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ep.6
이별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낯설었다

언젠가 해야 하지만, 되도록이면 미루고 싶은 것

by 서현지



이별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낯설었다



숙소를 옮기는 건 당연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온 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와이파이는 여즉 먹통이고 침낭 밖은 한결같이 추웠다. 온수는 이제 미지근한 수준도 못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양치만 겨우 했다. 밤이 되니 추워서 턱이 다 떨렸다. 할 일이 없어진 우리는 조금 더럽고 냄새나는 채로 침대에 누워 마지막 밤을 보냈다.


"엊그제 만난 것 같은데 벌써 헤어지네요 언니."


일주일은 빠르게 흘렀다. 새벽이 지나면 나는 남고 해리는 떠나는 방식으로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미리부터 슬퍼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해리는 내게 음악 한 곡을 추천했다. 콜드플레이의 'Hymn For The Weekend'.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인도에서 촬영했다고 했다. 인도는 내게 각별한 나라였고 물론 해리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엎드린 채 콜드플레이의 뮤비를 감상했다. 내가 익히 아는 배경 속에 크리스 마틴이 젖은 채 뛰어놀았고 비욘세가 희한한 옷을 입고 춤을 췄다. 비욘세는 가슴이 드러난 금색 드레스를 입고 인도 여신들처럼 목과 팔로만 춤을 췄는데 그 모습이 너무 뜬금없어서 나는 조금 웃었다.


"웃기죠 언니. 여기서 비욘세 춤추는 거 좀 갑작스럽지 않아요?"


우리는 침대에 드러누워 이유 없이 키득댔다. 함께 웃고 있으니 조금 덜 추운 것 같기도 했다. 해리는 앞으로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꼭 노해리를 떠올리라고 말했다. 내가 가르쳐 준 노래잖아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나는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불편함으로 가득했던 낡은 숙소에서, 그나마 하나 남겨갈 좋은 기억이었다. 해리와의 마지막 새벽은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지나갔다.




체크아웃은 빠르게 진행됐다. 우리는 배낭에 침낭만 대충 욱여넣은 후 밖으로 나왔는데 주인은 뻔뻔하게도 며칠 더 묵는 거 아니었냐며 놀란 눈을 했다. 너 같으면 그러겠니. 툭 뱉어 버리고 싶은 말을 간신히 참으며 방값을 계산했다. 따지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만두었다. 싸울 자신이 없는 게 아니라 해리와 마지막 날이라 참은 것이다.

주인은 잔돈을 거슬러 주는 순간까지 왜 며칠 더 묵지 않냐, 아깝게 하루 만에 누와라엘리야를 떠나는 거냐며 귀찮게 굴었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화를 낸 뒤 무감하게 봉고차에 올랐다. 안 그래도 싫어 죽겠는데 떠나는 순간까지 이 차를 타야 하다니. 나는 새벽 내내 해리와 떠드느라 오늘 묵을 방을 아직 예약하지 못했는데 어딜 묵더라도 여기보다는 나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나는 차창 밖으로 낡은 건물을 바라보며 이것이 노숙과 다를 게 무엇인가 생각했다. 춥고 못 씻고 벌레 나오고 사기까지 당할 뻔하다니. 하다못해 노숙을 했다면 돈이라도 굳었을 텐데. 분노가 분노를 부르는 것 같아 생각을 끊어내려 무던히 애써야 했다.


차는 빠르게 내리막을 달려 시내에 닿았다. 누와라엘리야 타운은 아주 작았기 때문에 벌써 웬만한 것들은 눈에 익었다. 사장은 마트 앞에 차를 세웠다. 마트는 시내의 중심에 있었다. 우리는 문을 열자마자 인사도 없이 뒤돌아섰는데 눈치 없는 사장은 끝까지 창문을 내리고 시끄럽게 굴었다.


"잘 가! 다음에 또 와!"


보는 눈이 많지 않았다면 대번에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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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운 구석에 주저앉아 갈만한 숙소를 서칭했다. 원래는 해리를 보낸 뒤 혼자 숙소를 알아볼 예정이었지만 버스 출발시간이 생각보다 늦어 짐을 풀 장소가 필요했다.


놀랍게도 타운 중심에는 갈만한 숙소가 한 군데도 없었다. 괜찮아 보이는 호텔이 두어 군데 있긴 했지만 숙박비가 어마어마했다. 중심가 있는 호텔은 1박에 15만 원, 이 동네에서 최고급이라는 그랜드 호텔은 그 두 배였다. 누와라엘리야의 숙박비는 타운과 멀수록 저렴했고 가까워질수록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최대 예산은 1박에 5만 원이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써야 할지도 몰랐다. 당황해서인지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때 해리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언니, 여기 어때요?"


해리가 발견한 건 이국적인 느낌의 저택이었다. 가격은 1박에 4만 원. 거실 중심에 나무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고풍스러운 정도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는 않았다. 스크롤을 내리니 테라스와 객실 사진이 연이어 나타났다. 타운에서 조금 멀긴 하지만 이런 숙소라면 적어도 춥거나 벌레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테라스가 있으니 빨래도 널 수 있고, 어쩌면 부엌에서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곧장 어플에 연결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헬로우."


30대 초반쯤 되는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영어는 항상 어딘가 압도적인 구석이 있기 때문에 나는 습관처럼 크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안 그래도 짧은 영어가 더 짧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 안녕하세요. 지금 타운인데요, 당장 1인실 입실할 수 있나요?"

"그럼요. 걸어오시나요?"

"걸어서 갈 수 있나요?"

"30분 정도 걸릴 거예요"

"젠장! 뚝뚝 타고 갈게요."


남자는 크게 웃었다. 실없어 보였지만 어쩐지 따라 웃었다.


"뚝뚝 기사한테 숙소 이름 말하세요. 바로 데려다줄 겁니다."

"어..이름이 뭐였죠?"

"하이랑카 입니다."


뚝뚝은 다시 산으로 달렸다. 새 숙소는 그 전 숙소와 정반대 방향이었다. 왠지 그것만으로도 적잖이 복수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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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랑카는 뚝뚝을 타고 길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만 멀었다. 짐이 없었다면 도보 20분 대로 끊을 거리였다. 도착해서 본 숙소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좋았는데 특히 축구장 크기의 넓은 앞마당과 쪽문 밖으로 난 텃밭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전화 속 남자는 현관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다부진 내 또래의 스리랑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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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반가워~"

"안녕하세요. 사장님이세요?"

"응 내가 오너야."


남자는 자신을 '히란'이라 소개했다. 풀네임은 히란 자마메스 어쩌구지만 기억하기 어려울테니 그냥 히란으로 부르란다. 나는 나를 '지아'라고 소개했다. 풀네임은 '서현지'지만 같은 이유로 설명은 생략했다.


남자는 목소리로 상상한 것보다 훨씬 밝은 인상을 가졌는데 웃을 때마다 광대가 볼록볼록 올라가 어쩐지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다. 그는 내가 하이랑카를 방문한 첫 번째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요청하기도 전에 디스카운트를 해줬는데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방값을 5불이나 깎았다. 그는 왜 한국을 좋아하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일단 뒤로 밀어두고 방부터 보여달라고 했다. 히란은 로비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I like 신라면"이라며 종알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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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란은 우리를 2층 맨 끝 방으로 안내했다. 누가 봐도 이 숙소에서 가장 비싸고 안전할 것 같은 방이었다. 객실은 홍보 사진만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넓었고, 커다란 창문이 있어 불을 켜지 않아도 내부가 훤했다. 수건도 두 개나 있었는데 상체를 완전히 덮을 정도의 크기라 샤워 시에 편할 것 같았다. 정말이지 상냥한 꿈을 꿀 것 같은 방이었다. 이 방을 하루만 일찍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해리가 길게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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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짐을 내려놓고 다시 타운으로 내려왔다. 누와라엘리야에는 '빅토리아 파크'라는 거대한 공원이 하나 있는데 마침 버스 정류장 근처라 동행과 마지막을 함께 하기에 딱 좋았다. 우리는 타운에서 먹을거리를 산 뒤 빅토리아 파크를 나란히 걸었다. 해발 2000m에 있는 누와라엘리야는 바람은 차갑지만 해는 뜨겁고, 그러면서도 나무는 푸르렀다. 길 양옆으로는 꽃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는데 그 색이 하도 예뻐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멀리 걸었다. 갑자기 혼자가 되더라도 조금 덜 슬플 것 같은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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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별을 무서워하는 주제에 정을 빨리 나눠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모든 헤어짐 후에 후유증을 길게 앓는다. 둘이 하던 걸 혼자 하는 순간마다 마음이 시리고, 어쩌다 동행이 편지라도 써놓고 가는 날엔 높은 확률로 울었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착한 것보다 조금 얄미운 사람이 편할 때도 있었다. 적어도 상대가 떠나고 내가 슬퍼할 일은 없을 테니까.


해리는 좋은 사람이었다.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말했고 상대를 간 보느라 쓸데없이 힘을 쏟지도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빠르고 깊게 친해졌고 때문에 나는 해리의 부재를 미리부터 두려워했다. 여행 중 겪는 흔한 이별이지만 나는 매번 처음 하는 것처럼 서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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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게요 언니. 우리 한국에서 꼭 봐요."


버스는 제 시간에 도착했다가 금새 떠났다. 콜롬보에서 만나 네곰보와 캔디, 담불라를 함께 여행한 우리는 누와라엘리야에서 헤어졌다. 많은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손을 흔들었고 해리는 그저 '또 보자'라고 말했다. 말에는 주술성이 있어서 왠지 우리는 '또 보자'는 말 때문에 반드시 다시 만날 것만 같았다. 짧은 말이었지만 상황을 위로하기엔 충분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지켜보다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마자 얼른 뚝뚝을 잡아탔다.

함께 있던 자리에 혼자 서 있기 싫었다.

뚝뚝은 산비탈을 돌아 빠르게 하이랑카로 달렸다.

조금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 [7편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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