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ep.1 이때만 해도 몰랐지. 살게 될 줄은

내가 할 줄은 몰랐던 스리랑카 생활기

by 서현지



애초에 이 여행은 길어야 '보름 짜리'였다. 그래서 모든 게 괜찮았다. 더위도, 벌레도, 느려터진 버스조차 어차피 보름 뒤면 모두 안녕일 테니. 끝이 정해진 여행에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혹시나 아쉬워질까봐 시간을 쪼개어 걸었고, 먹었고, 놀았고, 그리고 웃었다. 그렇게 잠깐일 줄 알았다. 처음엔, 물론 처음엔 말이다.

- 스리랑카 생활기, 그 시작에서 -






Ep.1 이때만 해도 몰랐지, 살게 될 줄은


절절 끓는 스리랑카 땅에 도착한 지 3일이 흘렀다. 평균 40도를 웃도는 4월의 콜롬보. 드라이기를 입에 거꾸로 문 것 같은 홧홧한 열기에 온 하루를 빵처럼 구워져지냈더니 매일 아침 눈 뜨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전날 오줌도 안 나올 만큼 땀을 흘렸는데도 아직도 더 새어 나올 물기가 남았나. 베개에 닿은 옆얼굴이 찝찝하다. 다음 숙소는 돈이 얼마가 됐든 꼭 에어컨 딸린 방으로 잡자고 해야지.


좀 더 눈을 감고 뻐겨볼까 싶었는데 창문 밖에서 까마귀가 까-악 울었다. 때마침 화장실 문이 달칵 열리며 해리가 화장실 실내화를 탁탁 벗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방 안으로 향긋한 샴푸 냄새가 훅 끼쳤다.


"언니, 일어날 시간이야, 어서 씻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침대 위에 놓인 핸드폰 홈버튼을 눌렀다.

아침 일곱 시.


오마이갓.

아침형 인간과 여행하는 건 역시 피곤하다.





해리와 원래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 남인도를 떠돌던 중 인근국인 스리랑카 여행을 급하게 결정하게 됐고, 혼자보단 둘이 낫겠다 싶어 카페에 동행 구하는 글을 올렸더니 그녀가 쪽지를 보내온 거다.


- 저도 같은 날 콜롬보로 입국해요. 공항에서 만나실래요?


동일한 입국 날짜. 게다가 여자 여행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동성인 여행자는 여러모로 이득볼 게 많으니까. 방을 셰어할 수 있으니 경비 절감에도 도움이 되고, 어지간해서는 체력도 엇비슷할 테니 여행 리듬 맞추기도 훨씬 편리할 테지.


그렇게 우리는 공항에서부터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이름과 나이, 여행 기간과 루트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데 까지는 단 몇 분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콜롬보 시내로 이동해 숙소를 잡았고, 해리가 첫 날밤부터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기꺼이 나눠준 덕에 나는 그녀에게 빨리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무릇 여행자들의 관계는 천원짜리 라면 하나에도 손쉽게 말랑해지는 법이다.





스리랑카는 인도 바로 밑에 있는 섬나라다. 국토의 모양이 꼭 물방울 같다고 해서 '인도양의 눈물'이라는 별칭이 있지만 정작 현지인들은 우리가 왜 '눈물'로 불려야 하냐며, 기왕이면 '인도양의 진주'로 불러달라고 말하곤 한다. 국토의 크기는 우리나라의 2/3 정도 정도, 인구는 약 절반쯤 된다. 연중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를 가진 섬, 쉽게 말하면 일 년 내내 맑으면서 덥거나, 흐리면서 덥거나, 비 오면서 더운 그런 나라라는 뜻이다.


여행을 좋아해 비행기를 꽤나 타본 해리도 스리랑카는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했다. 나 역시 그렇다. 인도에 미쳐 뉴델리 땅을 셀 수 없이 밟았고, 변태적일 만큼 그 나라에 빠져 책까지 써놓고서도 코앞에 붙어 있는 스리랑카엔 와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역시 인도의 최남단까지 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남인도-스리랑카 편도 티켓이 5만 원도 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더라면 콜롬보 공항에서 해리를 만날 일도, 함께 라면을 먹을 일도, 지독한 아침형 인간인 그녀의 생체리듬에 맞춰 아침 일곱시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일 같은 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은 3일간의 콜롬보 여행을 마치고 담불라로 이동하기로 한 날이다. 간밤에 땀을 흘려 잔잔히 소금기가 낀 몸뚱이를 말끔히 씻고 나오자 그 사이 메이크업을 마친 해리가 배낭 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시기리야가 있는 담불라까지 가려면 이 나라의 허브인 캔디를 거쳐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만 한다. 이동하는 데만 꼬박 반나절이 걸린다는 뜻이고, 그것이 바로 오늘따라 해리의 움직임이 유난히 빠른 이유다.


배낭에서 헤어드라이기를 꺼내 벽면 콘센트에 꽂았다. 샤워를 끝낸 지 2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겨드랑이에 찝찝한 물기가 베었다. 왼쪽 오른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선풍기의 움직임을 따라 노출된 팔뚝으로 달려드는 공기가 차가워졌다 뜨거워졌다를 반복했다. 덥다. 정말 너무 덥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축축히 젖은 뿌리를 공들여 말렸다.





버스에 오르기 전 콜롬보 메인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오늘의 첫 끼를 먹었다. 메뉴는 스리랑카식 커리. 스리랑카도 인도와 마찬가지로 밥과 커리를 주식으로 먹는데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카레'의 맛과는 많이 다르다. 일본식 카레나 편의점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3분 카레 맛을 생각하고 주문한다면 크게 낭패를 볼 것.


인도나 스리랑카 등 서남아시아인들이 즐기는 커리로는 감자가 들어간 알루 커리(Aloo Curry), 버터와 토마토 등이 들어가는 마크니 커리(Makhni Curry), 치즈와 시금치를 이용해 만든 초록 빛깔의 팔락 파니르 커리(Palak paneer Curry) 등이 있는데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향신료 맛이 뚜렷하다는 것, 맵거나 짠맛이 강하게 난다는 것 정도다. 커리를 주문할 때는 일반적으로 플레인 라이스(Plane rice), 즉 맨밥을 함께 시키는데 서남아시아 등지에서는 길쭉길쭉하고 찰기가 없는 인디카(흔히 '안남미'라고 부르는) 종을 쓰기 때문에 쫀득한 쌀밥을 기대하고 주문한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물론 인디카 쌀의 담백함에 매료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니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리는 나와 스리랑카식 음식점을 방문할 때마다 불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묻곤 했다.


"언니, 여기 숟가락이랑 포크 주겠지?"


길거리 노점상에서 현지인들이 손으로 밥 먹고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후로는 더욱 심해졌다. 그럴 때면 나는 걱정 말라고, 얘네도 다 먹고살아야 해서 외국인용 숟가락이랑 포크는 무조건 구비해 놓는다고 말하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물론 정답은 나도 모른다. 나도 스리랑카가 처음이기 때문에. 다행인 것은 그녀가 그 사실을 자주 잊고 내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는 데 있었다.





식사를 끝낸 후, 해리와 나는 메인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커다란 배낭을 멘 채 외국인 티를 풀풀 풍기며 다가가자 현지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자기네 버스를 타라며 시끄럽게 설득했다. 각 버스회사에서 고용된 호객꾼들인 듯했다. 양 귓가로 순식간에 소음이 쏟아졌다. 우리는 다 필요 없고 무조건 캔디로만 가면 된다고 소리쳐 말했다. "캔디! 우리 캔디로 갈 거야!". 그러자 어디선가 반가운 단어가 들렸다.


"우리 버스에 에어컨 있어! 에어컨디션!!"

"뭐? 진짜? 얼마야!!"

"한 사람 당 2,500원!"


등줄기에서 육수를 뚝뚝 떨구던 두 여행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2-2 구조의 에어컨 버스. 사설 버스라 특별히 비싸다지만 그래봤자 2,500원이다. 해리와 나는 버스에 올라 등받이에 몸을 깊이 묻으며 스리랑카의 저렴한 교통비를 연이어 칭찬했다.


"해리야, 스리랑카 버스 환경 꽤 괜찮은데?"

"그러니까 언니. 심지어 2,500원이면 거저야. 의자도 편하고 에어컨도 있고."

"우리 캔디에서 담불라 갈 때도 꼭 에어컨 버스 타자."

"응, 당연하지"


스리랑카가 처음인 우리는 그렇게 콜롬보로 입국한 지 3일 만에 캔디로 떠났다. 스리랑카 사설 버스의 시설에 감탄하며, 이만하면 스리랑카 충분히 여행할만하겠다며 크게 안도를 해가면서.


물론, 캔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스리랑카 기본 정보

언어 : 신할리어, 타밀어, 영어

성수기 : 지역에 따라 상이하나 통상 12월~3월

종교 : 불교 70%, 힌두교 11%, 기타


스리랑카 비자

온라인으로 발급받는 법과, 현지 공항에서 바로 발급받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한국인들은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다면 웬만해서는 비자 거부를 당하지 않는 편.

하지만, 스리랑카 입국 시 간혹 이미그레이션에서 아웃 비행기 티켓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운이 좋아 편도 티켓만 들고 입국해도 별 상관이 없었으나 조금 운이 나쁜 자라면 그 자리에서 스리랑카를 나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야 할지도. 참고하자.)


온라인 비자 신청 사이트

http://www.eta.gov.lk/slvisa/

가격 : 미화 $35


도착 비자 발급 방법

스리랑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Visa' 카운터로 향하면 된다. 노란색 간판으로 눈에 띄게 표시해 놓았기 때문에 헤매지 않아도 된다. 직원이 시키는 대로 종이에 사인을 하고 돈을 지불하면 발급 끝. 간단하다.

가격 : 미화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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