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찌우는 사람들
1
인도에서 사람 하나가 오기로 했다. 인도 뉴델리를 여행하다 만난 오빠인데, 스리랑카에 오는 김에 누와라엘리야에도 들리겠다고 했다. 여기서 이 오빠는 대충 '환'으로 부르겠다.
환과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또 우연히도 같은 대구 사람이었다. 마음껏 촌스러워져도 되는 사람 앞에서 나는 편해졌고 때문에 우리는 빨리 친해졌다. 단 며칠을 같이 있었지만 우리는 많이 알았기에, 헤어지던 날 조금 형식적이고 많이 진심인 상태로 다음을 기약했다.
환이 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급해졌다. 부탁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는 스리랑카보다 많이 크고, 그만큼 다양한 것들을 팔기 때문에 나는 풍족한 땅에서 날아오는 그에게 라면을 사와줄 것을 부탁했다. 신라면이면 제일 좋겠지만 아니어도 괜찮았다. 환은 기회가 되면 되도록 사와보겠다고 소극적으로 약속해놓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라면을 10개나 짊어지고 하이랑카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그는 살이 많이 빠져있었고, 여전히 반가울 정도로 촌스러웠다. 보름 만에 보는 한국인이었다. 보름 만에 뱉어보는 한국어기도 했다.
환이 온 후 내 혀는 영어를 할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움직였다. 한국어를 발음할 때는 영어를 뱉을 때와 다른 근육을 써야 하는데 나는 쉬던 혀 근육 일부가 질기게 당기는 느낌을 받으며 약간 변태처럼 웃었다. 모국어를 한다는 건 조금 더 진짜의 나를 만나는 것과도 같아서 나는 오랜만에 거울을 보는 기분이 되었다. 오빠, 찌개, 밥, 산책, 이발, 추워, 잘 자. 나는 나를 낳고 길러온 언어를 마음껏 사용하며 환을 맞았다. 히란은 갑자기 빨리, 많이 말하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영어 할 때와는 목소리조차 달라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다. 환이 오고부터 하이랑카에는 지아도 있었고 현지도 있었다.
환이 오고 나서 나는 배고픈 느낌이 좋아졌다. 그가 매 끼니마다 맛있는 걸 해줬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자취를 한 환은 요리를 자주 했고 또 잘했다. 환은 말도 안 되는 재료들을 이용해 제대로 된 한 상을 차려내는 재능이 있었는데, 그가 만든 음식 중 제일 신기했던 건 찜닭이었다. 그는 재래시장에서 사온 간장맛 나는 이름 모를 소스에 콜라를 들이부어 찜닭을 만들었는데 거짓말 안 하고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어떻게 그런 재료로 이런 맛을 내는 거냐고 물으면 그는 '그냥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았다'라고 대답했다. 환은 여러모로 혀를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의 손과 눈과 지갑에서 탄생하는 음식들을 먹으며 나는 편하게 웃고 마음껏 살쪘다.
환이 만드는 음식은 히란과 매니저와 주방 이모님도 좋아했다. 하루는 환이 중국산 고춧가루와 채소 몇 가지를 이용해 짬뽕을 만들었는데 히란은 그 짬뽕을 한국 음식도 중국 음식도 아닌 '환의 음식'이라 표현했다. 확실히 환의 재능을 털어 만든 음식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맛이긴 했다. 그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스리랑카에는 없는 소리와 음식과 정서를 즐겼다. 그가 있어서 좋은 만큼 그가 없는 생활로 돌아갈 그날이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떠나기 전, 나는 환이 만들어둔 배추김치를 보며 조금 울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환의 김치였다.
2
환이 떠나고 얼마지않아 타운에서 한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마트 앞에서 모녀 중 '녀'를 만났는데, 우리는 서로를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헷갈려 하다 불현듯 나타난 '모'가 '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인사했다. 모와 녀는 나를 많이 좋아했다.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녀는 우리나라 나이로 열일곱 살이었다. 나는 녀의 나이를 한국 교육과정 중 '고1'과 배치시키다 조금 갸웃했다. 한국은 아직 학기 중이기 때문이다. 섣불리 묻지 못하는 내게 모는 익숙하다는 듯 녀가 휴학 중이라고 설명했다. 배움을 쉬게 된 이유가 궁금했지만 함부로 묻는 대신 나는 그들을 하이랑카로 초대했다. 두 사람이 냄비에 팔팔 끓인 한국 라면이 먹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이랑카는 그들이 묵는 숙소에서 많이 멀었지만 사용이 자유로운 주방이 있었다. 모녀는 드디어 한식을 먹는다며 좋아했고, 나는 한식을 먹을 때 맞은편에 앉아 있어 줄 사람이 생겨 좋았다.
세계를 여행 중인 두 사람에겐 떠돈 지 오래된 사람 특유의 바깥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아무렇게나 자른 손톱, 뿌리와 끝 색이 차이 나는 머리카락, 까슬해진 발등, 인종을 바꿔버린 그을린 피부에서 가장 강하게 풍겼다. 히란은 하이랑카를 방문하는 세 번째와 네 번째 한국인인 모녀를 반겼다. 나이순으로 치면 모가 세 번째고 녀가 네 번째겠지만 현관에 발을 들인 순서로는 녀가 먼저였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지아의 손님이지 하이랑카의 손님은 아니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끝이 뭉툭해진 낡은 포크로 라면을 건졌다.
한 냄비에 든 음식을 마구 나눠먹는 동안 나는 모와 녀에 대해 조금 알았다. 두 사람이 여행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었다는 것. 스리랑카 전에 방문한 나라가 인도였다는 것. 앞으로 여행 기간이 6개월도 넘게 남았다는 것. 그리고 녀의 휴학을 모가 먼저 제안했다는 것도 알았다.
"배움이란 게 꼭 책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모는 녀에게 조금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녀가 너무 자라기 전에. 현실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녀 역시 모의 제안이 좋았다.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여행이 하고 싶었고, 반드시 남과 같은 속도로 고등학생이 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10대 시절의 열 칸 중 한 칸쯤은 비워도 된다는 것에 동의했고, 그래서 올해 초 각자 학생과 주부에서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나는 모녀의 대화를 조금 대단하거나 남다르거나 특별하게 들으며 부러워하거나 감탄하거나 질투했다. 내가 해보지 못한 생각과 처해보지 않은 상황을 맹렬히 지나는 중인 두 사람이 부러웠다. 지금 이들이 테이블에서 나눠먹고 있는 건 라면일까, 시간일까, 그 어떤 정서인 걸까. 나는 이들이 지난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다음 날 나는 타운에서 모녀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처음 보는 중년의 남성도 함께였다. 남성이 코이카 소속 단원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나를 서현지라고 소개했다.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