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Mar 17. 2023

[어쩌다 부장] #2. 복장

세상에서 청바지가 가장 편하다.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장목양말을 신으면 그날 하루를 잘 버틸 수 있다. 그랬기에 그동안 그렇게 입고 다녔다. "내가 JA 같으면 예쁜 원피스 막 입고 다닐 텐데~날씬하면서 왜 그렇게 허벙하게 입고 다녀~?" "JA부장님은 가끔 보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같아요~"라는 말들이 잊을만하면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생각만 해도 불편한 원피스,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히는 재킷을 입고 하루를 보내느니 차라리 그냥 웃고 넘기는 게 더 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분들만 있던 곳에서 벗어나 여자들이 즐비한 새 근무지로 오고 나니 상황이 바뀌었다. 근무 첫날을 빼고 평소 입던 대로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는데, 새삼 같이 근무하는 젊은 직원의 복장이 눈에 띄었다. 교육청에서 왔다는 그 직원의 복장은 말 그대로 진짜 오피스룩. 누가 봐도 예쁘고 단정하니 정말 우리 딸이 늘 노래를 부르던 "예쁜 엄마"의 정석이었다. 흠.. 굳이 신경 쓸 필요 있나 싶었지만, 그날 이후로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옷장에서 정말 오랜만에 재킷을 꺼냈다. 분명 내 옷인데 내 옷인지 낯설지경에 이르러버린 나의 재킷들. 처음 임용되었을 때 아주 부푼 마음으로 큰맘 먹고 샀던 나의 재킷들. 이 대체 얼마 만에 빛을 보는 것이냐. 너무 오래돼서 색이 바랜 것을 제쳐두고, 너무 보프레기가 많은 것도 제쳐두니 남은 것은 단 하나. 그 하나를 입고 출근을 했다. 청바지에 티셔츠에 재킷하나. 재킷하나만으로도 분위기가 확 사는 느낌이었다. 내 느낌이었다.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지만 스스로 뿌듯했다. 벌써 10년 차 공무원인데 이제야 커리어 우먼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젊은 직원의 복장이 점점 더 아름다워지기 시작한 것. 키도 크고 몸매도 받쳐주니 어떤 옷을 입어도 이쁠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더 더 이쁜 옷을 입으니.. 흠흠. 애초에 그런 스타일의 옷은 있지도 않고 엄두도 못 내는 나이지만 자꾸자꾸 눈길이 갔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남자도 남자지만 여자들이 그렇게 쳐다본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예쁘다 예뻐. 이건 젊기도 하지만 역시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라더니.. 



그래서 오늘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아무 일도 없는데, 행사도 없고 손님도 없고. 그런데 그냥 스타킹에 원피스에 재킷까지 아주 풀로 세팅해서 입었다. 그러자 직원분이 오늘 무슨 일도 없는데 꾸미고 오셨냐고. 왜 이렇게 이쁘게 하고 오셨냐고. 딸내미 핑계를 댔지만, 솔직한 마음은 나도 예쁘게 입고 싶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아무리 굶어도 빠지지 않는다는 나잇살에 퉁퉁해지기 전에.


그리고 사실 같이 일하는 젊은 직원의 복장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내 위치가 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처음 임용되어서 몇 년간은 막내여서 뭘 입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그저 나의 젊음이 가장 큰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후로 실장으로 지낼 때에는 남자분들(그것도 정말 투박하게 입고 다니는 분들)과 일해서 복장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직렬도 달라서 내가 실장이라고 앉아는 있지만 상하관계나 직급관계를 따질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곳은 같은 직렬분들과 일할뿐더러 위에 상급자도 있고 아래 하급자도 있다. 상급자는 물론이요 하급자를 의식 안 할 수가 없는 자리라는 의미이다. 이전글에서 말한 복무와 같은 기본사항을 포함에 업무, 인간관계, 센스, 그리고 복장까지. 요즘 세상에 복장 가지고 누가 뭐라고 하겠냐고 하지만, 모두가 예쁜 원피스나 투피스와 같이 단정하게 입고 있는데 혼자 청바지에 티셔츠를 고집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재킷을 든다. 참으로 다행인 건 원피스나 재킷이 옛날처럼 엄청 거추장스럽다거나 불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 또 하나 다행인 건 옷장에서 썩어(?) 가고 있던 옷들이 아직까지는 나에게 맞는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합리화를 시키며 저 깊이 묻혀있던 스타킹도 꺼내본다. 


나의 원피스 복장이 모두에게 낯설지 않을 때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부장] #1. 출근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