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책을 받았다. 책 욕심이 많아서 사놓고 읽지 못한 것도 많은데, 이 책만큼은 책 펼치기를 미루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자녀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늘 고민하는 나이기에, 제목의 ‘말공부’라는 부분에서 강하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 대화 방법에 대해서 기술한 부분도 있지만,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다양한 상황에서 학생들과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옮겨 적은 부분이 더 많았기에 이해하기도 쉽고 학생들에게 적용하기도 쉬울 듯했다. 툭하면 “왜~해야 해요?”를 반복적으로 시전 하는 초등학생들에게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그 이유와 근거를 설명하여 학생들을 납득시키는 저자의 대화법은, 아이들이 “왜”를 꺼내기 시작하면 “어른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 좀” 하고 말하고 싶어지는 나로서는 감탄스럽고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읽다가 ‘그 아이 마음이 지옥일 거야’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멈추게 되었다. 같은 반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내 뒷담을 까고 다녀서’ 힘들다는 아이와 대화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아이가 느낄 속상함과 괴로움을 먼저 공감해 주고, 친구를 미워하여 뒷담을 하고 다니는 그 친구도 괴로울 거라는 것을 깨닫도록 대화를 이끌어 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민하는 아이에게 부탁을 한다. 그 친구에게 먼저 인사하라고. 그러면 그 친구가 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거라고. 그 이후에는 그 친구를 선생님이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며 뉘우칠 기회를 주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고,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지까지 표명하는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아마도 이 고민을 털어놓은 아이는 많은 위로를 받고 깨달은 바도 많았을 거다. 하지만, 여기까지 읽은 나는, 떠오르는 어떤 기억 때문에 잠시 책장을 덮고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초등학생 때는 아니고 어른이 되어서 겪은 일이긴 했지만, 나에게도 누군가가 나의 ‘뒷담을 까고 다녀서’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남의 이야기 안 하고 사는 사람은 없을 거다. 좋은 내용이건 안 좋은 내용이건, 두 사람 이상 모여서 이야기를 길게 나누다 보면,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건 어느새 자연스럽게 남의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틀게 되는 것이다. 연예인, 직장 동료, 친구, 가족,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까지...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내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내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지만, 그 아이는 ‘어찌하다 보니’가 아니라 악의적으로 나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함께 어울려 다니던 동기가 네 명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두 명은 나를 투명 인간 취급 했고, 두 명은 나와 평상시처럼 밥을 먹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지만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동기들과 친하게 지내는 선배 두 명이 있었는데 선배 한 명은 내게 쌀쌀맞게 대하기 시작했고 또 한 명의 선배 또한 나에게 굉장히 어색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누군가와 싸웠다면, 아니 하다못해 사소한 트러블이라도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당하는 투명 인간 취급에 괴롭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매일 혼자 괴로워하며 끙끙 앓기만 하다가, 어느 날 용기 내어 동기 중 한 명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내가 뭘 잘못했거나 어떤 문제가 있냐고, 말해주면 고치겠다고. 하지만 그 동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사이좋던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고, 그 누구도 뚜렷한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마주치면 씩씩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 그리고 집에 가면 혼자 엉엉 우는 것뿐이었다. 이유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날 배척하는 사람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그런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인사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괴로운 일이었지만, 굳이 웃으면서 인사를 했던 게 오기였는지 용기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흘렀을까,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던 동기들이 다시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쌀쌀맞게 혹은 어색하게 대하던 사람들도 다시 내게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우리는 다시 밥을 함께 먹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을 치고, 기쁜 일 슬픈 일 나누는 사이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보다 몇 기수 위의 선배를 통해, 동기 중 한 명(나를 투명 인간 취급했던 이들 중 한 명)이 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했고, 나에게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오해한 내용을 사실인 양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이야기했고, 동기들과 선배들 또한 그 동기의 말만 믿고 내게 모질게 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나서서 오해를 풀어준 건지 자연스럽게 오해가 풀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오해했음을 깨닫고 다시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일의 전말을 알고 나니 너무 허무하기도 하고 다들 괘씸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에게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오해하고 일방적으로 따돌리다가, 다시 일방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얼 더 이야기할 수 있으랴. 그들과의 관계를 이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그들에게 따져 묻지도 않고 그들을 멀리하지도 않으며 마음속으로만 차츰 그들과, 특히 그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며, 취업과 결혼 등의 이유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흩어지게 되었고, 지금도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으며 “한 번 만나야지?”라고 인사하지만 만나지 않는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감정이 약간 동요되긴 하지만, 아직도 그녀를 비롯한 그들이 밉거나,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괴로움을 느끼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이 날 외면하는 동안, 꿋꿋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날 보며 과연 미안함을 느꼈을까,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퍼뜨리며 날 고립시킨 그녀가, 과연 날 미워하느라 자신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긴 했을까, 반문하게 된다. 누군가가 할퀴고 간 피부에는 흉터가 남지만, 할퀸 손톱에는 손 한 번 씻고 나면 아무런 자국도 남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