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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Sep 14. 2022

고마운 아재들

강사 양성과정을 들을 때 5분 스피치 시간이 있었다. 모든 이들의 발표가 다 하나같이 멋있었지만 그중에 내 눈에 딱 들어온 스피치가 있었으니 주제가 바로 "공무원 10년 버티는 법"이었다. 실경력으로 따지면 10년은 안되지만 그래도 횟수로는 10년 차가 넘어가는 나였기에 눈이 번쩍 뜨였다. 스피치의 결론은 결국 자신을 인정해주고 격려해준 사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본인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슴에 스멀스멀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나를 버티게까지는 아니어도 한순간 기쁨을 전해주었던 "아재들"이었다. 



초임지에서의 일이다. 계시던 교장선생님이 정년퇴직을 하시고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오셨다. 까만 피부에 호탕한 웃음을 지으시던 술을 좋아하는 분이셨다. 그 분과 근무를 했더라면 이곳에서 조금은 덜 지옥 같은 근무기간을 보냈을 텐데,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느낌이 좋았던 분이다. 


하지만 관운이 없었던 걸까. 그분이 오시고 몇 달 만에 나는 발령이 났다. 아주 먼 곳으로. 발령이 나고 얼마 되지 않아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가고 싶은 기관 있어요?"

"네?"


지금의 나는 그분이 어떤 호의를 베풀고 싶었는지 눈치껏 알 수 있었지만 어리바리하고 그만둘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던 신규의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전화해주려고."

"아..."

"교육청? 학교?"

"교육청에 가고 싶습니다."

"알았어, 내가 지금 당장 전화해줄게!"


저 호언장담을 끝으로 교장실을 나왔으니 진짜 전화를 해주셨는지 안 해주셨는지 모른다. 차후 발령에 영향을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몇 달밖에 보지 못한 나를 위해 본인의 이름을 걸고 어딘가로 전화를 해준다는 마음 씀씀이는 도대체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는 의문이다. 그리고 감사함이다. 공직생활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감사한 기억이다. 



두 번째 발령지에서는 우리 팀을 이끄시던 장학사님이 생각이 난다. 수많은 좋고 나쁜 기억이 있지만 그중에 아직도 선명한 기억은 바로 이것이다. 그 당시 나는 거주지에서 먼 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 근처 관사에 머물고 있었다. 야근이 많았던 부서라 끝나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탈 때면 사방이 조용하고 캄캄한 밤이었다. 그런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장학사님은 때때로 일이 없으신대도 불구하고 나의 일이 끝날 때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려주셨다. 부담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마음에 눈알이 빠지도록 일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먼저 들어가셔도 된다고 말을 꺼내도 그렇게 기다리시다가 결국 나를 관사 앞까지 내려주고 가셨었다. 


그런 감사함을 품고 여러 해가 지나 서로 다른 곳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문자메시지가 왔다. 퇴직을 앞두며 그동안의 인연에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드렸다. 너무 오랜만이라 죄송하고 그때 그렇게까지 배려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내가 그랬나?"


기억을 못 하시는 걸까, 괜히 끄집어내기 민망하셨던 걸까. 알 수는 없다. 그 이후로는 연락을 못했으니까. 



또 다른 고마운 아재는 둘째 아이 육아휴직 후 복직한 학교에서 만났다. 그 당시 그 학교는 규모가 큰 학교인 만큼 내 위로 층층이 상사분들이 계셨다. 다행히 상사분들도 좋으셨고, 같이 일하는 계원분들도 연령이 비슷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장 즐겁게 일했던 곳 중에 한 곳이다. 코로나 때문에 다 같이 모여 밥 먹기도 조심스러웠던 시기가 조금 느슨해졌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 아주 좋은 일이 생겼고 겸사겸사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1차 술집에서의 거나한 한잔이 끝나고 잠시 쉴 겸 들린 커피숍. 술을 못하지도 않지만 잘하지도 못하는 나는 조금 과한듯한 음주에 정신이 있다가 없다가 있다가 없다가 하는 깜박깜박한 상태로 최고 상사님 옆에 앉아있었다. 눈이 반쯤 풀린 상태로 겨우 정신줄만 붙잡고 있는데 옆에 계시는 최고 상사님의 한마디가 머리에 쿡 박혔다. 


"나는 JA가 너무 예쁘다~"

"(정신 번쩍, 하지만 티 내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발령이 났고 몇 개월이 채 안 되는 근무기간을 뒤로한 채 다른 학교로 갔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다는 신념에 따라 받을까 안 받을까 하다가 받은 전화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입이 방정이었다. 


"안녕하세요."가 먼저 나갔어야 하는데 번호가 없으니 "여보세요"가 먼저 나간 것이다. 아마 그분도 아셨을 것이다. 내 핸드폰에 본인의 번호가 없었다는 것을. 그 당시 핸드폰 하드웨어가 나가버리는 바람에 급하게 핸드폰을 바꾸고 미처 많은 번호를 저장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이것이 진실이라고 한들 그분이 믿었을 리 만무하고 그렇게 어정쩡하게 축화 통화는 어색함으로 끝이 났다. 


나를 그렇게도 예뻐하셨던 그분께 실망감을 안겨드려 죄송한 마음과, 퇴직하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못난 성격이 전화드릴만큼 사교적이지 않아 끝내 인사를 전하지 못한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그럼에도 내가 예쁘다는 저 한마디가 몇 년이 흐른 지금에도 잊히지 않고, 가끔 생각나 모든 걸 다 뒤엎어버리고 싶을 때마다 조금의 용기를 준다는 걸 그분은 알까. 모르시겠지, 모르실 테고 모르 실예 정이고 그 기간은 영원이겠지.



그리고 최근에 나의 고마운 아재들 리스트에 한 분이 더 추가되었다. 내가 해야 할 마땅한 일(업무)에 과한 격려를 해주신 상사분. 어쩌면 이 모든 기억의 소환의 계기는 그분의 관대함이 내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따뜻함일 수 있다. 


자신이 받은 만큼 자신도 그만큼의 격려를 아래 직원들에게, 혹은 같은 동료들에게 해주고 싶다는 그분(발표자)의 말을 다시 되새겨본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장"이라는 자리에 2년을 넘게 앉아있으며 무조건적인 인정과 격려는 독이 될 수 있으며 상대방이 귀찮고 싫어할지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제일 어려운 관리자의 역할을 몸소 느끼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잘해도 욕을 먹고, 못해도 욕을 먹는 윗자리로 올라가면서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빛이 되는 한마디를 해주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참으로 막막하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마운 아재들이 베푼 따뜻한 한마디를 잊지 않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이제는 모두들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실 텐데 그 앞에 웃음과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기원해주는 것이지 않을까. 끝끝내 전하지 못한 고맙다는 말을 이 글을 빌어서나마 전해보고 싶다. 정말 감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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