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ep.4 스물세 살 스리랑칸이 포기한 것

지붕을 짊어진 너, 가이야 가이야 가이야

by 서현지





ep.4 스물세 살 스리랑칸이 포기한 것




후들거리는 다리를 용케 붙들었다. 오랜만에 사용된 허벅지 근육은 계단 한 칸을 밟을 때마다 결을 여기저기로 뒤틀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발을 헛디디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여행을 나오면 부실한 체력이 이리도 금방 탄로난다.


정상까지 아직 멀었나. 가이야와 해리는 저만치 앞섰다. 두 사람은 원래 그보다 더 빨리 걸을 수 있지만 나 때문에 그나마도 속도를 늦췄다. 나는 숨 쉬는 게 고통스러울 때마다 주머니에서 조그만 라임을 꺼내 냄새를 맡았다. 새콤한 냄새가 코를 찌를 때마다 들숨과 날숨이 서서히 제 리듬을 찾았다. 라임은 돌산을 오르기 전 스리랑카의 민간요법이라며 가이야가 쥐어준 것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한 번씩 맡아주면 효과가 직방이었다. 나는 밤톨만 한 라임을 지팡이처럼 꼭 그러쥔 채 왼 다리와 오른 다리를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옮겼다.


나는 마주 내려오는 외국인을 발견할 때마다 "저기요! 얼마나 더 가야 돼요?" 하고 물었는데 그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 하나같이 십 분만 더 가면 된다고 말했다. 십 분. 상당히 희망적인 숫자지만 어쩐지 삼십 분 전에도 이십 분 전에도 정상까지는 계속 십 분이었다. 세 번째 만난 사람에게 같은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와락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아까도 십 분이라며! 아까 아까도 십 분이라며!! 너무 짜증이 난 나머지 여기서 포기하겠다고 소리칠 뻔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온 게 아까워서라도 그 짓만은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왠지 모를 오기에 휩싸였는데 그래선지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져 고개를 떨구고 발끝만 보고 쿵쿵 걸었다. 몰라, 언젠가 도착하겠지 뭐. 산이 그래봤자 산이지. 쟤네도 다 했는데 나라고 못 할까 봐. 생각인지 주문인지 모를 것을 수없이 반복하던 어느 순간, 드디어 저 앞에서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언니! 다 왔어요! 좀만 더 오면 돼요!"


내게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자가 양 팔을 머리 위로 흔들며 웃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서자 거짓말처럼 찬바람이 화악 쏟아졌다. 풍속이 어찌나 센지 귓바퀴에서 소용돌이가 다 쳤다. 나는 두 다리와 양팔을 큰 대자로 벌리곤 웅웅대는 바람을 맞았다. 몸에서 스며나온 물기가 멀리 저 멀리로 날았다. 다 왔구나. 진짜 다왔구나 내가.


"언니~ 빨리 와요!"


해리와 가이야는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숨을 고르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는데 그 풍경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누가 배경만 살살 오려다 이어붙인 것 같았다. 카메라를 꺼내 정상에서 본 첫 장면을 담았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진 만큼은 절대 날려 먹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여행작가 서현지 (16).jpg



해리와 나는 시기리야를 마주보고 앉았다.

이 돌산을 오르기 전 가이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시기리야에 오르면 시기리야를 못 봐.

하지만 반대편을 오르면

시기리야를 정면으로 볼 수 있지.'


건너편에는 카사파 왕이 11년 동안 살았다는, 이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는, 그렇기 때문에 입장료가 40불이나 된다는 시기리야가 머리를 내밀다 만 두더지처럼 낭창히 서 있었다. 해리와 나는 보자기 하나를 말아덮고 시기리야를 그림처럼 바라보았다. 멸망한 제국의 역사 같은 건 사실 잘 모르겠고, 그냥 해리와 바람을 맞고 있는 게 좋았다. 뒤에서는 가이야가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그는 DSLR 사용법을 정확히 아는, 스리랑카의 흔치 않은 청년이었다.





다리를 쭉 뻗고 누우니 세상이 우리 발바닥 아래 있었다. 사람들은 내 발바닥 밑에서 밥도 먹고 연애도 하고 똥도 싸겠지. 그리 생각하니 잠시간 누구한테든 이긴 기분이 되었다.


우리 셋은 어제 만났지만 나름대로 많은 것을 알았다. 우리는 서로의 국적과 나이와 직업을 알았고, 가족관계와 연애상대의 유무 그리고 대략적인 식성과 좋아하는 색깔을 알았다. 나는 가이야의 호텔에 머물며 그가 이 숙소를 형네 부부와 함께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어쩐지 형이라는 사람은 호객 행위를 하지도, 뚝뚝을 몰지도, 맛집을 알려주거나 투어 가이드를 하지도 않았다. 형과 그의 부인은 아무일도 하지 않고 그저 숙소에 있었는데 말 그대로 진짜 '있기만' 했기 때문에 사실상 일은 가이야 혼자 다 한다고 봐야했다. 나는 어제부터 내내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가이야. 너는 왜 혼자 일해? 형이랑 같이 하면 좀 낫지 않아?"


오늘만 해도 가이야는 마당을 청소하고, 짬을 내 호객을 나갔다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먹은 뒤 우리와 뚝뚝을 몰고 여기로 왔다. 그는 운전도 잘하고 사진도 잘 찍고 청소도 잘 했지만 잘하는 게 많기 때문에 빨리 지치곤 했다. 가이야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끝내 피식 웃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야. 형은 다른 걸 해주니까."

"다른 거 뭐"


형이 해준다는 것들은 대부분 좀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이었다. 부동산을 알아보거나 계약 서류를 작성하거나 세금을 정산하는 일들. 많이 중요하고 어쩌면 제일 중요한 부분일지 모르지만 가만 들어보면 매일 매일 열과 성을 쏟을 필요는 없는 것들이었다. 경중에 따라 일을 나눴다손 치더라도 확실히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었다. 그러나 가이야는 상관하지 않는다 말했다.


"형은 결혼했잖아. 나는 혼자고. 그러니 내가 더 많이 일하는 게 맞아."


가이야의 숙소에는 홀로된 어머니도 함께 산다.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그녀는 분명 그 건물 어딘가에 있었다. 내가 알기로 가이야는 매일 아침 어머니 때문에 조금 더 바빴다. 어머니의 끼니를 챙겨야했고, 이따금씩 나오는 빨래도 해결해야 했다. 가이야는 우리와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급히 안으로 뛰어들어가곤 했는데 그건 높은 확률로 어머니와 관련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째선지 어머니가 필요로로 하는 손은 늘 형이 아니라 가이야였다.

그렇게 살면 조금 뿌듯하긴 하겠지만 많이 피곤할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선 억울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스물셋이 짊어지기엔 가이야의 하루가 너무 무거워 보였다. 그의 시간은 늘 초침처럼 재깍재깍 쫓기듯 흘렀고 때론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곤 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열심히 산 댓가로 가이야가 받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하루의 대부분을 형과 어머니와 손님에게 쏟는 가이야도 분명 하고 싶고 되고 싶은 무엇이 있으리라. 그래서 물었다. 가이야, 너의 꿈은 뭐니. 뭘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야. 조심스레 꺼낸 질문에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나, 내 동생 시집보내야 해."


가이야의 눈에는 어떤 확신이 있었다.


"스리랑카는 여자 혼자 살기 힘들어. 그리고 우리 가족은 돈이 별로 없지. 그러니 내가 열심히 벌 수밖에. 부지런히 벌어서 내 여동생 결혼시키는 거. 그래서 예쁜 아들딸 낳고 살도록 해주는 거. 지금은 그게 내 유일한 꿈이야."

"그럼 너는. 네 인생에 너는 없어?"


가이야는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다양한 대답이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그는 말이 없었고 나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지막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


절벽으로 몰아치는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찾아온 담불라의 저녁이었다.






며칠 뒤 담불라를 떠나기 직전, 가이야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아. 나 한국 가고 싶어."


그는 여동생을 결혼시킨 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그러면 언젠가 렌트한 건물이 아닌 온전한 내 건물에서 손님을 받을 수 있겠지. 가이야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내 건물'이라는 포인트에서 퍽 안심했다. '우리 건물'이 아니라 '내 건물'이라 어쩐지 크게 좋았다. 나는 스리랑칸이 한국으로 취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그게 뭐든 가이야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이야니까. 사진도 잘 찍고 산도 잘 타고 운전도 잘 하고 발음도 좋고 호객도 잘하는 가이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그를 응원했다. 마주 웃는 새까만 얼굴이 퍽 좋아 보였다.


담불라를 떠나는 버스 안에서 내내 가이야를 생각했다. 스물셋인 가이야를, 스물셋이지만 포기해야 할 것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많았던 그를 생각했다. 우리는 아마 높은 확률로 다시 만나지 못하겠지만, 왠지 스리랑카가 생각날 때마다 조용히 그의 얼굴을 떠올려 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가만히 응원을 보낼 것이다. 정상까지 10분 남았다고. 딱 10분만 더 가면 된다고. 그러니까 힘을 내라고. 그 정상에 올라 사지를 큰 대자로 뻗고 바람을 맞는 순간, 너는 결국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운 풍경 속에 서 있게 될 거라고 말이다.



가이야. 너의 비상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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