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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May 07. 2024

나도 밀알이 될 수 있을까

 짧은 연휴를 이용해서 가족들과 강화도에 다녀왔다. 비록 연휴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기껏 마당도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해변인 펜션을 예약했는데 펜션 밖으로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연휴가 끝나 버렸다. 잔뜩 기대하고 갔던 큰 아이가 도대체 왜 비가 안 그치냐고, 비 따위는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연휴 내내 심통을 내서 쉽지 않은 연휴였지만, 그래도 강화도에 간 김에 2019년에 하늘나라로 간 K오빠의 묘에 다녀올 수 있어 그것만큼은 너무 좋았다. K오빠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가족과 친구 교회 사람들 등등 주변 사람들도 너무 사랑하며 섬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늘 웃는 얼굴이고 말투가 온화했지만, 자신만의 신념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오빠와 아내 J는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과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넘치는 사랑을 가지고, 머나먼 나라에 소수민족을 섬기러 갔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나라도 없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며 탄압받는 소수민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바라보고 계심을 전해 주기 위해 갔다. 그리고 K오빠는 자신이 사랑하던 그 민족들이 거주하는 땅에서, 무슬림 단체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한 소년에게 피습당해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와 남편을 비롯한 교회의 친구들은 오빠의 부음을 접하고 슬픔과 원망을 함께 토해 내었다. 아무리 죽음을 각오하고 갔다고 하지만 어째서, 큰 아이는 아직 어리고 J의 뱃속에는 둘째가 자라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런 일이 생기도록 그냥 두셨어요 주님!! 본인이 기도하고 각오했지만 그게 왜 하필 지금이었나요, 아이들이 좀 더 자란 뒤였어도 되잖아요... 하나님의 뜻을 지금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빠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심긴 그 땅에 무수히 많은 복음의 열매, 사랑의 열매가 맺히기를 지금도 기도할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출근준비하고 애들 등교준비 도와주고, 나도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고 집에 오면 다시 애들 저녁 챙겨주고 학습지며 숙제 봐주고 씻기고 재우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지치고, 이렇게 힘들게 열심히 살아도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뜻한 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K오빠와 J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구 반대편의 소수민족을 사랑해서 기꺼이 머나먼 땅으로 가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심긴 K오빠와, K오빠가 심긴 땅에서 맺히는 복음의 열매를 자신이 거둬야 한다며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 기쁨으로 선교를 감당하는 J를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마냥 제자리걸음하며 투덜대며 살 수는 없는 거다. 부끄러워지고 겸손해진다. 하나님께서 K오빠와 J에게만 사명을 주신 건 아닐 텐데, 그렇다고 너도 나도 다 선교지로 뛰쳐나갈 수는 없을 텐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은 무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K오빠와 J를 생각하며,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잘 살아내길 기도한다. 나도 언젠가는, 밀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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