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못 찍는 여행작가의
스리랑카 사진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에서 온 서현지입니다

by 서현지




거의 못 자다시피 자고 일어났다. 잠들기 직전까지 외우던 영어 스피치 대사가 베개 자국처럼 머리에 남았다. 잠꼬대마저 영어로 한 것 같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서 온 서현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아직 아침이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너무 많이 꾸미고 내려오니 히란도 매니저도 엄마도 놀랐다. 반짝이를 바른 눈에 속눈썹을 올리고 헤어까지 동그랗게 세팅하니 뭐랄까, 진짜 한국 사람 같다고 했다. 너무 한국 사람 같은 모습은 나조차도 어색했다. 엄마는 소리 안 나게 박수를 치며 마이! 도우터! 마이! 했다.


매니저와 엄마는 하이랑카 손님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오프닝에는 히란만 참석하기로 했다. 아지트는 출발 시간에 맞춰 이상하고 커다란 물건을 들고 하이랑카로 나타났다. 고대 유물같이 생긴 그것은 스리랑카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쓰는 물건이라고 했다. 이 물건에 양초를 올리고 불을 붙여야만 신의 보호 아래 행사를 잘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주 작은 마음으로 시작한 전시회에 종교까지 개입된 게 기가 막히면서도 나는 여러 사람에게 큰 소리로 땡큐! 했다. 무럭 소리치고 나니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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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도착해 큰 소리로 스피치 연습을 했다. 스크립트를 전부 외우지는 못했지만 슬쩍슬쩍 커닝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말이 너무 빨라진다 싶으면 히란이 손으로 신호를 줬다. 그의 손을 메트로논 삼아 나는 숨을 고르거나 강조해야 할 부분을 점검했다. 나는 실전에서 완전 내 멋대로 해버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확실한 연습은 반드시 필요했다. 강연 경험이 많은 것은 이럴 때 무척 도움이 되었다.


김과 자간트와 학생들도 곧 도착했다. 김은 오자마자 애국가가 제대로 나오는지, 이게 스리랑카 국가가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학생들은 당장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앉아 한국어를 연습했다. 학생들과 각자 다른 나라 언어를 연습하는 동안 관람객이 한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전시가 시작되려면 한 시간은 남은 시간이었다.


이른 시간에 전시장을 찾은 것은 동네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초대장에 적힌 장소와 날짜만 보고 무작정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회가 뭔지 잘 몰랐던 아이들은 도서관으로만 가면 당장 사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씻지도 않고 찾아와 손을 내밀었다. 사진은 여섯시 이후에 줄 수 있다고 자간트가 친절히 설명했다. 아이들은 왜 여섯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전시장에 크게 걸린 제 얼굴을 보고 너무 좋아했다. 어떤 애는 벙찌면서 놀라고 또 어떤 애는 소리를 꺅 지르면서 놀랐다.




왜 당장 가져갈 수 없냐고 우는 애도 있었다. 그 애는 이번 전시의 메인 모델이었다. 아이는 가진 옷 중 가장 깔끔한 옷을 껴입고 할머니와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할머니는 아이의 유일한 혈육이자 가족이기도 했다. 우는 모습이 안쓰러워 지금 당장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메인 사진은 아주아주 큰 데다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거는 데만 30분이 걸린 작품이었다. 사진관에서는 인쇄가 불가능한 사이즈라 방수 현수막으로 특수 제작했다. 히란은 여섯시가 넘으면 집으로 직접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래도 못 믿겠는지 아이는 여섯시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아이는 누군가를 신뢰해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 동네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다. 믿음에 보답받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떼쓰는 건지도 몰랐다.





교육감은 전시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다. 그는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차에서 내려 사람들의 경호를 받으며 전시장으로 입장했다. 전문 사진사도 따라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았다. 교육감이 등장하면서 전시장의 공기가 매우 빽빽해졌다. 아무도 떠들지 않았고 앉아 있던 사람들도 몽땅 일어났다. 분위기가 너무 본격적이라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뱉었다. 같은 과정을 세 번 반복했다.

교육감과 나는 입구에서 커팅식을 진행했다.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한 나라의 교육감과 하고 있는 내가 너무 낯설어 어쩐지 표정이 굳고 말았다.


교육감이 먼저 축사를 했다. 많은 언어를 할 줄 아는 자간트가 교육감의 축사를 한국어로 통역했다. 그는 일단 너무 고맙다고 했다. 국민들조차 일일이 신경 써주지 못하는 부분을 한국인인 내가 챙겨줘 크게 고맙다고 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더 오래 전시를 할 수 있도록 허가했을 텐데 아쉽다고도 했다. 그런 뒤 교육감은 내게 하늘색 비단을 선물했다.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크게 박수를 쳤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나는 멀뚱히 서있었는데 사회를 맡은 여선생님이 뛰어와 비단을 양 어깨에 둘러줬다. 하늘색 비단은 국가적으로 아주 고마운 사람에게만 주는 상징적인 물건이라고 했다. 너무 진짜 우와 황송해진 나는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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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이 떠나고 드디어 첫 학교 학생들이 들이닥쳤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담임선생님들이 크게 애를 먹었다. 나는 입구에서 인사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전시 안내는 자간트와 그의 학생들이 맡아주었다.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사진을 감상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저마다 웃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을 어색하게 따라 해보는 아이들도 있었고 나에게 찾아와 자기도 사진을 찍어달라는 조르는 아이도 있었다.


쉬는 시간 없이 계속 다음 학교 다음 학교 학생들이 왔다. 무슬림 학교에서도 오고 힌두교 학교, 천주교 학교에서도 왔다. 나는 각 종교에 따라 싱할라어로도 인사했다가 타밀어로도 인사했다. 담임 선생님들 중에는 셀카를 찍자고 요구하는 분도 있었다. 몇 분은 사인도 받아 갔다. 사진전으로 사인을 해주는 날이 올 줄이야. 반듯한 연습장에 정성을 다해 '랑카변태 서현지'라고 썼다. 인도는 랑칸들이 너무 싫어하는 나라기 때문에 오늘만 랑카변태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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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닥치는 학생들



안내를 돕는 학생들이 배고플까 봐 점심때는 조를 짜서 레스토랑으로 보냈다. 가장 나이 많은 학생에게 지폐를 쥐여주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내가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쳐줬듯 자기들도 그러고 싶다고 했다. 마음은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미안했기 때문에 나는 억지로 돈을 쥐여주었다. 학생들은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현지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곤 돈을 왕창 남겨왔다.


동네 사람들도 무럭 왔다. 아침에 왔던 아이들도 벌써 여러번 다시 들렀다. 제 얼굴이 그 자리에 여전히 있는 것을 보고 매번 안심했다. 사진관 직원들도 왔고 현수막과 홍보 포스터를 뽑았던 인쇄소 직원들은 선물까지 사서 들렀다. 그들이 사온 초콜릿은 봉사하던 학생들과 와구와구 나눠먹었다. 우파리 아저씨와 그의 가족들도 왔고 매일 들리던 마트 직원들, 어쩌다 근처를 지나던 외국인 관광객, 하이랑카에 묵던 별관 손님들도 들렀다. 아는 얼굴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너무 고마워 얼른 뛰어가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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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간트와 우파리 아저씨와 동네 마트 직원


사진협회 사람 중 한 분


사진협회 사람들은 진짜로 왔다. 너무 부담스러웠던 집단이었기 때문에 나는 교육감이 올 때보다 더 긴장했는데 의외로 그들은 사진이 너무 좋다고 칭찬했다. 그럴 리가 없기 때문에 좋아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고맙다고 했다. 협회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찍으면 더 잘 찍을 수 있는지 팁을 몇 가지 알려줬다. 카메라 용어는 너무 어려운 데다가 영어였기 때문에 나는 거의 못 알아들으면서 다 알아듣는 척했다. 협회 사람들은 앞으로 자기들끼리도 이런 기획을 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누와라엘리야의 미소가 2탄, 3탄으로 이어지기를 잠시 고대했다.



몸에 남은 에너지를 거의 다 썼을 때쯤 방송국 PD 들과 영어 스피치 녹화를 진행했다. 10개교 학생들이 모두 다녀간 이후였고, 전시 시간인 6시를 훌쩍 넘긴 이후였다. PD들은 사진을 받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전시장 풍경과, 이 전시회를 기획한 나와 수많은 도우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모든 일이 끝을 향해 달려갈 때, 나는 무럭 피곤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몽롱한 정신으로 시끄러운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누와라엘리야에 사는 동안 만난 얼굴들이 한자리에 있었다. 참 시작하길 잘 한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그랬다.



사회를 맡은 선생님
점화식에 참여한 코이카 단원 김
사회자 선생님도 점화에 참여
메인 모델도
누와라엘리야 어벤저스. 우리들의 공통점.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
무슬림 학교 학생들
개구진 얼굴들
너무나 서남아시아적 얼굴과 완벽한 동아시아 얼굴
학생들과 자간트와 나와 김. 사진이 기울어진 이유는 DSLR을 처음 써보는 분이 찍어줘서.


사진관 직원. 날짜 맞추느라 정말 고생하셨어요.
끝이 보이지 않던 학생들
아유보완
봉사해준 학생들 중 하나. 혼자 무슬림이었는데 라마단 기간이라 밥도 못 먹었어요.
교감선생님과 나, 교장선생님, 아지트
배움의 기회를 거머쥔 여학생들
다른 학교 학생들
전시가 끝나고 아쉬워서 우는 선생님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 곳곳에 수국이.
사진마다 사인을 해달라고 하셔서
이것이 바로 특수제작한 메인 모델의 사진
너무 좋아하는 메인 모델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랑칸들.


그리고 저의 전시소식은 스리랑카 4개 방송국에서 보도되었습니다
출세했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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