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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an 17. 2017

나는 엄마다. 16

사랑하는 다온아.


너는 결국 또 엄마 젖을 거부했단다. 이제는 수유쿠션에만 올려놔도 이미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엄마쪽으로 돌리지 않고 가까스로 돌려서 젖을 입안에 넣어주면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이미 수유쿠션에 대한 나쁜 인식이 생겨버린것 같아 너를 안아서 젖을 물려봤지만


혀로 어찌나 낼름낼름 밀어내던지. 몇번의 실패끝에 엄마는 며칠의 서운함과 상실감이


폭발해 결국 일요일 오후한시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울다지처 잠들었다 깨서 유축하고


또 울다지쳐 잠들었다 깨서 유축하고 .. 그랬단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 한바탕 울고나면 속이 조금은 가라앉았는데 저때는


말을 할 기운조차 없을만큼 먹지도 않고 울었는데도 서러움이 더 커져만갔다.


아빠는 엄마가 단지 직수를 실패했다는 이유로 정신못차리고 울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랑스런 너를 보기조차 싫어졌을 만큼 서럽고 힘들고 했던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단다.


감사하지만 어쩔수 없이 시월드인 시부모님, 창살없는 감옥에 다온이와 함께 갇혀있는듯한


하루하루, 유축한답시고 정말 많이 제한되는 음식들, 다온이 시중드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날들, 그래서 느껴지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과 자존감의 바닥.


이 모든것들이..한꺼번에.. 그래도 반은 강제적으로 아빠는 출근을 하고 다온이를 돌봐야하니


미역국에 밥한술 말아먹고 젖병을 물리고 둥가둥가 하다보니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단다.


물론 아직도 아무도 없는 이 집에 다온이와 단둘이 남겨지면 두렵고 가끔은 내 딸인데도


공포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어제는 처음으로 엄마가 단유라는 단어를 입밖으로 꺼내보았다.


그리고나서 한참을 또 울었다. 원래 엄마 인생에 가장 슬픈 단어는 왕따였는데


이제는 단유가 되어버렸다. 남들 말처럼 유축수유는 뜨신밥이 아닌 찬밥을 데워주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찬밥을 데워주더라도 밥을 주고싶은 엄마의 마음이 커서일까.


50일간 다온이에게 모유준다고 잘 나오지도 않는 젖 짜가며 그렇게도 힘들었으면서


무슨 미련이 남아..이런걸까. 물론 지금은 마사지 효과인지 양쪽 10분씩만 짜도


다온이가 한번먹을만큼은 나온다. 옛날에는 한시간은 짜야 나왔는데..


어떡해야할까. 이런 마음을 단유를 말하는 아빠, 감사하게 이해해주시는 시어머니,


늘 도와주는 친구는 모르겠지. 마사지샵 원장님은 엄마만 포기안하면 결국엔 직수에


성공할꺼라고 하지만 그동안 들어갈 마사지비용을 따지면 차라리 분유수유를 하는게 낫다.


자식을 위해서는 그까짓 돈이 뭐가 아깝냐고 하겠지만 ..


다온이 네가 커서 살다보면 알겠지만 삶에 있어서 돈이 전부는 아니어도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단다. 어떤사람들은 모유를 못준 죄책감에 비싼 분유를 사서 수유한다는데


흠.. 글쎄. 모유를 못주는게 죄책감을 가져야 할 일일까? (그치만 엄마도 그래서 단유를 결심못하는게 함정..)


다온아, 이런 고민들도 나중엔 무덤덤해지고 엄마도 외할머니 할머니처럼


괜찮다는 말을 하게 될까? 외할머니도 외삼촌을 모유 22일만에 끊어버리셨단다.


젖양이 너무 많아서 외삼촌이 감당을 못했다고.. 할머니는 아빠가 다온이 처럼 젖물기를 거부해서


못줬다고 하시더구나. 그러면서 어쩜 그런것도 아빠랑 똑같냐고.


할머니는 지금처럼 자동유축기가 있었다면 아빠에게 엄마처럼 젖을 짜서라도 먹였을까.


외할머니는 그러셨을꺼다. 지금까지도 후회하시는것 보면.


엄마도 지금처럼 양쪽 10분에 다온이가 먹을만큼, 아니 더 나와준다면


계속 유축할 의향이 있다. 젖병 삶는것도 지금껏 해왔는데 뭘..


모르겠다..답이없는 문제구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구나..나라는 존재조차도..


엄마는 또 얼마간을 참다가 또 눈물을 쏟아내게 될까.


언젠가는 다온이를 혼자 봐야한다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해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까.


다온이를 끔직히 사랑해주시는 할머니가 다온이를 키워주시면 좋겠다.


그러면 엄마가 복직해서 퇴근 후에 다온이를 보면 좋을텐데..,


근무할때도 꽤나 힘들어서 왠만하면 진짜 만날 사표생각을 했던 엄마가 복직이 하고싶을 정도면


정말 힘든가보다..


지금 이 순간도 엄마는 누군가 다온이를 봐준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비행기 타고 저 멀리 유럽이나 미국으로. 한달정도. 아니 두달도 좋고 세달도 좋아.


있는 돈 다 가지고서..


이 기록들이 나중에 다온이에게 상처가 될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엄마가 이정도밖에 안되는 걸 어쩌겠니.. 다온이 밥주고 재우고 하다보니


또 유축할 시간이네. 그런데 다온이는 잠에 들지 못하는 구나.


또 다시 불타는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 하다.


엄마는 살고싶다. 행복하게.

온몸으로 다온이가 엄마 젖을 거부한 흔적들..하나도 안아픈데 눈물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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