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너는 오늘도 나를 속이는구나
ep.5 참을 인이 세 개면 호구되는 나라
우리는 누와라엘리야로 달렸다. 스리랑카 중부지방에 있는 산골짜기. 연중 춥거나 서늘한 곳. 샤워할 때마다 온수가 꼭 필요한 곳. 그래서 숙소비가 비싼 곳. 숙소비가 비싸서 여행자가 오래 머물지 않는 곳. 그 조용하고 외로운 땅을 향해 버스는 낮은 경사로를 돌아 위로 위로 기어올랐다.
싸구려 비닐 시트 때문에 버스가 핸들을 틀 때마다 몸이 이쪽 저쪽으로 미끌렸다. 옆자리엔 또래로 보이는 스리랑칸이 앉았는데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의 허벅지는 자주 닿았다. 가끔은 너무 깊게 닿아 허벅지로 허벅지를 만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남자는 그럴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과한 동작으로 손잡이를 꽉 잡았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몸짓이었다. 나는 괜찮으니 맘 편히 흔들리라 말해주고 싶었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게 맞는 상황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는 누와라엘리야에 도착할 때까지 자다 깨다 허겁지겁 손잡이를 붙잡길 반복했다.
내부는 점점 추워졌고 그럴수록 달리는 속도도 늦어졌다. 정상에 다다를수록 버스는 곡예를 하듯 커브를 돌았는데 나중에는 한 번에 돌리지도 못할 만큼 길이 좁아져 바퀴를 얖 뒤로 굴려 억지로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창문 한 뼘 밖으로는 모두 절벽이었다. 스리랑카 중부지역을 향하던 공영버스 한 대가 낭떠러지로 추락했는데 그 사망자들 중 한 명이 한국인 여성이더라,라는 기사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허리가 아찔했다. 운전기사는 커브를 돌려고 50cm씩 살살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는데 그럴 때마다 엔진이 코끼리 같은 소리를 내며 우릉우릉 울었다. 이 와중에도 사람들은 제멋대로 내리고 탔다. 스리랑칸들은 자주 길이 아닌 곳에서 탔고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내렸는데 가끔은 움직이는 버스에서 아무렇지 않게 뛰어내리기도 해 사람을 여러 번 놀래켰다.
사람들은 한 둘씩 창문을 닫았고 몇몇은 가방에서 겉옷을 꺼내 입었다. 누와라엘리야가 이 정도로 쌀쌀한지 몰랐던 우리는 배낭 깊숙이 처박힌 후드티를 아쉬워하며 자주 어깨를 떨었다. 우리는 여전히 시기리야를 오르던 얇은 옷차림이었다. 찬바람이 피부를 쓸 때마다 옆자리 남자의 뜨거운 허벅지가 생각났다. 그는 여전히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는데 나는 이제는 진짜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부탁하고 싶어졌다. 버스는 코끼리 걸음으로 천천히 천천히 산을 기어올랐다.
거처는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곧장 결정됐다. 아무것도 흥정하고 싶지 않아 처음 만난 호객꾼이 제시한 대로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곧장 그 부주의함을 후회했다. 와이파이가 있으며 뜨거운 물이 잘 나오고 무엇보다 타운과 가깝다는 말에 호객을 승낙했는데 막상 차를 타고 가다 보니 타운과 멀어도 너무 먼 것이다.
"이봐!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타운이랑 가깝다고 하지 않았어?"
"다 왔어. 이 커브만 돌면 돼."
하지만 그가 말한 '이 커브'는 왼쪽으로 두 번, 오른쪽으로 세 번, 또 왼쪽으로 두 번을 더 돌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이미 타운에서 5분을 넘게 달린 거리였다. 우리는 차가 올라갈수록 내려갈 것이 걱정됐지만 일단은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인 뒤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정말이지 누와라엘리야는 너무 추웠다. 앞자리에 앉은 호객꾼들이 반팔을 입은 채 우리를 보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살짝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이 내려준 숙소는 겉으로 보기엔 살짝 낡은 것 같았지만 내부는 상상도 못할 만큼 낡아 있었다. 객실은 불을 켜도 어두웠고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추웠다. 로비에 놓인 소파 다리엔 곰팡이가 자랐고 통나무로 만든 천장엔 멀리서도 보일 만큼 커다란 애벌레 한 마리가 정지된 채 나무 틈에 끼여있었다. 어이없는 일은 계속 일어났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일단 하루는 묵자는 심정으로 짐을 풀었는데 뜨거운 물이 안 나왔다. 먼저 씻으라고 애써 순서를 양보해준 해리는 욕실에서 홀딱 벗은 나를 대신해 로비와 방을 오가며 사장과 입씨름을 했다. 주인은 결국 온수기를 고치지 못했는데 나는 체온이랑 별반 차이 없는 물로 씻는 바람에 미세하게 감기 기운을 앓았다. 호객꾼이 호언장담했던 와이파이는 아예 신호조차 없었고 서비스라고 건넨 수건에서는 걸레 냄새가 났다. 그래도 우리는 '여행이니까 어쩔 수 없지'하며 어떻게든 견뎠는데 주먹만 한 거미가 스르륵 기어 나왔을 때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둘 다 소리를 빽 질렀다.
"도대체 구라 안 친 게 뭐야! 가격 빼고는 다 속였잖아!"
우리가 한 실수는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씻고 나서 티 플랜테이션(차 농장) 투어를 하겠다고 사장에게 말해버린 것이다. 우리는 방 안에서 그 사달이 나고 나서야 속아도 완전히 속았음을 깨달았는데 투어를 취소하겠다고 나왔을 때는 이미 사장과 호객꾼이 차를 대기시킨 후였다. 우리는 온수가 안 나오고 와이파이가 뻥이었을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았지만 어쨌거나 뭐라도 먹기 위해선 타운으로 내려가야 했고 그러려면 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투어비는 생각보다 얼마 안 했기 때문에 우리는 속는 셈 치고 다시 봉고차에 올랐다. 바깥공기가 실내 온도보다 두 배쯤은 더 따뜻한 것 같았다.
사장은 티 플랜테이션으로 가는 도중 차를 세우고 누와라엘리야에서 제일 경치가 예쁜 곳이라며 어떤 스팟을 소개했다. 누와라엘리야는 머리에 짙은 구름을 여러개 이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땅과 하늘의 경계가 무너져 하나의 잘 그려진 그림처럼 보였다. 나는 땅을 이루는 초록색이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할 수만 있다면 포토샵 포인터로 꼭 찍어 내 몸 여기저기를 물들이고 싶었다.
해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누와라엘리야가 생각보다 예쁘다며, 콜롬보나 담불라처럼 덥지 않아 더 좋은 것 같다고도 말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지금껏 계속 더웠다.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씻으러 들어가는 순간까지 쭉 그랬다. 처음 보는 두꺼운 가디건을 걸친 해리가 나를 보며 웃었다. 옆 광대가 조금 옆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해리의 그 웃을 좋아한다. 이제야 너와 땀 흘리지 않고 걸어 볼 수 있으려나. 이런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조금 슬퍼졌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일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투어 코스는 어쩐 일인지 농장이 아니라 공장을 위주로 돌아갔다. 우리는 커다란 공장을 두 군데 쯤 들러 찻잎이 바삭하게 말라가는 과정과 잎의 상태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기준에 대해 배웠는데 그러고 나서도 사장은 우리를 농장으로 데려가 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내가 사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 농장은 언제 가? 나 찻잎 따는 거 보고 싶은데."
"아, 시간이 너무 늦어서 못 가. 지금 차 따는 사람 다 집에 갔을걸?"
분명 화내야 할 상황인데 어쩐지 체념해버리고 말았다. 이따위로 나올 거면 왜 돈을 받았냐, 우리가 겨우 이거 보려고 투어비를 낸 줄 아느냐, 애초에 농장에서 일몰 보여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냐며 싸워야 했지만 해리도 나도 그러지 않았다. 말 안 통하는 남친이랑 대화하는 기분이랄까. 말해봤자 달라질 게 없을 거 같아 우리는 묻기 보다 참기를 택했다. 이 인내에 심지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말이다.
마지막 코스는 차를 직접 마셔보고 원하는 찻잎을 구입할 수 있는 일종의 쇼핑센터 투어였다. 직원은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질 좋아 보이는 티를 여러 잔 세팅해주었는데 어떤 건 조금 달았고 어떤 건 많이 썼다. 어차피 차 맛을 잘 모르는 나는 대충 시음을 끝내고 바로 쇼핑에 나섰다. 스리랑카 홍차를 한국으로 보내주기로 엄마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핑을 마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도저히 참아주기 힘든 문제이기도 했다.
"저기요. 계산 잘못 하신 것 같은데요."
티를 종류별로 잔뜩 산 뒤 카드를 긁었는데 예상 금액보다 10만 원 정도가 더 결제된 것이다. 카운터에 있던 여자 직원에게 문의를 넣었는데 직원은 대수롭잖다는 표정으로 내가 고른 물건들 중 하나를 쿡 집으며 말했다.
"이거. 이게 100불 넘어."
직원이 가리킨 건 숙소 사장이 강력 추천한다며 내 쇼핑 바구니에 멋대로 집어넣은 실버티였다. 실버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종류별로 하나씩은 살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냥 하는 대로 두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만 다른 것보다 '0' 하나가 더 많았다. 확인해보니 애초에 딱 사장이 집어넣은 것만 가격표를 잘못 붙인 것. 의도적으로 덧붙인 숫자 '0'이 가격표 밖으로 튀어나올랑말랑했다. 아. 너네 한통속이구나. 나는 화를 꾹 참고 직원에게 가격을 정정해 다시 결제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매니저라는 사람이 나서더니 그건 안 된단다. 이미 결제가 끝났고 카드로 계산한 건 취소가 불가능하다고, 굳이 취소하려면 페널티를 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페널티도 내가 지불해야 된다고 했다. 사장이 옆에서 웃었다. 낮부터 참아온 무엇이 끓어올랐다.
나는 카운터 앞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똑바로 계산해줄 때까지 일어서지 않겠다고 버텼다. 해리도 옆에 서서 거들었다. 그러자 사장이 다가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냥 좀 봐줘. 어차피 그 돈 너희한테는 별 거 아니잖아?"
참아도 너무 오래 참았다. 숙소가 산골짜기였을 때, 온수가 안 나왔을 때, 수건이 걸레 같을 때, 하다못해 거미가 나왔을 때나 농장 대신 공장을 데려갔을 때만이라도 화를 냈어야 했는데. 매니저는 처음엔 신경쓰지 않는 척 하더니 내가 진짜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이자 슬슬 사장과 싸우기 시작했다. 호구가 호구짓을 안 해줘서 열이난 모양이다. 마침 창밖으로 유러피안 여행자를 가득 태운 투어 카가 이제 막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당장 다시 계산해. 안 그럼 나 저 백인 애들한테 다 말할 거야. 너네 여행자들 사이에서 사기꾼이라고 소문 쫙 나게 해줘?"
매니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사장에게 화를 냈다. 영어는 아니었지만 사장은 왠지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사과의 대상이 그쪽이 아니지 않냐고 따지고 싶던 찰나, 매니저가 내게 불쑥 돈뭉치를 건넸다.
"카드 취소는 못해. 잘못 낸 만큼 현금으로 줄 테니까 갖고 가."
나는 가게를 나서며 금액이 맞는지 확인했는데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차액이 딱 떨어졌다. 사장과 해리와 나. 우리는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명백한데 어쩐지 양쪽 모두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찬물이랑 걸레랑 거미보다 실버티가 더 싫었다. 문득, 나는 사장과 매니저 모두에게 사과 한 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스리랑카 여행이 조금 많이 고단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