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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Apr 19. 2019

5. 조금만 덜 스마트해지면 안 되겠니

인도여, 조금만 천천히 변해 주오


조금만 덜 스마트해지면 안 되겠니


내가 7년 만에 인도 땅을 밟고 가장 놀랐던 건, 바로 모든 인도인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다닌다는 거였다. 처음 인도에 왔던 2010년 즈음만 해도 스마트 폰은 고사하고 종이 지도 한 장만 있어도 감지덕지하며 여행을 다녔던 것 같은데, 요즘은 중학생만 돼도 핸드폰을 목에 걸고 다니며 지도 어플 하나로 길을 착착 찾아내고, 전화 통화도 필요할 때마다 재깍재깍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란 말인가.


가게 곳곳을 돌아다니며 “give me a map, please~!”를 외쳤던 인도.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여기 기차역이 어디쯤이에요?” 하며 일일이 물어야 했던 이곳이 세상에 고 7년 사이에 이리도 많이 변해 있더라니까. (심지어 오늘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거리가 어디쯤이죠?” 물었더니 굉장히 한심하다는 눈으로 “너 핸드폰 없니? 검색해 봐.” 하더라. 참나.)


근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편리함이 참 많이도 섭섭하다. 딱히 이유를 들진 못하겠지만, 그냥 헉 소리 날 정도로 간편하고 스마트해진 이 인도에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든다고나 할까? 예전에 내가 알던 거기가 맞나 싶어서. 고새 참 많이도 변해 버렸다 싶어서. 그래서 그냥 어딘가 모르게 자꾸 이 업그레이드된 인도가 뭔가 서운하고, 또 아쉽다.





오늘 간만에 엄마한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인도에서 살이 얼마나 빠졌고, 밥은 이렇게 먹고 있으며, 이제 바퀴벌레쯤은 슬리퍼로 딱! 잡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이 쌓였으니 벌레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뭐 그런 일상적이고 소소한 내 인디아 라이프를 얘기해 주고 싶었다. 근데 웬걸.


“엄마 지금 저녁하고 있어~! 이따가 통화하자. 미안해~”

“어, 어? 엄마! 엄마??”


헐. 끊었어? 진짜 끊은 거야??

어떻게 내 전화를 이렇게 끊을 수 있지? 이게 얼마 만의 영상 통화인데?!!


섭섭함이 목구멍까지 꾸역꾸역 올라와 메시지를 보내 툴툴거렸더니 ‘미안해~ 그래도 이젠 매일 카톡 할 수 있잖아. 좀 봐 줘~’한다. 와, 진짜 너무해. 우리 엄마 변해도 너무 변했다니까! 예전에는 수화기 들자마자 ‘밥은? 숙소는 어때? 어디 이상한 사람 만나고 그런 거 아니지?’ 하며 온갖 걱정거리들을 쏟아내 놓더니만. 이젠 뭐 영상 통화를 걸어도 시큰둥, 카톡을 보내도 답장도 하는 둥 마는 둥이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왜 이렇게 변했지?





전화를 끊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그냥 이유는 하나더라.

더 이상 예전만큼 소중하지가 않아서.

딱히 그 한 통의 전화에 목숨 걸 필요가 없어져서.

이젠 모든 게 당연해지고, 또 편리해졌기 때문에.


그래서 이젠 큰 맘 먹고 벼르고 별러서 건 영상 통화도 아쉽지가 않고, 더 이상 ‘언제쯤 연락이 되려나’ 하며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을 필요도 없게 되어 버린 거다.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되니까. 내일 다시 걸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인도는 어느새 ‘다음’을 아주 손쉽게 기약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됐다. 국제 전화 한 통화 하려면 전화방 앞에서 30분 넘게 줄을 서야만 했던 7년 전의 인도, 끊길 듯 말 듯한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제발 받아라!! 받아줘 제발!!’ 하며 소리 없는 애원을 하던 아쉬움 투성이였던 그 나라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안다. 인도라고 언제까지 그렇게 불편하게 살 수만은 없다는 걸. 나는 손가락 하나로 영화 표도 손쉽게 예매하고, 액정 몇 번 탁탁 두들겨서 최신 가요 100곡을 단 몇 분 만에 다운받는 그런 세상에 살면서, 인도라고 언제까지 그 상태 그대로 남아 있길 바란다는 건 정말 이기적인 생각인 거니까.


근데, 이게 참 뭐랄까. 다~ 아는데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을 하면서도 뭔가가 허전하고 섭섭한 이 감정은 어떻게 수습이 되질 않는다. 섭섭해 죽을 것만 같다.


아, 너무나도 스마트해진 인도여, 조금만 천천히 변해 주오.

그 놀라운 속도에 적응하기엔, 

이 내가 아직은 너무나 아날로그 한 듯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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