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다.
“왜 바버가 됐어요?”
질문은 간단한데, 대답은 좀 오래 걸린다.
처음부터 바버를 꿈꿨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아주 먼 이야기도 아니다.
Schorem 브랜드를 처음 봤을 때부터였을까.
그 문화, 그 스타일, 그 태도에 끌렸다.
빌리캣 바버샵이라는 곳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 마초적이고 거친 서브컬처에 더 빠져들었다.
머리 스타일 하나에도 태도가 묻어 있었고,
나는 그게 좋았다.
미국에 오래 있었기에, 그런 문화들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Harleywood Barbershop,
도니 할리—Layrite 포마드를 만든 그 사람의 샵에서 커트를 받았고,
브루클린에서는 Ludlow Blunt에 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다.
그런 경험들이 조금씩 쌓였다.
어디까지나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모든 게 안 되면, 바버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한 구석에 조용히 둔 채로.
한동안은 다른 길을 돌았다.
연극을 전공했고, 배우가 되고 싶었다.
오디션을 보고, 대사를 외우고, 무대에 섰다.
그러다 팬데믹이 닥쳤고, 일상이 멈췄다.
회사도 다녔고, 바리스타도 했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감각은 좋아했지만,
그 감각을 어디에 쓸 수 있을지는 몰랐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모두 헛되진 않았다.
바버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됐다고는 말 못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법, 그 거리감을 체득하는 데는
꽤 의미 있는 경험들이었다.
지금은 바버샵에서 일하고 있다.
내 공간은 아니지만, 이 루틴이 낯설진 않다.
아침엔 커피를 내리고, 기분에 맞는 음악을 틀고,
가위를 들고 머리를 정리하고, 면도를 하고,
마지막엔 따뜻한 타월을 얹는다.
하루의 흐름은 조용하고 단정하다.
손님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온다.
누군가는 중요한 날이고,
누군가는 그냥 이유 없이 오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하루에 잠깐 머문다.
많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채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멋있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 멋져지는 건 더 좋다.
어울릴 만한 룩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그 사람의 분위기, 지금의 표정, 오늘의 옷.
그 상상을 손으로 구현해 보려 애쓴다.
그 과정이 재밌다.
어떤 날은 작은 완성감을 주고,
어떤 날은 다시 관찰하게 만든다.
지금은 내 공간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공간도 상상한다.
크지 않아도 된다.
조용히 앉아 눈 한번 감고 갈 수 있는 곳.
머리는 깔끔하게 정리되고,
쉼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그런 공간.
왜 바버가 됐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어떤 이미지들, 어떤 경험들,
그리고 현실이라는 낱말들 위에서
이 일이 자연스럽게 내 삶이 되었다.
그게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