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 없이 하는 일은 가끔 나를 부자로 만들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동네 꼬마들에게 슈퍼스타다. 집 밖을 나서면 필연적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카메라를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얼굴이나 발걸음을 보고 달려온다. 영어가 아예 안되는 그들과 영어만 근근이 하는 나 사이엔 대화랄 게 없지만 어쩐지 우리는 말이 통했다. 나는 이제 어느 꼬마가 어느 집에 살고 누가 누구의 동생이고 오빠이고 누나인지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들 몸에서 나는 커리 냄새도 어느덧 익숙해졌는데 그게 커리 냄새가 아니라 안 씻어서 나는 냄새라는 걸 나중에 알았을 때도 어쩐지 괜찮았다.
사진은 찍어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다. 컨디션이 좋으면 열장 스무 장도 찍었지만 귀찮은 날엔 애초에 카메라를 두고 나갔다. 그래도 아이들은 내가 좋아 보였다.
그들은 뭐라도 마구 나눠주고 싶게 생긴 눈으로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자주 가진 것들을 꺼냈다. 볼펜. 사탕. 포스트잇. 립밤. 물티슈... 꺼낸 것 중 아이들이 갖고 싶다는 건 다 줬다. 필요해서든 갖고 싶어서든 나누고 나면 좋았다. 대가 없이 하는 일은 가끔 나를 부자로 만들기도 했다. 먹지 않아도 살찌는 기분은 어쩌면 이런 것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일상 중 그래도 뭔가 큰 걸 해내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에도 배는 고팠기 때문에 요리는 꼬박꼬박 했다. 김치로 국을 끓이거나 계란 후라이를 하거나 치킨으로 만든 소시지를 굽기도 했지만 가끔은 큰 품을 들여 한 상 제대로 차리기도 했다.
한 날은 한 한국인 여행자가 하이랑카로 찾아왔다.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남학생이었는데 왠지 제대로 먹이고 싶은 마음에 조금 본격적인 자세가 되었다. 나는 김치말이 국수를 하거나 고기 마트에 들러 소고기를 사 오거나 아껴두었던 불닭볶음면을 끓이는 등 다양한 것들을 만들었다. 나는 어린 학생을 살찌우는 동안 먹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어쩌면 먹이는 기쁨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싸우고 배우고 먹고 만나고 헤어지고 깨닫고 기뻐하는 동안 며칠이 지나갔다. 그 사이 몇 편의 칼럼을 쓰고 이런 저런 사진을 찍고 비자 연장 때문에 콜롬보에도 다녀왔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거나 특별한 순간들이 끊임없이 흘렀다. 죄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