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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Feb 01. 2024

응답하라 1988

사실 내게 1988년도는 소환하고 싶지 않은 해이다. 나의 가정사 & 개인사를 구구절절 다 적을 수는 없으나- 어쨌건 나는 소심하고 우울하고  삶에 대해 무기력하고 애정결핍에 시달리던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봤던 건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그저 드라마에 나오는 그 시절의 노래, 뽑기, 티브이프로그램, 풍선껌 속 꼬마 책자, 산울림의 노래 (난 심지어 산울림의 테이프를 듣는 조숙한 국민학생이었다...)등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의 기억을 자극하는 장치들과, 매력적인 캐릭터들 때문일 거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잊고 지냈던 그 시절 이웃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가 3년간 살았던 그 건물에는 세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1층에 우리 집을 포함한 두 가구, 2층에 한 가구가 살았다. 우리 가족은 옆집 사람들과 사이가 각별했고, 옆집 아저씨는 나를 엄청나게 예뻐하셨다. 드라마에 나오는 쌍문동의 마스코트, '진주'처럼 이쁘고 귀엽게 생긴 것도 아닌, 키가 작고 깡마르고 까무잡잡한 외모에 애교도 없던 나를 그렇게 예뻐해 주신 건 아무래도 아저씨는 아들만 둘을 키우고 있었고 심지어 그 오빠들은 이미 사춘기에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여하튼, 옆집 아저씨는 우리가 그 동네에 사는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아저씨 딸 하자!!"를 외치셨고, 나는 그때마다 "싫어요!!"라고 답하고 도망쳤으며, 우리의 그런 밀당을 옆집 아줌마는 늘 웃으며 바라보셨다. 큰오빠가 나보다 6살, 작은오빠가 나보다 4살 많았으니 나와 놀 군번은 아니었으나, 오빠들도 나에게 오락을 가르쳐 주거나 나를 자전거 뒤에 태워 동네를 도는 등, 놀아주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어 늘 집에서 책만 보던 나를 가끔씩 재밌게 해 줬던 기억이 있다. 

 친구도 없고 소심하고 어딘가 불안하고 아팠지만 그걸 누구도 알아채지도 못했던 그 3년,  애정에 목말라 혼자 끙끙대던 그 3년 동안 날 아무 이유 없이 이뻐해 주고 돌봐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웃이란 이름으로... 그 시절이니까 가능했던 일이었지 싶다. 응답하라기는커녕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시려지는 나의 1988년에도, 그런 따뜻한 한 자락의 기억이 있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지금 그분들은 어찌 살고 계실까, 오빠들은 중년이 되었을 테고 아저씨 아줌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을 테지. 지금은 길에서 마주친다 해도 못 알아볼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래도 감사했노라고 인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따뜻한 한 자락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준 이 드라마가 참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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