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나의 소원은요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타국이라 그런가, 맘이 약해질 때마다 자꾸 어디에라도 기대고 싶어지더라. 그래서 요 며칠, 하루가 멀다 하고 사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간절히 빌었다.
‘한국인 따~악! 한 명만 만나게 해 주세요. 네?? 말하고 싶어 죽겠어요!!’
‘변비 좀 어떻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벌써 3일째예요!!!’
그냥 길거리에 보이는 아무 사원에나 슥 들어가 남들 하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다음, 아주 정성 들여 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거다. ‘이래도 안 들어 줄 거야?? 정말? 응응??’ 온갖 생떼를 써 가면서.
그러다 마말라푸람에서 한 제주도 출신 청년을 만났다.
이름은 장수범.
한 날은 수범 군과 이 ‘소원’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서현지 : 너는 인도 와서 무슨 소원 빌어 봤어?? 난 너무 많아서 이제 기억도 잘 안나.
장수범 : 소원이요? 음… 소원이라. 글쎄요? 아직까진 없는 거 같은데.
서현지 : 뭐?? 진짜? 한 번도 없다고?
장수범 : 네, 뭐 딱히. 그럼 누나는 그동안 무슨 소원 빌었는데요?
서현지 : 나? 나야 뭐… 한국인 만나게 해 달라, 변비 낫게 해 달라, 뭐 그런 거??
장수범 : 에이~. 그게 무슨 소원이야. 노력하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일을 ‘소원’이라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서현지 : 뭐래~
장수범 : 일행이야 인터넷 카페 뒤져서 찾으면 되고, 변비는 라시 많이 먹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 그게 뭐라고 기도까지 해요. 신이 그렇게 한가한 줄 아시나~
처음엔 좀 황당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맞는 말이긴 했다. 내가 살면서 빌어 온 것들은 확실히 내가 노력하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들이긴 했으니까. 예로 들면 ‘몸무게 45㎏ 만들기’라거나, ‘토익 990 만점’ 같은 거? (아닌가… 둘 다 신의 영역인가.)
그러고 보면 제대로 노력해 보지도 않고서 ‘제발 이러이러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부터 하는 건 신을 상대로 조금 비겁한 짓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신도 참 어이가 없겠지. “아니! 허구한 날 그렇게 처먹는데 45㎏을 뭔 재주로 만들란 말이야??” 하며 혀를 쯧쯧 찼을지도 모른다.
너무 솔직해서 좀 당황하긴 했지만,
그 덕에 아주 제대로 각성했지 뭐야.
부끄러운 얼굴이 따땃하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