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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Nov 11. 2019

'좋은 엄마'는 우리 안의 결핍이 만들어 낸 신기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그대에게

우리 중 자녀교육이나 부모교육서에서 말하는 ‘충분히 사랑받고 온전히 돌봄 받는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부모님의 '안 돼'라는 말 뒤에는 비난과 질책이 뒤 따랐다.

그에 비해 지지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나의 타고난 성향인 '내향성'을 수용받지 못했다.

1남 3녀의 맏이로 특히 연년생 동생을 둔 첫째로 태어난 것부터가, 심리학자들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말하는 충분히 사랑받아야 하는 어린 시절을 위협받은 셈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거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

결국 내 안의 결핍이 내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동기를 자극한 셈이다.

굳이 애쓰고 노력하고 공부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도 좋은 엄마면 좋겠지만.

어쩌랴. 내겐 롤모델이 되어줄 그런 엄마가 없었는걸.


그저 책 속 전문가가 말하는 이론을 토대로 내가 만든 좋은 엄마의 모습을 하나하나 실천하려 애쓰고 있을 뿐.



‘좋은 엄마’는 우리 안의 결핍이 만들어 낸 신기루 인지도 모른다.

좋은 엄마를 갖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그래서 내 아이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속 바람이 만들어 낸 이상적인 어머니의 상.


마치, 공부도 잘하고 잘 생기고 성격도 좋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엄마 친구 아들(엄친아)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되길 바라는 그 ‘좋은 엄마’는 실제 하는 인물이 아니다.

아동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한 전문가나 육아전문가 말하는 이론이나 책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 이론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이상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

완벽한 아이도 없다.

우리는 그저 부모가 되어가는 것이다.


좋은 엄마를 지향하되, 좌절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좋은 엄마가 되는 데 있어 고약하고 지독한 방해꾼이 있다.

바로 내 안의 결핍이다. 해결되지 않은 슬픔이다.

내 안의 적절한 결핍은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다는 동기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우리에게 완벽한 모습의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목표로 달려가게 만듦으로써 아이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왜곡하게 된다.

즉, 내 문제를 아이의 문제라 여기고 아이를 몰아세운다.



내가 어릴 적 당시 풍족하지 않았던 집안 경제 상황과, 연년생 동생을 둔 1남 3녀의 맏딸로 태어난 정황만으로도 충분한 돌봄과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하는 건 너무 슬프고 아팠다.


아이가 아이 그 존재 자체로써 인정받지 못할 경우,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 그리고 심리적으로 여러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다 보니,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무엇보다 나의 부모가 내 안의 핵심 수치심을 만들어 낸 토대가 되었고, 가장 안전해야 할 대상이 내게 불안과 외로움을 심어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건, 마치 내 존재 자체를 뒤 흔드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던 외로움과 불안의 실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더 이상 그 외로움과 불안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결핍에 맞닿아 있는 상처와 슬픔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한다.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결핍을 알아차리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나는 더 이상 그 결핍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내 결핍 때문에 나의 불안 때문에 아이를 몰아세웠던 그 간의 행동들을 멈출 수 있게 된다.




어렸을 적 내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울 때 나의 부모님은,

"뚝! 그쳐!"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봐"

라고 다그치며, 제대로 한 번에 말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고 질책했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그래~ 무슨 일이야?"

"괜찮아, 이야기해 봐~"

아이를 지지하고, 아이가 울면서도 끝까지 말할 수 있도록 다그치지 않고 기다린다.

아이에게 “안 돼”라고 말할 때도 있지만 비난과 질책은 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불안을 이유로 아이의 행동을 고치려 들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를 말로 전달하는 방법을 안다.



우리는 스스로를 재양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내 안의 결핍, 즉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내가 나누는 글들은 자존감 낮은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 어떻게 스스로를 먼저 재양육하고, 어떻게 아이를 대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법이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아이를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  많은 시도와 노력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방법들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는 완성된 형태로 '쨘'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자꾸 하다 보면 길러진다.





완벽한 아이가 없듯, 완벽한 부모도 없다.




세상이 심어 놓은 '좋은 엄마'라는 틀에 자신을 비교하며 자책하고 좌절하지 말자.
우리가 지향하는 '좋은 엄마'의 이미지는 어쩌면 '좋은 엄마'를 갖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우리 안의 결핍이 만들어 낸 신기루일지 모른다.



글쓴이: <오늘도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자 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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