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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Apr 18. 2019

3.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인도, 내가 그곳에 있었을 때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로컬 식당에서 식사하다 한 중년의 한국 남자를 만났다. 자고로 여행 초반엔 말 통하는 같은 나라 사람이 그저 반가운 법. 그 역시 처음엔 내게 그랬다. 그는 본인을 국제 사업가라고 소개했고 인도 여행은 이번이 네 번째라고 덧붙였다.

오, 이 인크레더블한 나라를 네 번이나 방문하셨다니, 좀 대단한걸~?


나는 그가 자랑스레 늘어놓는 무용담들을 열심히 들어줬다. 인도를 네 번이나 왔다는데 할 말이 얼마나 많겠나.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듣던 도중 그는 나에게도 슬쩍 질문해 왔다.


“그래서, 다음 여행지는 어디라고?”

“카주라호요. 이틀 후에 출발해요.”

“에엑??? 카주라호?? 왜??”


그는 대답을 듣자마자 인상부터 쭈그러뜨렸다. 그러고선 뭘 모른다는 듯 검지 손가락을 펴 좌우로 까닥까닥. 그리고 그때부터 일장연설이 시작됐다.


“아~ 학생! 그 볼 거 없는 시골 촌 동네를 왜 가려고 하지? 여행을 왔으면 자고로 북적북적한 데서 사람도 좀 만나고 좋은 것도 많이 구경해야 맛이지~~! 학생 그거 지~인짜 잘못 생각하는 거야. 차라리 아그라는 어때? 아그라야말로 진짜 환상의 도시지. 아그라는 말이야 ~~에헴!”


다시 시작된 그의 수다가 이번엔 ‘서현지라는 여자가 얼마나 실속 없는 여행 루트를 짰는가’를 주제로 끝도 없이 펼쳐졌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또다시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다만 아까의 수다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내 기분이 아주 아주 불쾌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내가 정성 들여 계획한 일정표는 단 20분 만에 그의 혀로 신랄하게 회 쳐졌고, 그의 수다가 끝났을 무렵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인도를 모르는 멍청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슬슬 고민을 시작했다.

카주라호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조금 재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경험자의 말이니 따를까?

아닌데, 사진으로 봤을 땐 분명히 좋아 보였는데…

근데 진짜 갔다가 후회만 하면 어쩌지?

아닌가. 오히려 딴 사람 말만 듣고 포기하면 그게 더 후회스러우려나?



결국, 나는 세상에서 가장 인도를 모르는 여자가 되더라도, 실속 없는 여행 루트를 짠 1인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가 보고 싶었던 카주라호에 가겠노라 결심했다. 가 보고 별로다 싶으면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되고, 재미있으면 또 재미있는 대로 즐기면 되는 거지. 흥하든 망하든, 일단은 못 먹어도 고!


그렇게 도착한 카주라호.

뭐? 시골 촌 동네? 볼 거 없어서 후회만 할 거라고?

웃기시네.


나는 그곳에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아, 여기다’ 싶더라.

코끝을 살살 스치는 소똥 냄새도, 어딘가에서 풍겨 오는 물비린내도 그저 달콤했고, 함께 자전거를 타며 들판을 누볐던 그곳의 사람들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하고 따스한 기억을 선사했다.


한마디로 그가 말한 ‘최악의 카주라호’는,

내게 없었다.



저기요. 있잖아요.

당신이 그렇게 무시하던 시골 촌 동네 카주라호.

나에게는 눈물이 날 만큼 아주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내 평생 그런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동네는 두 번 다시 못 만날 거야.

당신 말만 듣고 내가 여길 안 왔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이 예쁜 동네를 못 봤으면 어쩔 뻔했어.

이 노을 이 호수 이 탈리를 내가 못 보고 못 느끼고 못 먹었으면

진짜 어쩔 뻔했냐고.


여행을 하다 보면 자기보다 일정이 짧거나 혹은 배낭여행 경험이 부족한 사람을 은근히 ‘여행 후배’쯤으로 생각하고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있다. ‘정보를 주는 것’과 ‘가르치려 드는 것’은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전자는 Thank you지만 후자는 Fuck you다.


여행지에 더 오래 있었고 더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다고 해서 내가 상대보다 이 나라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확률이 좀 더 높긴 하지만, 엄연히 내가 느낀 세상과 상대방이 바라보는 인도는 다르다. 당장 나만 해도 스물셋의 인도와 서른의 이곳이 조금씩 다른데, 하물며 타인과의 차이는 오죽할까. 결국, 우리는 모두 다른 여행을 하고 있다. 그 누구도 타인에게 여행을 ‘가르칠 권한’ 따윈 없는 거다.


남의 여행에 훈수질 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얼마나 인도를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모자라 보이더라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제 여행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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