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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Apr 17. 2019

2. 코리앤더 피하기

인도, 내가 그곳에 있었을 때


코리앤더 피하기


“와, 또야 또!”


식당에서 주문한 볶음밥을 받자마자 밥상에 이마를 처박았다.

소중한 120루피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순간이다.


“아저씨… 여기 볶음밥 새로 하나 더 줘요. 코리앤더(고수)는 빼고.”


꿈꿈한 냄새가 올라오는 볶음밥을 쳐다보자니 한숨이 푹푹 나왔다. 인도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서 요 코리앤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건 알지만, 어쨌거나 나한테 안 맞는 건 안 맞는 거다. 평소에도 편식이 심했던 나는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음식과의 사투를 벌여야만 했는데, 제아무리 노력하고 꾹꾹 참아 봐도 이놈의 코리앤더만큼은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꼬리꼬리한 냄새 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맛까지. 심지어 먹고 나면 어김없이 설사까지 도지는데, 이쯤 되니 도대체 왜 멀쩡한 볶음밥에 코리앤더를 뿌려서 사람 숟가락도 못 들게 만드는지 화가 날 지경이었다.


“자, 먹어 봐. 이제 그 맛 안 날 거야.”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그러게, 못 먹으면 미리 말하지 그랬어.”


네네, 그러게 말입니다.

이놈의 코리앤더한테 당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미리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매번 그걸 잊네요, 제가.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에 대한 경계가 그다지 없는 편이었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 일이 곧 내 일이요’ 하고 먼저 손을 내밀었고, 낯가림은커녕 상대와 더 빨리 친해지고 싶어 허둥지둥 내 이야기를 막 늘어놓는 그런 인간이었다.

상대방에게 울타리를 치지 않는 이런 성격은 주변에 적지 않은 친구들을 만들어 냈고, 덕분에 살면서 ‘외롭다’는 감정을 별로 느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향기를 풍기는 꽃들이 많아질수록 독을 가진 벌들도 늘어나는 법이니까.


나는 사람을 거르지 않고 만난 덕분에 그만큼 인생의 쓴맛도 참 많이 봤다. 가령 친구라 생각했던 인간에게 뒤통수를 맞는다거나, 혹은 믿었던 선배에게 공들여 완성한 과제물을 뺏긴다거나 하는 것들이 바로 그런 거다.

늘 웃어 주니까, 뭐라고 해도 그저 헤실헤실, 도와달라는 대로 끊임없이 베풀어 주고 원 없이 퍼다 날라 줬더니 은근히 사람이 우스워 보였는지.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내 단물만 쪽 빼먹고 얄밉게 등을 돌려버릴 때면 한동안 그 자리에 엎어져서 꽤 오랫동안 가슴 아파하곤 했다. ‘나쁜년.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나름의 원망도 해 가며.


근데 여러 해 그렇게 상처를 받아오면서도 이놈의 성격이란 게 참 바뀌지가 않더라. ‘이젠 절대 안 도와줘야지’, ‘먼저 아는 척하지 말아야지’ 하고 뾰족뾰족하게 굴어 봐도 결국은 또 내가 먼저 고개 숙여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다가 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칼침을 맞곤 한다.


뭐가 문제지. 왜 꼭 한 번씩 속을 뒤집는 인간이 나타나는 거지.

역시 난 막 대하기 딱 좋은 사람인 건가.

잠시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역시 싫은 건 싫다고 쳐내는 게 정답인가.


그래서 나는 조금 변해 보기로 했다. 그간에는 누가 나에게 좀 심한 말을 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려도 ‘에이, 나쁜 뜻은 아니었을 거야.’,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걸 거야.’ 하고 대충 넘겨 주었지만, 이젠 그들에게 ‘나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 정도의 쓴소리 한 번쯤은 당당히 해 주기로.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라며 혼자 끙끙대는 대신 “왜 또 지랄이야!”라고 쏘아 줄 줄도 아는, 그런 인간이 한번 되어 보자고.


꼴같잖은 ‘착한 사람’ 코스프레 따위 이제 그만 집어치우자.

내 야들야들한 멘탈은 이제 스스로 지키자.

제발, 이제 할 말은 좀 하고 살자.




“사장님~! 계란 볶음밥 하나요! 코리앤더는 빼고!”


몇 번 코리앤더 때문에 밥을 못 먹어 본 이래로 나는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꼭 ‘노 코리앤더’를 외쳤다. 괜히 까다로운 코리안이라 손가락질받을까 봐 입이 잘 안 떨어지긴 했지만, 더 이상은 억지로 저 쿰쿰한 것을 꾸역꾸역 먹지는 말자고. 별난 사람이 되든 말든, 일단은 내가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그게 아무리 인도의 맛을 느끼게 해 준다 한들, 그게 나한테 안 맞는데 다 무슨 소용이냐 말이다.


너를 바꿀 수 없다면, 

애초에 내 곁에 오지 못하게 벽을 쳐버리겠다.


싫은 거, 아픈 거, 그 문제가 ‘사람’ 때문이라면, 더 이상은 가슴에 담고 살지 말자.

내가 해 봐서 아는데,

그거 진짜 사람 할 짓 못 되는 거거든.

당당하게 말하고 살련다. 더 이상 싫은 거 억지로 참으며 살지 않으련다.

그러니. 거기서 단 한 발짝도 다가오지 마라.


“NO 코리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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