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로부터 조금 멀리 앉아 있었다
손빨래와 맨손으로 먹는 밥
빨래를 해야 할 것 같다. 콜롬보에서부터 밀린 빨래가 배낭에 한가득이다.
이동이 잦을 때는 빨래하는 것도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덜 마른 빨래는 무게가 어마어마하고, 그대로 배낭에 욱여넣으면 반드시 쉰내가 베었다. 나는 빨래에도 곰팡이가 필 수 있다는 것을 여행하면서 처음 알았는데, 한 번 생긴 곰팡이는 잘 못 꾼 나쁜 꿈처럼 배낭에 오래 남아 멀쩡한 옷까지 이끼를 묻혔다. 그래서 빨래는 오래 머물고 싶은 지역을 만날 때까지 되도록 미룬다. 빨아둔 옷이 없으면 입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으면 되고, 그러기 싫은 날엔 새 옷을 사 입으면 그만이다. 어쩌면 나는 새 옷을 사 입기 위해 빨래를 미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속옷은 열심히 빤다. 팬티는 자기 전에 잊지 않고 손빨래했고 브래지어는 못해도 이삼일에 한 번은 꼭 세탁했다. 패드가 달린 브래지어는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에 탈수 후에도 마른 수건으로 꾹꾹 짜주어야 한다. 그렇게 사용된 수건은 늘 축축이 젖기 때문에 창가에 널어 하루나 이틀 정도 말린다. 수건은 딱 두 개만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젖은 수건이 마를 때까지는 남은 수건을 사용한다. 그 하나로 몸도 닦고 머리도 닦고 발도 닦는다. 조금 더럽지만 상관없다. 내가 더럽다는 것은 나만 아는 비밀이고, 대부분의 여행자는 이 정도의 비밀쯤은 안고 산다. 여행을 한다는 건 어쩌면 조금 더 뻔뻔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빨래를 할 때는 주로 세탁 세제를 사용하지만 없으면 비누나 폼클렌징도 괜찮았다. 샴푸나 바디워시를 쓸 때도 있지만 그건 거품이 많아 헹구기 힘들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자제했다. 세탁 세제는 마트에서 대용량으로 구입해도 되지만 배낭 무게 때문에 주로 구멍가게에서 파는 1회분 세제를 쓴다. 대여섯 개쯤 배낭에 쟁여두면 최소 열흘은 걱정 없다.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똑똑 끊어 양동이에 푼 뒤, 빨랫감을 넣고 발로 10분쯤 밟아주면 끝이다.
빨래를 밟는 것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지루하기 때문에 나는 의식적으로 딴생각을 했다. 떠올리는 것들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대부분은 며칠 전에 만난 사람들이나 그때 했던 말들, 후회되는 행동,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말 대신 이 말을 해야지, 같은 것들이다. 과거 기억을 끊임없이 소환하다 보면 감각이 흐려지며 머리가 살짝 몽롱해지는데 이때 정신을 한 번씩 붙잡아 주지 않으면 높은 확률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그래서 나는 발빨래를 할 때면 꼭 세면대나 수건걸이를 단단히 붙든다. 아직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상상하며 나는 자주 몸을 떨었다.
세탁은 전초전이고 본게임은 탈수부터다. 여름 옷은 그나마 나았지만 후드티나 겨울용 바지는 이야기가 달랐다. 두꺼운 옷은 옷감에 물이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꽉꽉 짜줘야 하는데 나는 이 과정에서 자주 손톱을 다치거나 손목을 삐끗했다. 이럴 때면 문명의 혜택으로부터 돈까지 써가며 멀어져온 걸 후회하기도 한다.
다행히 하이랑카에는 세탁기가 있었다. 손님에게 대여해준 적은 없지만 히란이 특별히 사용을 허락했다. 그는 숙소 내 유일한 동양인인 나를 부쩍 신경 썼다. 아마도 서양인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낄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는데, 그의 관심 덕분에라도 나는 외롭지 않았다.
세탁기는 1층 복도에 있었다. 물 빠지는 호스 옆으로 양파를 담은 망, 깎다 만 감자 같은 것들이 굴러다녔다. 세제와 섬유 유연제는 숙소에 있는 것을 쓰면 되었다. 선반에는 핑크빛 액체가 담긴 반투명한 통이 있었다. 장미 모양 스티커가 붙은 것으로 보아 섬유 유연제 같았는데 액체 색깔이 딱 형광펜 같아 왠지 몸에 아주 나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탁기 뚜껑을 열고 티셔츠와 겉옷 몇 개, 한국에서 산 바지 두 벌과 수건을 쑤셔 넣었다. 이불빨래를 위해 마련한 세탁기라 옷감을 다 넣고도 공간이 넉넉했다. 동행이 있었다면 돈을 나눠내고 같이 돌려도 좋았을 텐데. 혼자 여행하는 것은 여러모로 편하지만 때로는 조금 아쉽거나 많이 비효율적이었다.
물높이와 세탁 강도는 수동으로 조절하면 되었는데 뚜껑에 버젓이 LG 마크가 붙어있었지만 어쩐지 한국 것과는 사용법이 달랐다. 나는 모든 설정을 '중간'으로 맞춘 뒤 작동 버튼을 눌렀다. 설정을 대충 하면 빨래도 대충 되겠지만, 대충대충 사는 것은 편했기 때문에 나는 자주 그랬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나는 기계가 해줄 수 없는 것을 했다. 네팔이나 인도, 스리랑카에 산 옷들은 물 빠짐이 심해 다른 옷과 섞어 빨 수 없었는데, 때문에 빨래를 할 때는 그런 옷들만 분리해 따로 손세탁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여행 초반에는 빨래 분리하는 것을 깜빡해 자주 옷을 버렸는데, 그 때문에 내 수건에는 인도도 네팔도 스리랑카도 베었다. 오늘 처리할 것은 뉴델리에서 산 파란색 바지다. 물을 채운 세면대에 바지를 쑤셔 넣고 꾹꾹 눌렀다. 조그만 세면대에 파란색 인도가 가득 찼다.
노동을 끝내니 배가 고팠다. 아침은 히란이 챙겨준 식빵을 먹었는데 스리랑카의 빵들은 푸석하고 밀도가 낮아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사둔 재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스파게티를 만들기로 했다. 어제 마트에서 파스타면과 토마토소스를 사두었다.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히란이 주방으로 걸어왔다.
"지아. 점심 만들어?"
"응. 나가기 귀찮아서."
히란은 마늘과 양파를 빌려줄 테니 스파게티를 조금만 나눠 달라고 말했다. 그는 돈도 많고 커다란 주방도 가졌지만 요리는 할 줄 몰랐다. 그래선지 히란은 외국 손님들이 뭔가 만들어 먹을 때마다 자주 주방을 서성였다. 나는 히란의 제안을 승낙했다. 마늘과 양파는 토마토 스파게티와 잘 어울리는 재료였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핑계로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내가 요리를 시작하자 이모님도 주변을 오가며 분주하게 히란과 매니저의 식사를 준비했다. 두 사람의 점심 식사를 차리는 것은 그녀의 여러 업무 중 하나다. 가스레인지가 2구뿐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모님과 자주 손이나 발이 닿았다. 이모님의 피부는 겉으로는 거칠어 보였지만 막상 닿으니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어려워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웃기도 하고 먼저 말도 걸었다. 이모님의 말은 한국어도 영어도 아니지만 어쩐지 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알아듣는다는 것을 이모님도 아시는 것 같았다.
식사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테이블에는 이모님이 차린 커리와 반찬들이 가득 올라왔다. 히란은 스파게티 접시를 받아들고 흰 이를 빼곡히 드러내며 웃었다. 음식 냄새를 맡고 온 히란과 매니저가 각각 오른쪽과 맞은편에 앉았다.
"히란. 이모님은 어디 갔어? 왜 안 오셔?"
"응 신경 쓰지 말고 먹어. 그분은 항상 혼자 식사해."
"왜?"
"나도 모르지."
히란은 어깨를 으쓱하곤 식사를 시작했다. 매니저는 이미 맨손으로 밥을 뭉치고 있었다. 스리랑카 쌀은 찰기가 하나도 없지만 매니저는 용케 밥 한 톨 흘리지 않고 입 안으로 쏙쏙 집어 넣었다.
나는 이모님을 찾아 복도로 나갔다. 그녀는 세탁기 옆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모님은 숨긴 것 없이 들킨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안으로 들어가자고 손짓했다. 이모님은 손사레를 쳤지만 내가 팔을 잡고 일으키니 마지못해 일어나는 듯 일어났다. 그녀는 우리 세 사람과 가장 먼, 테이블 가장 끝 부분에 접시를 내려놓고 앉았다. 히란은 이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모님을 혼자 밥 먹게 한 것은 성별일까 신분일까 아니면 성격일까. 떨어져 앉은 거리만큼, 그녀는 여기서 조금 멀리 있는 사람 같았다.
맨손으로 밥을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포크를 놀렸다. 커리에 고기를 넣지 않는 사람들. 날림 쌀을 손으로 뭉칠 줄 아는 사람들. 매일 얼굴을 보지만 밥은 같이 먹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파스타는 조금씩 조금씩 줄었다.
누와라엘리야의 산바람이 창문으로 짓쳐들었다. 빨래가 잘 마를 것 같은 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