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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Feb 01. 2024

고장난 수도꼭지

 어릴 때부터 잘 울었다. 혼나서 울고, 싸워서 울고, 화장실 가기 무서워서 울고, 심부름 가기 싫어서 울고,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내 기분이 어떤지 나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주르륵, 눈물부터 흘렀다. 어렸을 때 언니 혹은 친구들과의 크고 작은 싸움에서 나는 늘 패자였다. 상대방에게 뭔가 대응을 해야 하는데, 입을 여는 순간 말이 나오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나와 버리니 이기려야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또 싸움에서 진 게 분해서 운다. 부모님에게 혼날 때도 어김없이 눈물이 나오는데, 그러면 부모님은 또 뭘 잘했다고 우냐며 더 크게 혼내셨고, 나는 서럽고 억울해서 더 크게 울고 악순환이었다. 어찌나 잘 울고 자주 울었으면,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학기말에 편지를 써 주셨는데 거기에는 ‘잘 우는 버릇 고치고...’라고 적혀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에 살았었는데, 집에 가고 싶다고 울고 공부하기 싫다고 울고, 룸메이트가 틀어준 노래가 너무 슬프다고 울고, 너무 자주 울어서 기숙사 친구들이 ‘수도꼭지’라고 불렀었다. 사실, 그냥 수도꼭지가 아니라 고장 나서 새는 수도꼭지 수준이었다. 그렇게 툭하면 울어대는데 그걸 받아주고 친구로 지내 준, 그때의 친구들에게는 참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툭하면 우는 내 모습에 가족들도 주변인들도 참 짜증 났겠지만, 사실 가장 어이없고 짜증 나는 건 나 자신이었다. 아니 왜 지금 눈물이 나는 거야? 아니 왜 이렇게 자주 우는 거야? 아니 드라마 보다 우는 것까진 그렇다 치고 하다 하다 왜 가요순위방송에서 걸그룹이 1위 했다고 우는데 그걸 또 따라 울고 있어? 정말 고장 난 것처럼 자주 터지고 한 번 터지면 멈출 줄 모르는 눈물샘 때문에 나 자신이 제일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쉽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곤란한 사람이었다. 고치고 싶다고 고쳐질 성질의 것도 아닌데, ‘너 그렇게 툭하면 울어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려 그러냐’고 가족들에게 한소리라도 듣는 날엔, 이를 악물고 있다가 방에 가서 혼자 펑펑 우는 것이다. 

 가족들의 걱정과 달리, 사회생활 하면서 눈물 때문에 곤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첫 직장은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이었는데, 지금도 간호사의 업무환경은 무척 혹독하기로 유명하지만 그때는 정말 나오던 눈물도 쏙 들어갈 정도로 척박하고 혹독했다. 며칠 선배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우고 있자니 갑자기 “이제 너 혼자 해 봐라.”하고 환자를 배정받았다. 아니요, 못하겠어요,라는 말은 용납되지 않는다. 발령 난 지 며칠 안된 나에게 신생아 환자가 맡겨지다니, 어렵고 힘든 정도가 아니라 너무 무서웠다. 

 병원의 어느 부서나 마찬가지지만, 아주 작은 실수나 오류로도 환자의 생명이 금세 위협받는 곳이 바로 신생아중환자실이다. 작고 가냘픈 몸에 이런저런 기계들이 연결되어 있는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무서운데, 내가 투입되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환자들이 받아야 할 수많은 처치를 수행해야 하다니, 그것도 8시간 내에 완벽하게 빠짐없이 말이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에 지장 없는 실수를 해도, 혹독하기 짝이 없게 혼이 났다. 잘 몰라서,라는 말은 용납되지 않았다. 환자가 맡겨진 이상, 나는 잠을 못 자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맡은 환자가 가진 질병과 내가 해야 할 처치들에 대해 완벽하게 숙지해야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해지려면 그만큼 충분한 준비기간이라도 주어져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이 그냥 발을 들여놓은 순간 완벽해져야 하는 곳. 그곳은 바로 병원이었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강박적으로 완벽하게 일해야 하는 신생아중환자실이었다. 매일 혼나고, 매일 강박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했는지 실수는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퇴근 후에도 끊임없이 몰려오는 불안감에 부서에 전화해서 “혹시 제가 빼놓은 일은 없었나요?”하고 확인하는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눈물을 흘릴 새도 없었다. 눈물도 적당히 슬퍼야, 그리고 어느 정도 감정이란 걸 느낄 여유가 있어야 나는 거였다. 덕분에 고장 난 수도꼭지는 꾹꾹 잠겨졌고, 살벌하기 그지없던 대학병원을 탈출하고 여러 직장을 거쳐 제법 노련미 넘치는 사회인이 된 지금은 무서운 것도 없고 울 일도 없다. 학교에서 아픈 학생들을 돌보고 처치를 하다 보면, 아프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학생들을 종종 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아유 얘는 뭐 이 정도 갖고 울고 그래.’라고 생각했다가, 이유가 뭐가 되었든 울고 싶으면 울 수 있는 때가 행복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하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고장 난 수도꼭지였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아예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어른의 삶은 다소 푸석하고 생기 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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