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근무지로 옮긴 지 2주가 되었다. 이전의 근무지보다 무려 왕복 40km가 줄어들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새 근무지는 아주 적절한 시기에 나를 찾아온 행운의 장소였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너무 이른 하교시간에 당황스러웠던 나는 큰 마음을 먹고 기존의 근무지 기관장님께 "육아시간"을 이제 오전이 아니라 오후에 시간을 꽉 채워 써야겠다고 말씀드리려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발령이 난 것이다. 다행히 도발령은 나의 생활근거지였다. 하지만 한숨 돌리기가 무섭게 기존의 근무지가 있던 동네처럼 작은 동네가 아니라 그래도 이 지역에서는 가장 큰 도시라 지역발령이 살고 있는 곳에서 완전 반대방향 끝에 있는 기관에 발령받으면 어쩌나 하는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덕분에 최종 근무지가 나올 때까지 이틀 동안 꽤나 세게 속앓이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오! 신이시여!"소리가 나올 만큼 좋은 곳이었다. 왕복 10km밖에 되지 않아 출퇴근시간도 왕복 채 30분이 안 걸렸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다행히 큰 아이는 학원 끝나는 시간에 픽업할 수 있었고, 둘째 아이는 돌봄에 끝까지 남아있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가는데 15분이면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을 근무지에 내가 20분이 넘도록 도착을 못한 것이다. "길치"와 "초행길 트라우마"가 합쳐진 결과였다. 나 스스로의 한계에 더 놀랐던 이유는 "내비게이션"을 보고 가는데도 자꾸 헤매어서 "새로운 경로로 안내합니다"라는 멘트를 계속 듣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와.. 내가 이 정도였나,라는 자괴감이 들 때쯤 도착했다. 사무실에. 그런데 이미 출근시간이 넘어선 상황. 사무실에 도착해 마주한 상급자의 표정은 역시 좋지 않았다. 대놓고 뭐라 하진 않았지만 딱딱하게 굳은 그분의 얼굴 근육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무려 3일이나 근소한 차이로 지각을 했고, 3일 동안 말 그대로 좌불안석의 나날들이었다. 가까워져서 이제 아침시간이 여유 있겠거니 했던 소망은 바사삭 깨지고 나는 결국 큰 결심을 하고야 만다.
아예 일찍 출발하자! 그래서 집에서 40분 전에 출발하기 시작했다. 무려 25분의 여유시간을 두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첫 주에는 출근시간 5분 전에 도착, 이번주는 10분 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달라진 상급자의 얼굴. 얼굴근육들은 아주 활짝 피어 그녀의 환한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하하하.
그리고 어제 드디어, 또 한 번의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집에 가는 길에 네비를 안 켜보기로 한 것. 아무리 길치여도 2주나 다녔으니 나의 기억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출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운전을 시작하자마자 운전대가 저절로 돌아갔다. 오오오 기억나 기억나하다 보니 평소보다 더 일찍 도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오늘 아침 네비를 끄고 출근하는 것에 도전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발해서 그냥 네비를 켤까, 하다가 언제까지 네비에 의존해 살 것이냐, 이 가까운 거리를.. 하는 생각이 들어 끄고 출발! 오오오오 생각나 생각나 생각나, 기쁜 마음으로 거의 다 도착했는데 역시는 역시라고 막판에 길을 잘못 들었다. 당황한 나는 네비를 이제라도 켤까 생각했지만 시계를 보니 조금 여유가 있어 감대로 밀고 나갔더니 도착! 지각도 안 하고 도착! 이렇게.. 무려 2주 만에 출퇴근길을 정복했다. 오예! 정복!
지각한 3일 동안, 3일을 3년같이 느끼며 눈치를 보며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많이 늦은 것도 아닌데 1-2분 정도를 이해를 못 하나?" 그리고 남편에게 물었죠. "아니 내가 운전한 지도 얼마 안 되었고, 초행길이고, 애들 등원도 시키고 오는 거 아는데 1-2분은 이해를 못 하나?" 그랬더니 자칭 슈퍼꼰대인 남편은 이렇게 답을 하더군요. "기본이잖아. 기본. 복무는 기본 아니야?" 남편조차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서운함에 매몰되어 있다 어느 순간, 계속 "기본"이라는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기본. 그렇죠.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건 기본. 이제 출퇴근길이 나름 익숙해져 "기본"을 지킬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하지만 여전히 드는 생각은 저는 상급자가 되면 1-2분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죠. 물론 돼 봐야 알겠지만요. ㅎㅎ
오랜만에 브런치에 돌아왔습니다. 2년 6개월 만에 다른 근무지로 옮기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최근에 브런치를 떠난 기간 동안 제 브런치 방문자수 통계를 보니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지 않았더군요. (원래부터 많지 않아서이기도 합니다...ㅋㅋㅋ) 의아해서 다시 한번 보니 주로 검색을 통해 방문해 주신 분들이 많았고, 거의 "교육행정직"에 관련된 검색어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에 가깝지만 에세이라고 우기고, 에세이지만 업무얘기가 많아 약간 매뉴얼 같은 분위기가 풍길 [어쩌다 부장]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