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이상을 해내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전시회 소식은 누와라엘리야에 빠르게 퍼졌다.
매니저가 사진관 정보를 묻느라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 동안. 엄마가 동네 사람들에게 나를 너무 자랑하고 다니는 동안. 대관 장소 때문에 히란이 이곳저곳 문의를 넣는 동안 전시회에 대한 관심은 부쩍 자라났다.
신문 기자는 히란의 절친 아지트로부터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아지트는 돈 잘 벌고 외국인과도 친한 히란을 약간 질투함과 동시에 무럭 응원하는 사람이었다. 전시회 기획 소식은 아지트가 듣기에도 너무 좋았기 때문에 기자에게 곧장 제보했다. 기자는 하이랑카와 멀지 않은 곳에 살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아왔다.
인터뷰는 금방 끝났다. 시청에서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하고, 거기에 살만 좀 더 붙였다. 기자는 영어를 아주 잘 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옆에서 히란이 통역했다. 나의 말은 히란의 입을 통해 약간 더 길거나 짧게 전달되었다. 더 공적인 느낌임과 동시에 훨씬 더 있어 보이는 문장으로 만들려는 게 티가 났다. 기자는 무료 전시회를 열 정도로 한국인은 부자인 거냐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했다. 아직 전시회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렇게까지 크게 열 생각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나는 몰디브 여행을 포기함으로써 금액을 충당할 것이라고 했다. 몰디브는 스리랑카 바로 옆에 있는 섬이기 때문에 기자는 너무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고맙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은 영어로 했기 때문에 히란이 통역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행히 대관 신청은 통과했다. 제안서를 제출하고 며칠 후 전화로 통보받았다. 영어로 쓴 제안서는 히란이 좀 더 스리랑카스러운 정서로 수정했다. 레이아웃도 스리랑카 공무원 스타일로 바꿨다. 온점 하나, 띄어쓰기 하나까지 목숨 거는 건 우리나라랑 똑같았다. 나의 제안서는 히란의 손을 거치면서 매우 고리타분하고 가지런하게 바뀌었는데 덕분에 대관 신청은 한 번에, 아주 빠르게 통과했다.
우리는 하루 동안 누와라엘리야 시립 도서관을 대관하는 데 성공했다. 3일을 신청했지만 그것까지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히란조차 몰랐는데 도서관 강당은 애초에 누구한테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공무원들이 내부 행사를 진행하거나 동네에 축제가 있을 때만 간헐적으로 개방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도 무료 전시회는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번만 특별히 수락되었다. 시청에서 만났던 높은 신분의 아줌마는 대관 통과 사실을 알려주며 자기가 윗선과 그 윗선의 위선에게 아주 말을 잘해주었음을 여러번 어필했다.
장소와 날짜가 결정되자 이제 진짜로 뭔가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을 고르고, 인화하고, 액자나 이젤을 제작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알릴 초대장을 만들어야 했다. 초대장은 싱할라어나 타밀어로 번역해야 하기 때문에 할 일이 많았다. 포스터도 타운 곳곳에 붙이면 좋을 것이었다. 그러려면 디자인도 직접 해서 인쇄를 맡겨야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간을 쪼개 써도 모자랐다. 히란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웬만해선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랐다. 히란은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내준 사람이었다.
사진은 딱히 고르지 않고 마구 선택했다. 초점이 나갔거나 너무 심하게 기울어진 것만 아니면 웬만해선 쓰기로 했다. 쓸만한 사진이 많은 건 다행이었다. 누와라엘리야 사진관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사진관에는 손바닥만 한 사진부터 사람 키만 한 사진까지 뽑을 수 있는 신식 기계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문득 누와라엘리야에는 못 사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듬뿍 실감했다. 직원들은 외국인 여자 손님이 올 거란 걸 미리 알았기 때문에 반갑게 맞아주었다.
인화비는 사람들이 걱정한 것만큼 비싸지 않았다. 제일 작은 크기는 우리나라 돈으로 거의 몇 백원이었는데 미리 알았더라면 평소에도 듬뿍 뽑아 맘껏 나눠줄 걸 싶어 크게 아쉬웠다. 사진 사이즈는 규격화되어 한 단계씩 커질수록 가격도 배로 뛰었다. 총 60장 정도를 USB로 넘기고 견적을 받았다. 사진관 측에서는 특별히 포토샵으로 색감 조정도 해주겠다고 했다. 비전문가인 나는 너무 고맙다고 인사하고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을 현금으로 결제했다.
인화비가 싸서 너무 좋았다. 김과 히란이 겁준 것에 비해 아주 적은 금액이었다. 기분이 좋은 나머지 타운으로 가 피자를 사 먹었다. 그랜드호텔 피자는 작고 비쌌지만 맛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아주 좋거나 나쁠 때만 먹었다.
복병은 따로 있었다. 액자 제작비가 너무 비쌌던 것이다. 백 퍼센트 주문 제작해야 했는데 하나에 몇 만 원이 넘었다. 그것도 유리가 없을 때 얘기고 유리를 추가하면 더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가지 같았다. 김과 자간트가 동행했는데 현지인이 옆에 있어도 그랬다. 생각해보니 스리랑카는 애초에 현지인한테도 바가지를 씌우는 나라다. 결국 금액 문제로 일부만 액자를 맞추고 작은 사진은 이동식 가벽에 붙이기로 결정했다. 액자가 없다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걱정했더니 자간트가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전시장에 사진이 걸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좋을 거라고 했다. 말이란 건 신기해서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로 힘이 났다. 인화비의 몇 배가 넘는 돈을 결제하며 몰디브 여행은 진짜로 물 건너 갔음을 확신했다. 좀 더 잘 팔리는 작가였으면 좋았을걸.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이면 좋았을걸. 마음껏 베풀지 못할 때,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자주 아쉬워했다.
액자를 맞추고 나오며 자간트는 완벽한 한국말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에게도 그렇지만 자간트에게도 전시회는 너무 기대되는 일인 것 같았다. 외국인이 이런 이벤트를 벌이는 게 신기해서 인 것 같기도 했다.
자간트는 자기도 뭐든 해주고 싶다고 말하더니 그날 저녁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내 인터뷰가 실린 신문을 들고 교육감을 찾아간 것이다. 교육감과 자간트는 어쩐지 깊은 친분이 있었다. 자간트는 이 전시를 누와라엘리야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관람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전시회는 평일 낮에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도서관을 방문하려면 각 학교 교장들의 허가가 필요했다. 교장들은 다시 교육감의 허가를 구하기 위해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는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자간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택했고 교육감은 곧장 오케이 했다. 전시 주제인 '누와라엘리야의 미소' 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교육감은 직접 교육청에 전화해 공문 작성 지시를 내렸다. 공문에는 누와라엘리야 소속 모든 학생들이 전시회 당일 단체 견학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는 내용을 실었다. 누와라엘리야에는 학교가 약 10곳 정도 있었고 전교생이 다 온다면 천 명은 충분히 넘을 것이었다.
교육감은 전시 당일 참석해 축사를 하겠다고도 했다. 이건 자간트가 부탁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무료로 이런 전시를 열어주는 한국인이 너무 좋은 것 같았다. 직접 참여해서 좋은 말도 해주고 함께 사진도 찍고 싶다고 했다.
자간트는 직접 하이랑카로 찾아와 이 소식을 전했다. 나한테는 한국어로 했고 히란에게는 영어로 했다. 두 사람은 스리랑칸이지만 인종이 달라 언어도 달랐다. 그래도 자간트의 말은 모두를 기쁘게 했다. 전시 준비를 도왔던 하이랑카의 모든 식구들이 좋아했다. 작은 동네 이벤트가 지역 페스티벌이 되는 순간이었다.
히란과 자간트는 이날 처음 만났지만 전시회 이야기를 하며 무척 가까워졌다. 자간트의 집은 하이랑카와 고작 두 블럭 차이였기 때문에 새벽이 다 될 때까지 자간트는 히란과 수다를 떨었다. 전직 회계사였던 히란과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국어 선생님이 된 자간트는 갑자기 친구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 5년씩 살아본 경험 때문일지도 몰랐다. 물론 나이가 비슷해서 일 수도 있다.
교육감이 전시장에 방문한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각 학교 교장 선생님들이 교육청을 통해 참석 의사를 밝혀왔다. 학교들은 초, 중, 고 그리고 힌두교, 이슬람, 천주교로 세분화되어 있었는데 모든 학교가 참석이 확정됐다. 너무 많은 학교가 오기 때문에 각 시간대별로 스케줄표도 생겼다. 전시회 덩치가 너무 커지는 것 같아 부담됐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누가 오든 안 오든 할 전시였다. 많이 봐주면 어쨌거나 좋은 것이었다.
그래도 이번에 들려온 소식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스리랑카 각 방송사에서 취재를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바빠졌다. 방송국 PD 들과 사전 미팅을 진행하고 더듬더듬 영어로 인터뷰했다. 카메라 앞에서 나는 무척 떨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PD들은 전시 당일에도 영어 스피치를 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그 정도로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크게 당황했다.
스케일이 커진 만큼 필요한 것은 배로 늘어났다. 당일엔 교육감과 내가 연설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교탁과 마이크가 필요했다. 영어와 싱할라어를 할 줄 아는 사회자도 있어야 했다. 각 기관 공무원들과 교장들이 올 것이기 때문에 의자도 많이 필요했다. 교육청에서는 전시장에 스리랑카 국기와 태극기도 걸면 좋겠다고 했다. 더불어 각 나라의 국가도 틀자고 했다. 그러려면 스피커와 앰프가 필요했다. 그런 기계들은 대체 어디서 구하면 될까. 얼마나 비쌀까. 또 얼마나 바가지를 씌울까. 그나저나 태극기는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일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런 것 말고도 할 일이 많았던 나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누가 봐도 내 전시회는 그 정도 스케일이 아니었다. 전시 환경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사진 실력이 그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상상했던 전시회는 많이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을, 딱 그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서 스리랑카 사진협회 간부들이 전시회에 참석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로 울어버렸다. 아 진짜 어떡하지. 미치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다.
가진 것 이상의 것을 해내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그걸 들키는 건 훨씬 더 무서운 일이다. 이제 스리랑카 국민들은 밑천을 드러내며 쩔쩔매는 한국인의 모습을 저녁 뉴스에서 감상하게 될 것이다. 사진 협회에서는 사진도 못 찍는 주제에 저런 걸 할 생각을 했다고 비웃을지도 몰랐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서웠기 때문에 나는 주저앉았다. 주저앉아서 울었다. 전시회가 고작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더 있었더라도 해결하기 힘들 일들이었다.
망연자실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으로 들이닥쳤다. 우울한 얼굴을 한 채 거의 드러누워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김과 히란과 자간트가 학생들을 이끌고 우르르 찾아왔기 때문이다.
"울었다면서요? 소문 다 났어요."
김은 보자마자 놀렸다.
"걱정 안 해도 돼요. 우리가 다 도와줄 거예요."
자간트는 위로했다.
"쯔쯔, 지아 네가 그렇지. 울기나 하고."
히란은 핀잔했다. 울었다는 소문을 낸 범인이었다.
그래도 엄청 좋았다.
학생들은 어디선가 플라스틱 의자들을 전시장에 마구 세팅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힘이 좋았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의자들을 금방금방 열 맞춰 채웠다.
김은 커다란 스피커를 가져왔다. 학교 방송실에서 쓰는 장비인데 하루만 대여했다고 했다. 전시 소식은 이미 학교에서도 알았기 때문에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자간트네 학원에서 근무하는 여선생님은 사회를 맡아주기로 했다. 선생님은 영어도 싱할라어도 할 줄 알았다. 그새 스크립트도 짜왔다. 나머지 학생들은 전시 안내를 도와주기로 했다. 품이 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사람은 많을수록 좋았다. 태극기는 자간트가 가져왔다. 한국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올 때 품에 소중히 안고 온 것이었다.
태극기와 스리랑카 국기를 나란히 벽에 걸며 부끄럽지만 나는 또 울었다. 애국심 때문에 운 건 당연히 아니고, 내가 여기서 진짜 잘 살긴 했나 보다 하는 마음 반, 어우 고마워 미치겠는 마음 반이었다. 우는 나를 세 사람이 돌아가며 달래고 그친 후엔 또 차례대로 놀렸다. 다 큰 여자가 엉엉 소리 내 우는 모습은 너무 웃겼기 때문에 학생들도 키득댔다.
갑자기 아무것도 안 두려워졌다.
카메라 앞에서도 떨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 떨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