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사진전을 기획했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는 일

by 서현지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었다. 생각만 했는데 벌써부터 좋았다. 진짜로 실행에 옮긴다면 많이 기쁠 것이었다.

구상한 것의 정체는 무료 사진전이다. 주인공은 동네 아이들이며 하루나 이틀 동안 사진전을 연 뒤 전시가 끝나면 주인공에게 작품을 나누어주는 플랜이다. 이미 많은 얼굴들을 찍어 두었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가능할 것 같았다. 인쇄된 사진을 받는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반듯한 액자에 넣어준다면 훨씬 좋을 것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뭔가를 시작한 기분이다.


누와라엘리야의 모든 이가 가난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가난은 이 동네의 많은 부분을 집어삼켰다. 한 집에 사는 엄마만 해도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 전부였다. 사진이란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기 때문에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게는 사치였다. 그래도 사치품은 있으면 퍽 좋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너무 좋은 생각 같았다.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다. 찍혀보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던 어린 얼굴과 좀 덜 어린 얼굴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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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히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어떻게 찍느냐보다 무엇을 찍느냐가 중요한 작업이었다. 찍은 사진들로 많은 이들을 웃게 할 자신이 나는 있었다. 좋은 추억이 될 것이었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전시회 주제는 30초만 고민해보고 바로 결정했다. The smile of Nuwara Eliya. 누와라엘리야의 미소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예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자주 웃었다. 랑칸들은 부끄러울 때도 좋을 때도 어색하거나 반갑거나 할 말이 있을 때나 없을 때도 웃었다. 랑칸들은 주로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거나 입꼬리를 한껏 올리는 방식으로 웃었는데 그럴 때마다 세계 간의 경계는 힘없이 무너졌다. 그들의 웃음에는 여러 가지 종류와 의미가 있겠지만 어느 것이든 무해했다는 사실을 나는 기억한다. 누와라엘리야 사람들이 보물처럼 품고 있는 웃음의 모양들을 떠올린다.


대략적인 구상을 끝내고 김을 만나러 갔다. 김은 내가 아는 한국인 중 누와라엘리야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이었다. 김은 내 아이디어에 동의함과 동시에 걱정했다. 많은 돈과 시간이 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힘들 거예요. 애초에 사진관이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래도 정말로 전시회를 하겠다면 액자나 이젤을 제작하는 데 힘을 실어주겠다고 했다. 커다란 액자는 이 지역에서는 거의 필요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새로 제작을 해야 했다. 김은 직접 책상과 걸상을 제작해 본 적이 있었다. 혼자서 화로도 뚝딱 만들고 지붕도 직접 고칠 줄 아는 남자였다. 김이 만든 책상과 의자는 한국어를 배우러 온 스리랑카 학생들에게 부지런히 쓰였다. 그가 일하는 학교에 봉사활동 차 들렀을 때, 그가 만든 의자 위에 반듯이 앉아 있던 작은 아이들을 기억한다. 김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웃게 할 생각에 섣불리 벅찬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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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히란이 같이 알아봐 주기로 했다. 공공 기관을 대관하려면 말 잘 하는 사람이 유리했다. 히란은 영어도 잘 하고 현지어도 잘 하는 돈 많은 스리랑칸이기 때문에 같이 다니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한 집 사는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는 건 정말이지 든든했다.


전시회 계획을 알렸을 때 히란은 너무 놀란 눈을 했다. 어떻게 그런 걸 할 생각을 했냐고. 크레이지 할 정도로 어메이징 하다고 말하며 재미있어 죽겠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히란은 김과 비슷한 표정으로 돈이 많이 들 텐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돈이 많이 드는 건 아무래도 확정된 모양이었다. 인도로 돌아가기 전 잠깐 몰디브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계획에 그칠 것 같았다.


매니저도 일정에 참여했다. 우리 세 사람은 엄마가 내려준 홍차를 홀짝이며 전시회 예산을 짰다. 모든 돈은 내가 내겠지만 되도록이면 최소한의 돈만 낼 수 있도록 두 사람이 도울 것이었다. 사설기관보다는 공공기관이 나을 것 같다는 것에 모두의 의견이 모였다. 누와라엘리야에는 넓은 장소를 가진 시립 도서관과 우체국이 있었다. 공공장소는 대관료가 덜 들거나 안 들 것이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이었다. 혹시 허가를 받는 데 실패한다면 하이랑카 앞마당을 사용하는 것으로 플랜 B를 세웠다. 어차피 사진 속 주인공은 동네 사람들이고 주민들은 하이랑카를 무조건 알았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관공서 직원을 설득해보자고 했다. 요즘 들어 비가 자주 왔기 때문이다. 누와라엘리야는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곳이었다.


다행히 괜찮은 사진관이 하나 있었다. 매니저가 동네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려 위치와 연락처를 알아냈다. 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신식 장비들을 갖춘 곳이 있었는데 사진 업무와 현수막 업무를 함께 했다. 매니저를 통한다면 인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나를 적극적으로 도우면서도 외국인 신분으로서의 지아를 걱정했다. 상인들은 돈 쓰기로 마음먹은 외국인에게 쉽게 바가지를 씌우기 때문이다. 최대한 그렇게 되지 말라고 히란은 하이랑카 명함을 줬다. 필요하게 되면 쓰라고 했지만 웬만하면 그럴 일이 없길 바란다고도 했다. 같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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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히란과 함께 집을 나섰다. 대관 신청을 하러 시청에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나는 원피스도 꺼내 입고 화장도 했다. 인도와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동안 피부색이 변했기 때문에 톤이 안 맞는 메이크업은 무척 촌스러웠다. 히란은 아이라인을 짙게 올린 내 눈을 자꾸만 쳐다봤다.


"왜. 오늘따라 눈이 커 보여?"

"무슨 소리야. 여전히 너무 작아서 놀라는 중인데."

"히란. 누누이 말하지만 나 작은 눈 아니거든?"

"아니야 작아. 가끔은 어떻게 앞을 보나 싶다니까?"


히란은 동아시아적인 내 눈을 자주 놀렸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주 진하게 생겼기 때문에 내 눈은 거의 구멍 취급을 받았다. 스리랑칸들은 뭐랄까 눈코입이 전부 뽝! 있었다. 내가 라떼라면 그들은 에스프레소 쓰리샷이었다. 히란은 가끔 나를 놀리는 재미로 사는 것 같을 때가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인종차별이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안 나빴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동아시아 여자와 서남아시아 남자는 시청 로비에서부터 주목받았다. 외국인이 시청을 찾을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꾸벅 졸던 공무원들은 티 나게 긴장했다. 대부분의 말은 히란이 대신해줬는데 우리는 어쩐지 시큐리티들에 둘러싸여 무슨 방으로 안내되었다. 정중하긴 한데 왠지 끌려가는 느낌이라 잔뜩 쫄았다. 고작 두 사람 안내하는데 가드가 여섯이나 붙을 이유는 무엇일까.


방에는 크고 비싸 보이는 의자에 엄청 못 된 인상을 가진 아줌마가 앉아 있었다. 히란은 엄청나게 예의를 차리며 인사했는데 갑자기 너무 마흔여덟스럽게 행동해서 약간 소름이 돋았다. 친한 친구의 비즈니스적 태도는 어쩐지 너무 오글거려서 때려주고 싶었다. 내가 업무적인 일로 통화할 때 의식적으로 서울말을 쓰면 옆에서 엄마가 토하는 시늉을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아줌마는 여기서 꽤 높은 사람인 것 같았다. 히란과 아줌마는 싱할라어로 말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히란이 나를 한 번 쳐다보면서 손짓할 때마다 아줌마는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히란이 자기소개랑 전시 목적 정도는 스스로 설명하는 게 좋겠다고 하길래 영어로 더듬더듬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여행작가라고. 여행 에세이를 쓰거나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사람이라고. 스리랑카가 너무 좋아서 두 달 정도 살았는데 이제 떠날 때가 되어 선물을 남기고 싶다고. 그 선물이 사진전이 된다면 나와 동네 사람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 기회를 당신이 준다면 참 좋겠다고.


아줌마는 히란과 조금 더 말을 나누다가 내게 제안서를 써오라고 했다. 외국인이 대관 신청한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아줌마보다 더 윗선에 보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윗선은 더 윗선에 보고를 할 것이기에 최종 결과까지는 좀 더 걸릴지도 몰랐다. 복잡하고 느린 건 우리나라랑 똑같구나 생각했지만 티 내지 않고 곱게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내일까지 영어로 쓴 제안서를 제출하기로 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여섯 명의 가드들은 여전히 사무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서로를 놀렸다. 너 진짜 예의 바른 척 쩐다고. 그러는 너는 영어 잘 하는 척 쩐다고. 나한테도 좀 그렇게 잘 해보라고. 너야말로 좀 그러라고.

티격태격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저택 앞에 못 보던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뚝뚝에서 내리자 남자가 다가와 히란과 내게 인사했다. 남자는 지역 신문사 소속 기자였다. 이 남자와 나는 갑작스레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나는 갑자기 지역 신문에 실리게 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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