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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Apr 19. 2019

4. 맏이로 산다는 건

인도, 내가 그곳에 있었을 때



맏이로 산다는 건


남인도 나가르코일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등이며 이마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걸 느끼며 의자에 늘어져 있는데 내 앞으로 어린아이 두 명이 지나간다. 너덧 살쯤 되어 보이는 형 꼬맹이와 그보다 좀 더 어린 듯한 동생 꼬맹이.


‘아이고, 고놈들 참 귀엽기도 하지.’


형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형제의 작은 손을 꼬옥 붙잡았다. 저도 뒤뚱뒤뚱 걷는 처지에 행여 동생이 넘어지기라도 할까 그저 노심초사. 어쩌다 동생이 중심을 잃어 손으로 바닥을 짚을 때면 냉큼 제가 입고 있던 셔츠 소매를 당겨 손에 묻은 흙이며 돌조각들을 탈탈 털어냈다. 옷이야 더러워지든 말든, 다리가 아파 오든 말든.


대견했다. 사랑스러웠고 또 귀여웠다. 근데 어딘가는 참 안쓰럽기도 했다.

아마도 나 역시 저 아이처럼 누군가보다 앞장서서 걸어야 했던 적이 있어서일까.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남동생이 태어났다. 세상의 모든 맏이가 그렇듯 나 또한 첫째로서의 무게를 견디느라 꽤 고달픈 인생을 살았다. 어렸을 적부터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의 식사를 챙겨야 했으며, 한창 뛰어놀 나이인 초등학생 때조차 막내의 유치원 하원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되게 혼이 나야만 했다.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몽땅 내 책임이 되었고 억울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변명을 할라치면 ‘네가 누나니까 모범을 보였어야지!’ 하며 두 배로 잔소리가 돌아왔다.


그렇다. 

내가 어린아이로서 마음껏 부비적거리고 칭얼거릴 수 있었던 세상은 동생이 태어나던 해에 이미 끝나 버렸다. 서럽고 억울하게도 말이지. 


그러다 내가 열아홉 살이 되던 무렵, 아빠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말이 ‘기울었다’지 사실 폭삭 내려앉은 거였다. 당장 참고서 살 돈마저 뎅겅 끊겼었으니까.)


돈이 없다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섭고 잔혹한 일이었다. 단 한 번도 학원비라든지 육성회비 낼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미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는 친구들에게 차마 돈 없어 못 간다는 말은 못 하겠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핑계로 눈물을 머금고 거절하기도 해야 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나의 새내기 라이프는 그다지 아름답진 못했다. 동기들은 다들 예쁜 옷도 사 입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데, 나는 늘 막창집이며 카페, 학원 등등을 전전하며 용돈 벌기에 바빴다.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어떻게든 무료로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야 했고, 친구들이 가지고 다니는 값비싼 브랜드 가방 따윈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눈물 나고 서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렸던 내가 가난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런 것뿐이었으니까.


근데 말이다.

이 와중에 나를 진짜 진짜 힘들게 한 게 뭔 줄 아나?

바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한다는 거다.


너무너무 피곤하고 곧 죽을 듯이 괴로워도 나는 밝아야만 했다. 누구한테 말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친하다 한들 친구들 앞에서 내 밑바닥을 보이기엔 난 고작 스물이었고 서럽고 속상하다고 마음껏 울어버리기엔 나는 서 씨 집안의 맏이였다. 돈에 치여 살다 보니 엄마 아빠는 대화를 잃었고, 삭막해진 집안 분위기에 중학교 2학년이던 남동생은 점점 더 엇나가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밝은 척 연기를 하기로 했다. 종일 서빙을 하느라 물집이 잡힌 손가락도, 퉁퉁 부어오른 다리와 제때 먹지 못해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도 그냥 나만 아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철부지로 살아도 되는 내 동생이 너무너무 부러워 미칠 것만 같다고.

할 수만 있다면 동생이랑 영혼을 바꾸고 싶었다. 수능을 또다시 쳐야 한다 해도 상관없으니, 교복이라는 방패를 두른 채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그저 중학교 2학년이 되고 싶었다.


근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지. 당장 나는 끼니를 걸러도 동생만은 뭐라도 챙겨 먹여야 했고 알바를 하느라 피곤한 와중에도 열다섯 어린 둘째 앞에선 늘 당당하고 씩씩한 누나여야 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너무도 빨리 잊어야만 했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법과,

타인에게 마음껏 어리광부리며 느슨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여유를.



어느새 목구멍이 젖었다. 눈가가 화끈화끈했다.

동생의 손을 꼭 잡은 형의 오른손이 참 슬프다.


멋지다. 참 보기 좋다. 

아마 저 둘째는 앞으로도 절대 외롭지는 않을 거다. 

넘어지면 냉큼 일으켜주고, 

빽빽 울어 댈 때면 후다닥 달려와 도닥도닥 달래주는 형이 있으니까.


근데, 나는 저 첫째가 제 동생 때문에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가끔은 동생의 손에 묻은 먼지보다 아픈 제 다리를 먼저 걱정하고, 또 가끔은 부모님이 사 준 과자를 남몰래 제 입에 먼저 넣는 얌체 같은 짓도 해 가며 그렇게 오랫동안 천진한 아이인 채로, 그렇게 지내 주었으면 좋겠다.


너무 그러지 마라. 너도 아직은 그냥 어린아이다.

너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어깨를 기대고, 마음을 나누고,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살아도 되는 거란다.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형제의 뒷모습을 보며 스무 살의 나를 떠올린다.


남몰래 눈물 흘려야 했던 그 작은 등을, 

가만히 쓸어내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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