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ep.13
한국말을 나누어 드립니다

국문과 출신 여행자가 스리랑카에 살면

by 서현지



1


모녀가 데리고 온 남자는 두 사람의 나이를 합친 것보다 약간만 덜 살았다. 내가 세상에 없던 시절에 태어나 무수한 시간을 몸으로 통과해온 남자는 완전한 어른의 모습을 한 채 인사했다. 나는 그가 고등학생 때 과학 선생님이랑 엄청 닮았다고 잠깐 생각했는데 뒤이어 내가 그 선생님을 퍽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상기하곤 몰래 웃었다. 실제로는 그를 쌤이라 불렀지만 여기서는 김으로 칭하겠다.


김은 우리를 누와라엘리야에서 가장 비싼 카페로 안내했다. 그랜드 호텔 카페는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질 좋은 밀가루로 만든 케이크 다운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혈육인 두 사람과 각기 접점이 없는 나머지 두 사람은 헐겁게 마주 앉아 마시거나 먹거나 떠들었다.


김은 누와라엘리야에 1년째 살았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김은 어느 날 돌연 창작을 멈추고 코이카 단원이 됐다. 스리랑카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친다. 김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은 공인 점수를 만들어 한국으로 떠난다. 그들은 우리말을 배우기 위해 길게는 몇 년까지 투자하지만 막상 가서 하는 일은 말이랄 게 필요 없는 단순노동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한국에서의 노동은 많은 부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꾸준히 공부했다. 말이란 하는 건 쉽지만 하게 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김은 자주 지쳤다. 그래도 꾸준히 가르쳤다. 쓰거나 읽거나 듣게 하는 일을 수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학생 중 누군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가 스리랑카에서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이기도 했다. 코이카에서 김의 역할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군가를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견인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김은 모국어를 나누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은 화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누와라엘리야에 처음 왔을 때 김은 배정받은 숙소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다 닫았지만 덜 닫힌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벽은 쩍쩍 갈라져 벌레와 냉기가 스며들었다. 아무리 봉사하러 왔다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본래 코이카에서 김에게 제공해 줄 숙소는 이보다 훨씬 좋았다. 하이랑카 저택만큼은 아니라도 적어도 건강에 이상이 생길 정도의 숙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코이카가 지원한 김의 정착 지원금은 스리랑카 현지 기관이 넘겨받으며 토막 났고, 그 쪼개진 파이로 지자체에서 겨우 마련한 곳이 바로 그 집이었다. 스리랑카에서는 왕왕 있는 일이지만 영문 모르는 김은 스리랑카에 오자마자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살다 살다 이런 감기는 처음이었다. 숨 쉴 때마다 칼바람이 목을 찢었고 아무리 이불을 덮어도 몸이 떨렸다.

며칠 후 기운을 차리자마자 김은 숙소에 간이 화로를 설치했다. 그는 전기나 콘센트 없이 오로지 흙과 나무와 불만으로 집을 데우는 능력이 있었다. 시멘트를 쓰면 더 좋지만 숙소를 나갈 때 복구해주어야 해 그럴 수 없었다. 김의 화로는 작았지만 꽤 쓸만했다. 가끔 일이 끝난 뒤 화로에 고구마나 감자를 넣어 구워 먹기도 했다. 잘 굽힌 뿌리채소를 호호 불어 한 입씩 베어먹는 것은 김이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김의 화로를 본 스리랑칸들은 무럭 관심을 보였다. 불로 공기를 데우는 방식은 신선했고 무엇보다 재료가 쌌다. 김은 친해진 주민들의 집을 찾아가 재료비만 받고 화로를 만들어 주었다. 요청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나중엔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화로는 발상하는 게 어렵지 방식은 쉬웠기 때문에 스리랑칸들은 곧잘 따라 했다. 김은 누와라엘리야에 살며 숙소를 여러 번 옮겼는데 그때마다 이웃들에게 화로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 김이 머무는 자리마다 누와라엘리야는 부분부분 따뜻해졌다.


누와라엘리야에 살아보기로 했다니 김은 기뻐하면서 걱정했다. 기쁜 이유는 모국어를 나눌 사람이 생겨서고, 걱정한 이유는 사는 것과 여행하는 것은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은 내가 스리랑칸들에게 받을지 모를 상처를 미리부터 염려했다. 스리랑카는 좋은 나라지만 모든 스리랑칸들이 좋지는 않다고. 그래서 떠도는 사람보다 머무는 사람이 똥 밟을 확률도 훨씬 높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하는 김의 얼굴은 조금 지쳐 있었다. 반백이 넘은 김이 누와라엘리야에서 보내왔을 시간과 상황들을 상상하니 조금 숨쉬기 힘들었다.

그래도 김은 나의 살아볼 시간들을 응원했다. 살아보기에 누와라엘리야는 퍽 적절한 지역이라고도 했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2


며칠 후 나는 김의 일터를 찾았다. 모녀가 엘라로 떠난 날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떠난 누와라엘리야를 걸으며 나는 모녀가 빠져나간 옆구리를 쓸었다. 누가 있다 없어지는 건 몸의 한 부분을 떼어내는 것과 같아서 가끔은 두렵거나 쓰렸다. 이 느낌이 싫어 나는 모녀를 빨리 잊고 싶었는데 동시에 얼른 다시 보고 싶기도 했다.


오늘은 김을 대신해 강단에 서기로 했다. 국문과 출신에 글 쓰는 일을 한다고 경솔하게 말해버린 탓에 덜컥 일일 한국어 교사가 된 것이다. 김은 학생들이 꽤 착하다며 내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눈을 반짝였다. 무엇을 위한 기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회라는 말은 희망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깜빡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가르친다는 건 내가 소유한 것을 그렇지 못한 자에게 나눠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가진 게 많지 않은 나는 늘 긴장한다. 의도적으로 짧게 만들거나 지나치게 정직히 조합한 한국어를 뱉고 있을 스스로를 상상하니 미리부터 부끄러웠다. 캐나다에서 한국어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친 건 잘 한 일이었다. 처음도 아닌데 저것밖에 못하는 사람보다 처음인 것치고 썩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게 백번 나았다. 첫인사로 안녕하세요가 나을지 Hi가 나을지 아유보완(스리랑카 말로 안녕하세요. 아이유+보아로 외우면 편하다)이 나을지 고민하는 동안 어느새 김이 일하는 기관에 도착해 있었다.


김은 푸른 정장에 회색 베레모를 쓴 채 인사했다. 교실에는 온통 새것 냄새가 났다. 벽도 책상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컴퓨터가 좋았다. 송현동 자취방에 있는 내 것보다 최신 모델이었다. 이런 것들을 갖추도록 기관에 요청한 것은 김이었다. 교실은 작년 해외 봉사 단체에서 수리했고 컴퓨터와 교재 일체는 코이카에서 지원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다시 말했다. 끝내 기각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공했다. 김이 교실을 관리하고 돌본 덕에 우리말을 배우러 온 아이들은 조금 덜 춥고 덜 더웠다.


김은 학생들이 쓸 책상도 직접 만들었다. 디자인부터 나무의 종류까지 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기성품보다 예쁘고 내구성도 좋은 책상은 그가 이 교실에서 일군 것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어쩌면 내게 일일 봉사활동을 권한 건 이 작고 깔끔한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지도 몰랐다. 내가 와서 김은 진심으로 좋아 보였다.


학생은 많지 않았다.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주 수업에 빠졌다. 수업에 오려면 버스를 타야 하고 그러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쨌거나 일을 해야 했다. 공부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조금 절박하거나 많이 절박한 이들 앞에 성의 있는 자세로 섰다. 첫인사는 안녕하세요로 했다. 듣는 이들이 당연히 알고 있을 한국어였다.


예상대로 학생들은 한국어를 외국인이 발음하는 한국어처럼 했다. 을,를,이,가와 같은 조사는 대부분 빠져있었고 어쩌다 시도하더라도 절반의 확률로 틀렸다. 가장 큰 문제는 소리 내어 말하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했다. 틀리는 것은 그들에게 부끄러움 이상의 무엇인 듯했다. 학생들은 숨소리 보다 아주 약간만 큰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나는 자꾸 허리를 숙이거나 손을 펴 귀에 갖다 댔다.


나는 준비해 간 회화 수업을 포기하고 스피드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은 공부보다 재미있고 틀려도 덜 창피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관심을 보였다. 지우개 칠판 책상 선생님 따위의 단어가 적힌 종이를 보고 학생들은 드디어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이기기 위해 빨리 말했고 아는 단어일수록 크게 설명했다. 여전히 작은 소리였지만 괜찮았다. 게임은 맞고 틀리는 것보단 이기고 지는 문제기 때문에 학생들은 많이 말했다.

열심히 말하고 듣는 학생들 앞에서 나는 근거 없이 웃었다. 뭔가를 끌어내는 것은 이렇게나 기쁜 일이었다. 가진 게 많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3


수업이 끝난 후 나는 김에게 왜 이 일을 하게 됐는지 물었다. 잘나가는 영화감독이었던 그는 왜 갑자기 화로를 굽고 한국어를 가르치게 됐을까. 김은 뜨거운 커피를 조심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왜 하긴. 하고 싶은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

명료한 말에 어쩐지 움직일 수가 없어졌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일이라. 두 가지가 일치한다는 건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김의 의지로 이뤄둔 화로와 교실과 책상과 학생들을 떠올렸다. 왠지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반드시 한국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김은 나를 가르치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여러 가지를 배웠다. 아니 어쩌면 그는 나조차도 가르쳤는지도 모르겠다.



김의 정장과 모자와 얼굴


안녕하세요. 아유보완.


말하지 않겠다면, 옆으로 가겠다


어렵다 그치. 말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꼭 그러도록 해
서현지와 우펙샤. 다시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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