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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May 20. 2019

12. 아뿔싸 한국말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그러할 것이다


아뿔싸, 한국말


우다이푸르에서 꽤나 알아준다는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 길거리에 테이블이나 의자 등을 놓아두고 거의 노점식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어느 순간 입소문을 타서 이 지역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감자튀김과 햄버거를 주문해 놓고 같은 방 쓰는 동생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교복 입은 키 큰 여자애가 툴툴거리며 가게로 들어왔다. 오자마자 여사장님께 쫑알쫑알거리는 걸 보니 아마 딸인 듯했다. 얼핏 들으니 오렌지 주스 어쩌고 하며 한껏 칭얼거리는데, 사실 지금 문제는 주스 따위가 아니었다.


“와… 정말 예쁘다…”

“역시, 언니도 같은 생각 하고 있었구나. 난 무슨 연예인인 줄 알았어.”


기껏해야 고등학생쯤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미모가 벌써 후덜덜하다. 키도 훤칠하게 큰 데다가 얼굴은 또 어찌나 작은지 얼핏 봐도 8등신은 그냥 넘을 정도. 뭐 저렇게 다 갖고 태어났을까. 역시 세상은 불공평해. 쳇.


“인도 애들 미모 장난 아닌 건 알았는데, 저 정도로 예쁜 애는 처음이야.”

“나도. 진짜 연예인 해도 되겠다.”

“정말 세상 살맛 나겠어. 아~ 부럽다 부러워!”



한참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해대고 있다가 별안간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곤 무심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녀석. 그러곤 뭘 그렇게 재밌는 걸 보는지 웃음을 참느라 양쪽 볼이 수시로 실룩실룩거린다. 옆에서 동생이 ‘와, 웃으니까 더 예쁘다’ 하며 호들갑을 떨었고 나도 거기에 동의를 하느라 고개를 끄덕이는데,


“푸하하하!!!”


갑자기 여자애가 우리를 보며 박장대소를 한다. 뭐야 갑자기?

영문을 몰라 같이 쳐다봐 줬더니 한참을 웃던 아이가 대뜸 그런다.


“언니! 나 한국말 조금 할 수 있어! 땡큐!”

헐! 요 깜찍한 녀석~!! 다 알아들으면서 시치미 떼고 있었어.


“와~너 한국말 잘한다? 어디서 배웠어??”

“한국 친구들이 알려줬어. 말 잘 못 해. 근데 이해하는 거 할 수 있어.”


더듬더듬 하는 말이지만 제법이었다. 알음알음 배운 것치곤 수준급이었달까. 나는 초중고등학교를 합쳐 10년은 훌쩍 넘게 영어 공부를 했는데도 아직도 리스닝이 안 되는데. 어깨너머로 배웠다는 실력이 아주 장난이 아니었다. 예쁜 데다가 머리까지 좋다니. 너 좀 대단한데?



그런데 놀라움과 동시에 살짝 아찔하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리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나타날 줄이야. 우리가 좋은 소리만 했기에 망정이지 혹시라도 들었을 때 상처 되는 말을 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제대로 화도 못 내 보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거나 아니면 여차하면 큰 싸움이 날 수도 있었을 거다. 역시, 사람은 어딜 가나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게야.


해외에 나오면 우리가 영어권 민족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예로 들면 사람 많은 카페에서 직장 상사의 험담을 한다거나, 혹은 일행들과 음식 맛이라든가 숙소의 친절도에 대한 평을 솔직하게 공유할 때면 우리끼리만 통하는 한국어가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알아들을 사람이 없고 그로 인해 눈치를 보거나 조심해야 할 필요도 없는 그런 짜릿한 자유로움은 여행에 있어 적지 않은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 ‘말’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러워지는 순간도 있다. 예로 들면 너무 티 나게 쌍욕을 한다거나 혹은 면전에 대놓고 성희롱 수준의 발언들을 늘어놓을 때가 바로 그러하다. 어쩌다가 이런 한국인들을 만날 때면 괜히 같은 나라 사람인 걸 티 내고 싶지가 않아 못 알아들은 척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어딜 가나 말이란 건 항상 조심하고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영어를 쓰든 한국어를 쓰든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그 말이 담고 있는 뉘앙스까지 캐치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안다. 지금 저 사람이 하는 말이 칭찬인지 아님 욕인지.


흔하게들 하는 말이지만, 여행할 때는 우리가 대한민국 국가 대표라는 마인드로 여행을 해 보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다. 내 말투와 표정 하나하나가 모여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쌓은 이미지가 결국 한국인 여행자 전체에게 돌아간다 생각하면 결코 함부로 뱉고 멋대로 씹어댈 수는 없을 테니까.


우리 어딜 가나 조금씩만 조심해 보도록 하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거란 착각으로 함부로 입을 열었다간 아주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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