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버이 주일이었다. 본당 입구에는 카네이션 바구니가 놓였고, 예배 찬양 시간에는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축복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효도에 대한 설교가 이어졌다. 요즘 부모님들은 어떤 선물을 좋아하시고 어떤 선물을 기피하시는지, 부모님을 어떤 방법으로 챙겨 드리는 게 좋을지,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에게 순종하라는 성경구절로 설교는 마무리가 되었다. 예배를 드리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기독교 절기에 ‘어버이주일’이란 없지만, 우리나라는 ‘효도’를 중시하는 유교사상이 깊은 뿌리를 내린 나라이니 어버이날이 있는 주간에 어버이 주일을 정해서 어르신들을 축복하고 선물을 드리고 우리의 윗세대 어른들을 존중하고 공경하자고 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교회만이라도 어버이주일을 좀 구별되고 수준 높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효도'라는 말보다 '사랑'이 더 좋다. 효도의 사전적 의미는 1.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 2. 부모를 정성껏 잘 섬기는 일이다. 이 두 가지 의미를 읽으면, 부모에 대한 마음보다는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행위’에 더 중점을 두었다는 느낌이 들고, 부모자식 간의 좋은 관계보다는 부모에게 자식으로서 해야 하는 ‘의무’에 더 집중된 것 같다. 물론, 나도 아이들을 낳아 키워 보니, 내가 아이에게 쏟는 사랑과 헌신을 내 아이는 쥐뿔도 몰라 주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종종 있고, 오죽하면 이날만이라도 좀 잘 챙기라고 ‘어버이날’이라는 게 생겼겠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효도’만 강조하다 보면 부모를 챙기고 부모의 수고와 헌신에 감사하는 일이 마음과 관계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닌 ‘의무’와 ‘부담’이 되어 버린다. 심지어, 어버이날과 ‘효도’의 의미는 점점 더 변질되는 것 같다. 머니머니해도 머니가 최고라며 일정 금액 이상 들어 있는 봉투를 받아야 하고, 근사한 식당에 가거나 자식 혹은 며느리가 정성스레 차려서 대접하는 식사를 먹어야 하고, 친구들끼리 모이면 내 자식의 효도와 남의 자식의 불효를 재 가며 우월함을 느끼는 그런 어버이날과 효도의 기준은 누가 세운 걸까. 심지어, 교회에서 설교시간에까지 용돈 넉넉히 드리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다니. 낯 간지러워서 못하던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다면 어버이날에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어 보고, 어버이날 당일에 못 만난다면 그 전후에라도 시간을 내서 만나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함께 해서 즐겁고 존재해 줘서 감사한 그런 마음을 느끼면 충분한 거 아닌가.
교회에서만이라도 ‘효도’가 아니라 ‘사랑’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의무감에 챙겨야 하고 효심은 물질로 표현하는 그런 효도 말고, 진짜 사랑 말이다. 어버이날이니까 어디 화려하고 근사한 데 가서 식사 한 번 대접해야지, 식사 끝나면 봉투 하나 드려야지, 그래야 나도 할 도리 다 한 거 같아 후련하고 부모님도 면이 서지, 이게 아니라 평소에 맛있는 거 먹다가 오 이거 맛있네, 우리 아빠 엄마랑도 와야겠다, 이런 거. 주기적으로 숙제하듯 하는 연락이 아니라, 아니면 어버이날이니 밀린 숙제 하듯 하는 연락이 아니라 부모님 목소리 한 번 듣고 싶네, 감기 유행하는데 우리 부모님 괜찮나, 하고 거는 전화. 누구네 집 딸은 호텔 뷔페를 사줬다고, 누구네 며느리는 손수 거하게 한 상 차려줬다고 하는 게 아니라 너도 나도 불경기라는데, 너도 매일매일 열심히 사느라 애쓴다, 하고 건네는 따뜻한 위로. 그런 게 가르친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채널에서는 부모님께 봉투 좀 두둑이 찔러 드리세요, 종합검진 좀 시켜 드리세요,라는 말을 듣더라도 교회에서는 사랑을 알려 줘야 하지 않을까.
아낌없이, 조건 없이 사랑하세요. 부모는 자식에 대한 이런저런 기대하지 말고 자식의 있는 모습 그대로 귀하게 여겨 주세요. 자식은 부모님이 나를 위해 하는 헌신을 당연히 여기지 말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세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릴 그렇게 조건 없이 사랑하시니까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까지 감당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사랑을 닮아가야 하니까요. 혹시 나는 부모에게 사랑받은 기억이 없어 어버이날이 도리어 괴로운 분이 계시다면, 부모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사랑을 하나님께로부터 듬뿍 받길 기도할게요. 어버이날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는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어버이날에 이런 설교를 듣고 싶다. 다른 곳에서는 효도를 강조해도, 교회는 사랑을 가르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