뿐 강낭콩에게도 성별이 있을진대 지금까지도 모르기에 내 멋대로 "그"라고 칭해본다. 그의 모든 것을 내 멋대로 가져가고 이제 진짜 이별을 해야 할 순간. 마지막 사진을 찍어보았다. 인간의 영정사진과 빗대기에는 너무도 그 존재가 미약할 수 있으나, 그래도 두 달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연애하듯 얼굴을 마주했던 존재이기에 고마운 마음과 이제는 그럴 수 없기에 더 아쉬운 마음을 담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본다.

텅 빈 화분을 보며 마음이 휑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노는 거실에 들어와 딸과 대화를 시작했다. 


"딸, 우리 콩 몇 개 땄지?"

"9개"

"어제는?"

"4개"

"그럼 총 몇 개?"

"열 두 개, 아니다 열세 개"

"맞아, 사람으로 치면 한 명의 엄마가 열 세명의 아이를 낳은 거야."


비유가 너무 충격적이었나. 딸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사람으로 치면 그렇다는 거지. 우리 강낭콩 키웠던 화분에 뭐 심을까?"

"딸기!"

"응...?"


베란다의 가장 왼쪽 끝을 담당했던 나의 강낭콩. 너를 보내며 생각한다. 앞으로 네가 머물렀던 화분에 어떤 생명체가 뿌리를 내리듯 한동안은 너를 잊지 못할 것이라는 걸.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하루하루 신기해했던 날들도, 잎사귀를 갉아먹는 벌레들을 손으로 일일이 죽여가며(닦아내며) 스트레스받던 날들도, 첫 꽃봉오리와 첫 꼬투리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기쁨도, 그리고 마침내 목적을 이룬 오늘 까지도. 


이렇게 적어보니 내가 주었던 마음만큼이나 많은 것을 받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 진짜 인간 외의 다른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근력이 생긴 것도 같다. 이 기쁜 변화가 오래오래 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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