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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Feb 01. 2024

나의 다이애너, 나의 장미꽃

 안녕, 아주 오래간만에 널 떠올렸어. 갑자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때 있잖아. 정말 엉뚱하게, 무언가 연상시켜 줄 고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툭 튀어나오듯 떠오르는 기억. 너와 연락이 끊어진 지도 오래고, 우리가 함께 어울렸던 어렸을 때 친구들과도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는데, 누군가가 마치 “걔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묻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너의 존재가, 우리가 함께 지냈던 순간들이 와르르르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쏟아져 나왔어. 

 너와 나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어. 친구,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마주치면 인사하고, 부모님들끼리 친하셔서 각자의 엄마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그런 사이. 같은 교회를 다니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꼬박꼬박 일주일에 한 번씩 마주칠 수밖에 없는, 그렇지만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만날 일 없는 그런 사이. 어른이 된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난다면 엄청나게 친한 사이라고 하겠지만, 초등학생에게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사이는 친구라고 하기 조금 어렵지. 그래도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하는 사이라, 엄마의 손에 이끌려서 너의 집에 처음 놀러 갔던 날,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 

 그날 우리 집이 네가 살고 있던 동네로 이사를 했고, 무척 추운 날이었어. 현관문을 열고 나온 너는 환하게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았어. 나는 너의 집 안방에서 너와 함께 이불을 덮고 앉아서 너의 엄마가 구워주는 밤과 은행을 먹고, 너와 네 동생이 함께 쓰는 방을 구경하고, 너와 함께 책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그리고 그날 이후로, 너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이가 되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에서 앤과 다이애너가 만난 날 맹세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처럼, 맹세를 한 건 아니지만 우리도 그렇게 운명적으로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거라고 생각했지. 

 너와 같은 동네로 이사를 가기는 했지만, 내가 이미 6학년이었던지라 너의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진 않았어. 그래도 그건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 우리는 교회에서 항상 옆자리에 앉았고, 주중에도 주일에도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았어. 호출기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니, 각자 집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 놓곤 했지. 다른 학교를 다니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어. 너도 나도 책을 읽는 걸 좋아했고, 글을 쓰는 걸 좋아했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했지. 

 그리고 우린 무엇보다 이야기가 참 잘 통했어. 나는 우리가 ‘영혼이 통하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사실, 그때 영혼이 뭔지도 정확하게 몰랐지만 말이야. 너와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우린 중학교도 서로 다른 곳에 다니게 되었지. 그래도 괜찮았어. 이미 동네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우리는 누가 뭐래도 공인된 단짝이었거든. 어린 왕자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어린 왕자와 장미꽃에 대한 대목을 너에게 쓰는 편지에 옮겨 적어 보냈고, 그 편지의 답에는 ‘그렇다면 나의 장미꽃은 너야’라고 적혀 있었어. 우리는 주로 엽서를 이용했는데, 그때 주고받았던 수많은 엽서와 쪽지들은 모두 버려졌지만 엽서를 가득 채웠던 너의 글씨체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라. 나는 우리의 우정이 이대로 영원할 거라고 믿었어. ‘빨강머리 앤’의 앤과 다이애너가 그렇듯이, 나이가 들어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는 계속 사이좋은 친구일 거라고. 그럴 거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어. 우리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지. 네가 나의 단짝 친구라는 건 내게 너무 기쁘고도 자랑스러운 일이었어. 너는 전교에서 1,2등을 다투는 수재였고, 피아노를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고, 뽀얀 피부에 이쁘장한 얼굴을 가졌고 그 얼굴은 항상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너는 주변까지 환하게 만드는 아이였고, 그런 네가 날 너무 좋아하니까.

 네가 소위 말하는 명문에 합격한 데 반해 내가 입시에 실패하고 그 소문이 빠르게 온 동네와 교회에 퍼지게 되면서, 우리는 멀어지게 되었어.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고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 네가 우리 집 우편함에 넣어놓고 간 편지 속에는, 집에서 울기만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된다고 쓰여 있었어. 너와 친구가 된 이후 처음으로 네 편지에 답장하지 않았어. 몇 주의 시간이 지나 교회에 다시 가게 되었을 때, 나는 네 옆에 가지 않았어. 그다음 주도, 또 다음 주도 나는 맨 뒤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집에 돌아오곤 했지. 너는 나에게 왜 연락을 안 받았냐, 왜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냐, 묻지 않았고, 얼굴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늘 그랬듯이 환하게 웃어 보이기만 했어. 네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볼 때마다 왜인지 나는 더 불편해져서, 너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했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네가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을 하고 나는 다른 지방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면서 우리는 완벽하게 멀어질 수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영혼의 단짝에서 그냥 같은 교회의 동급생으로, 결국에는 그냥 아무 사이도 아니게 되었지. 

 시간이 이만큼 흘러 생각해 보니,  너처럼 좋은 친구를 잃었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야. 그때 내가 너의 연락을 받았더라면, 너의 편지에 답장을 했더라면, 그러지 못했어도 네가 날 보고 웃을 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도 너의 곁에 가서 네 손을 잡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나는 여전히 너에게 장미꽃일 수 있었을까. SNS를 이용하면, 몇몇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보면 금세 너의 연락처와 근황을 알 수도 있을 텐데, 지금이라도 연락을 해 볼까 싶은 순간도 가끔 있지. 하지만, 나는 너의 연락처를 알아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거야. 그렇게 내 마음을 꾸밈없이 온전히 다 보여준, 내 진심을 남김없이 쏟아냈던 친구는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거든. 어느 정도는 진심을 감추고 적당히 벽도 쌓으며 살아가는데 익숙한 어른이 된 나에게,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유치한 표현까지 서슴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친구가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고,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피식피식 웃음이 나. 언제나 어디서나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 나의 다이애너, 나를 장미꽃이라 불러준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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