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요 Feb 14. 2024

아버지와 나-2

 이번 명절에도 역시나, 아버지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에 다녀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와 그다음 해까지는 갈 때마다 무척 슬펐고 그리웠고 많이 울었고-작년 봄쯤부터 아버지의 납골당에 가는 것은 내게 버거운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즈음에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를 모두 갖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치료와 상담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내 불안과 우울의 상당한 지분이 나의 가족, 특히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십 대 중반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의 대략 십 년 정도의 시간을, 나는 열등감과 패배 의식과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보냈다. 누가 보더라도 나는, 직장도 다니고 교회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쇼핑을 하고 웃고 떠들고 즐기고, 자기 몫 잘하며 사는 평범한 성인 여성이었다. 우울증이라는 건 24시간 내내 슬프고 비관적이고 못 먹고 못 자고 사회생활도 못하는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다. 나처럼 할 거 다 하면서 속으로는 '나는 언제 죽지? 사는 거 너무 재미없고 지친다. 내일 아침에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 정도는 그냥, 바쁘고 성실하게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우울감이라 생각했다. 밤에 누우면 온갖 좋지 않은 생각들이 나를 엄습해서 새벽 2~3시나 되어야 겨우 잠이 들고, 아침 7시쯤 겨우 일어나 아침식사는 거르고 잠이 부족한 상태로 출근해서 졸음과 피곤을 참고 일하는 생활이 계속되니 늘 피곤과 짜증에 절어 있었다. 입만 열면 튀어나오는 농담과 웃음은, 진짜 즐거워서라기 보단 뾰족하고 날카로운 한 편 쓸쓸하기도 한 내 마음을 감추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도 치료를 받으면서 알게 됐다. 

 

 직장에서 만난, 눈에 뭐가 박혔는지 모르겠는데 자꾸 나를 이쁘다고 하며 졸졸졸 쫓아다니고 좋은 건 다 나에게 주고 싶어 하는 남자와 만나 결혼하며 내 생활은 조금 안정을 찾았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고, 점점 약해지는 아버지를 보며 내 미움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아버지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외갓집에 맡겨져 자랐는데, 외가 어른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외갓집에 맡겨두고 방치한 부모에 대한 상처가 깊었다. 자식이 어떻게 자라는지 신경도 안 쓰다가, 성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자 맡겨 놓은 것처럼 돈을 타다 쓰는 부모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컸다. 부모가 제대로 부모 노릇을 했더라면 내가 이렇게 어렵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내 자식을 정말 잘 키우고 좋은 길로 인도해야겠다,라는 결심을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강압과 교육을 구별하지 못하고 훈육과 폭력을 구별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 줘서 실패가 없이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자녀를 인도해야 한다는 강박이, 바르지 못한 태도와 행동은 때려서라도 교정시켜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이 아버지와 나 사이에 도저히 메울 수 없는 큰 구멍을 만들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 들고 병들어 약해졌지만, 당신이 나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하지도 않는 아버지가 가엽고 안쓰러운 한 편 싫고 불편했다. 좋은 마음으로 친정에 갔다가, 아버지와 싸우고 씩씩대며 올라오곤 했다. 그렇게나 미워했던 아버지였는데,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유지장치들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낫게 주세요, 벌떡 일어나게 해 주세요, 기적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슬픔의 기간이 끝나고 내게 폭풍처럼 밀려온 깨달음-이제 나는 아버지와 싸울 수도, 미워할 수도 없다. 그리고, 제대로 된 화해를 한 적이 없으니 사랑할 수도 없다. 아버지가 나한테 이러저러하게 하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고 악다구니를 써도 한참은 더 써야 하는데, 돌아가신 아버지란 싸울 수도 이길 수도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나는 너무도 괴롭고 억울해 미칠 것만 같았다. 죽은 아버지를 대상으로 싸울 수도 없고 마냥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온전하게 사랑할 수도 없어 나는 여전히 이렇게 힘든데, 혼자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니 편하신가요? 따져 물어야 하는데, 물을 수도 대답을 들을 수도 없다.


-3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와 나-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