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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May 03. 2019

9. 이제는 깨져야 할 타이밍

깔끔하고 시원하게 안녕합시다. 오케이?



이제는 깨져야 할 타이밍




이 동네를 주름잡는 유명 라시집엘 들렀다. 제일 인기 있다는 바나나 라시를 주문 후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가게 구석에서 뭔가 흥미로운 게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 저건 왜 죄다 깨 놨어요?“



컵으로 사용했을 법한 갈색 토기들이 파스락 깨어진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 저거? 이제 못 쓰는 거니까.”

“저건 한 번 쓰고 버리는 거예요?”

“응, 딱 한 번만 쓰고 깨버려. 원래 저 그릇은 저렇게 쓰는 거야.”


제 수명을 다한 채 버려진 흙 그릇들. 이젠 쓸모가 없어져 그저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 토기들이 그저 ‘쓰레기’로만 보이지는 않더라고. 왠지, 어딘지 모르게 부러운 구석이 있었달까.


그래도 미련은 없겠네.

그릇으로 태어나 한가득 라시를 품고 그릇답게 살아 봤으니,

너는 적어도 억울하지는 않겠어.



학창 시절,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간식거리가 생길 때면 당연히 둘이 반쪽씩 나눠 먹었고, 한 사람이 깜빡하고 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은 날엔 마치 제 일처럼 부리나케 옆 반으로 뛰어가 냉큼 책을 빌려다 주곤 했다. 그렇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네 일과 내 일이 따로 없었던 우리 둘. 단연코 나의 열여덟은 이 친구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또 매일 매일 행복했다. 


“왜 연락이 안 되지. 무슨 일 있나.”


그러다 3학년 반 배정을 하기 직전 겨울. 이 친구는 주변과의 모든 연락을 끊곤 소리소문없이 잠수를 타 버렸다. 당시에 나는 집안 형편이 갑자기 휘청하는 바람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것 같았는데, 그 와중에도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 걱정에 종일 핸드폰만 붙들고 살았다. ‘아 도대체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야! 내 이거 개학하면 가만 안 둬 진짜!’ 하면서.


하지만 개학 날 교실에서 마주친 그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싸늘하게 피해 버렸다. 영문을 몰라 혹시 내가 뭔가 실수한 게 있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그녀는 말 한마디 붙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랄 게 없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친구를 함부로 대한 적도 몰래 뒷담화를 하고 다녔던 적도 없는데. 도대체 왜 저렇게 돌변해 버렸을까. 그날부터 꽤 오랫동안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지만, 결국 우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해 버리고야 말았다. 친구로 시작해, 친구답게 끝내지도 못한 채로.



“이거 씻어서 화분이나 재떨이로 쓰게 숙소에 가져다 놓을까요?”

옆에 있던 동행이 물었다. 아무래도 라시 하나 후루룩 말아먹고 쨍그랑 깨어 버리기엔 좀 아깝긴 했다. 하지만 나는 금세 도리질을 쳤다.


그러지 말자.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흙 그릇으로 태어난 삶, 흙 그릇으로서 제 소임을 다한 뒤 깔끔하게 사라질 수 있게 그냥 그렇게 두고 싶었다. 유약도 바르지 않은 일회용 도자기가 괜히 그 속에 매캐한 담뱃재나 품고 살아가도록, 그리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왠지 이 그릇에 못할 짓인 것만 같아서.


몇 년 후 성인이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로 그 친구를 다시 만난 적이 있다. 나의 고3 시절을 더욱 암울하게 만든 장본인. 그녀를 다시 마주했던 날, 용기를 내 물었다.


“너,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그냥 말해 주지 그랬냐.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뺨을 후려쳐서라도 고치게 하지 그랬어. 차라리 그랬다면 그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텐데. 왜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내 곁에서 사라져 버렸니. 너를 원망하지도, 함께 만든 추억을 쉽게 깨 버리지도 못하게.


하지만 뜻밖에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그때는 고3이어서 그랬어. 괜히 예민할 시기잖아.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랬던 거 같아.


그녀는 그렇게 깔끔하게 이유를 정리했고 그 말의 끝에 묵직한 감정을 담아 ‘그땐 내가 어렸어. 미안해.’라고 덧붙였다. 그 사과를 듣는 순간, 나는 드디어 버리지도 다시 쓰지도 못한 채 가슴에 끙끙 품고 있던 미련의 도자기를 쨍그랑 깨 버린 후 우리의 관계를 정의할 ‘친구’라는 새로운 그릇을 꺼내 들 수 있었다.


다 써 버린 토기를 속 시원하게 깨버리듯,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확실한 ‘맺고 끊음’이 필요한 것 같다. 같이해 온 세월이 있고 함께 나눈 추억이 있다면, 한쪽의 마음이 돌아섰더라도 간단하게나마 이 관계가 끝나는 이유를 상대에게 설명을 해 줄 의무가 있는 것 아닐까.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분명히 우리는 같이 시작했는데 왜 끝에는 한쪽만 발을 동동 굴러야 하나. 이유를 좀 설명해 주면 덧나나? 어차피 끝인 마당에 ‘네가 징징거리는 게 싫어졌어.’라든가 ‘닥치고 공부만 하고 싶어졌어.’라든가, 하다 못 해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라는 말 한마디만이라도 해 주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 아닌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휙 사라져 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결국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책과 원망뿐인데. 


우리 그러지 좀 말자. 한번 관계의 그릇을 꺼내 들었으면 제발 맺을 때 맺고, 끊을 때 딱딱 끊어 주며 살자.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혹은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싫다고 자꾸 막판에 꼬르륵 잠수를 타 버리니 결국엔 좋았던 기억마저 보기 싫게 빛이 바래 버리는 거 아니겠나. 한낱 그릇들도 저렇게 화끈하게 맺고 끊는 법을 아는데, 적어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시작과 끝에 대한 예는 좀 갖추면서, 그렇게 살자.


자, 아저씨! 

이거 이제 시원하게 깨 버려요.

어차피 제 할 일도 다 했는데 타이밍 놓쳐 담뱃재나 담으며 살아가게 하지 말고, 그냥 깨질 수 있을 때 깔끔하고 시원하게 안녕합시다.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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