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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29. 2022

[프롤로그]놀이터 벤치가 싫은 아줌마

엉덩이가 떨어질랑 말랑

오늘도 놀이터에 입장도 하기 전에 저 멀리 보이는 벤치들을 보며 한숨을 쉽니다.


하필 왜 저기일까

놀이터를 두르고 있는 이름모를 식물들, 그 뒤로 펼쳐진 잔디밭, 듬성듬성 심겨져있는 키큰 나무들. 다 저에게는 피하고 싶은 존재들입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왜 이렇게까지 된건지 모릅니다. 그저 저는 초록을 띠고 있는 생명체들이 싫었고, 그들이 품고있는 "벌레"라는 이름의 존재들은 거의 "혐오"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놀이터에 나가서도 벤치에 앉는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혹여나 방심해서 벤치 등받이랑 맞닿아있는 초록생명체가 제 몸에 닿을까봐 무서웠던 것이죠.


그렇지만 이랬던 제가 놀이터 7년차만에 벤치에 엉덩이를 붙여보았습니다. 남들이 보면 "왜 저렇게 앉아있지?"라고 생각할만한 자세지만 저에게는 아주 큰 용기이자 발전입니다. 벤치 바닥을 이루고 있는 여러 줄의 나무중에 가장 끝에 걸터앉는 정도지만요. 이정도의 변화라도 일어날 수 있었던건 다 저희집 베란다를 차지한 바로 그 "초록 생명"때문일것입니다.


너무도 우연히 찾아와 베란다의 아주 작은 한켠을 차지하더니 점점 몸집을 키워 이제는 매트가 깔려있지 않은 절반의 공간을 집어삼킨 초록의 존재들. 그 곳에서 한 생을 다 한 식물도 있고, 아직도 살아내고 있는 식물도 있으며, 베란다가 품기에는 존재감이 너무도 위대해 마음을 다 해봤지만 떠나갈 수 밖에 없었던 식물들도 있었습니다.


남자가 생화다발을 사다줘도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식물이라는 이유로 진저리를 쳤던 20대를 지나 절대 우리 집에는 식물을 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어버린 30대가 이제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에 만난 초록생명들 덕에 정말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벌레때문에 기겁한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이별을 할 때마다 가슴 한 가운데가 뻥뚫린듯한 허망함도 느꼈고, 새침하게 얼굴을 내민 꽃망울들을 보며 꿈에그리던 이상형을 만난듯 기뻐하기도 했으며, 열매를 맺고 한생을 다한 식물을 보면서는 제 삶을 되돌아 보기도 했습니다.


정말 이럴 줄 몰랐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하루하루 아침에 눈을뜨면 식물들 안부를 물으러 가고, 퇴근하면 가방을 놓차마자 식물들에게 가고, 해가지면 하루도 안빼놓고 물을 주러 나가게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불혹"의 나이를 향해 가고 있는 탓인지, 아이들을 키우며 마음이 조금은 넓어진 덕인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멀었습니다. 여전히 놀이터 벤치는 화단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앞줄 하나밖에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잔디밭에는 아주 큰~맘을 먹고 들어가야하며 아이들이 길가에서 예쁘다며 꺾어다주는 꽃도 100% 기쁜 마음으로 못받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조금씩 배양토라 하더라도 흙냄새에 익숙해지고 피하느라 바빴던 길가의 생명체들도 가끔 한번씩 유심히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근력이 마음에 생겼습니다.


감히 "다른 생명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근력"이라 해보겠습니다. 아주 미약했고, 여전히 불안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저에게 우연히 찾아와 이제는 운명이 될 것 같은 초록식물들과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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