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후래자삼배는 하지 않았으나 이안은 조금 취기가 오른다. 사실 막걸리는 쌀을 통째로 마시는 격이어서 배가 불러 오히려 적당히 취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소주나 위스키와 같지 않은 막걸리는 효모가 살아서 숨을 쉬어야 하는 이유로 유통 기간도 길지 않고 발효과정에서 맛도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표준화가 쉽지 않다는 점은 조금 불만스럽다. 따라서, 지방마다 다른 막걸리가 있어 가장 맛있는 막걸리는 그 지방에 가서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막걸리를 표준화할 수 있으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와인처럼 팔 수도 있지 않을까?" 서 너 통의 막걸리가 비워지면서 셋은 이제 친구가 되어 존대는 서로 하지 않게 된 데이비드도 이안의 말에 일부 동의해야 할 것 같았다. 필립은 자신이 늘 엉뚱한 말을 한다며 핀잔을 주는 편인데 반해 자신의 생각에 공감을 해주는
데이비드의 반응에 조금 더 대담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표준화라는 것은 대량 생산을 하는 제조업에 딱 맞는 개념인데, 우리가 경공업으로 경제 부흥을 이루기는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우리 한국 사람들과는 잘 안 맞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사람들은 한국 문화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집단 중심이라고 하지만, 사실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특히 일본인이나 중국인에 비하면 더 그런 것 같아."
"서양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우리가 일본인들과는 많이 다른 것 같기는 해."
필립도 이안의 말에 일부 공감하며 평소와 달리 말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아마 술 때문인 듯하다.
"나는 사실 각 나라의 전통 복장을 통해서도 비교가 된다고 봐. 대개 아시아 국가들의 전통 복장은 원피스인데, 한복만 바지와 저고리, 치마와 저고리로 된 투피스란 말이지. 원피스보다는 투피스가 아무래도 개성을 나타내기에 좋지 않을까?"
"그것도 그런 것 같네. 원피스보다 투피스는 아무래도 표준화가 조금은 더 어려운 편이라고 해야겠지. 옷을 손수 지어 입던 시절에는 더 그랬을 듯하네."
이야기를 듣던 데이비드도 요즘은 통일성과 획일성 보다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창의력이 있는 사회가 건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의 모습도 변하는데, 한국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나 싶다며 말을 보탠다. 물론 이 또한 술기운을 빌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일뿐 학문적 근거는 약하나, 남자들 술자리는 대개 이런 식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다네가시마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 이안의 뜬금없어 보이는 말이다.
"일본 말이냐?"
"난 들어 본 것 같은데. 조총을 다네가시마(Tanegashima)라고 하지 않나?". 데이비드는 미국에서 이 단어를 들어 본 기억이 있다.
"그렇지. 조총을 다네가시마(種子島_Tanegashima))라고 하기도 하는데, 우리말로 종자도라고 하는 일본에 있는 아주 작은 섬 이름이기도 해. 지금 그 섬은 일본의 우주센터가 들어서있는 곳으로 관광도 많이 가는 모양이더라."
데이비드는 다네가시마_Tanegahima가 섬 이름이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 섬 이름이 조총이라는 영어 단어가 된 이유가 더 궁금했다.
"우리가 흔히 임진왜란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는 임진년에 있던 전쟁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 알고 있지만, 전쟁 전의 환경과 전쟁 이후의 환경에 대하여는 간과하는 부분이 꽤 많지. 그 와중에 다네가시_Tanegashima라고 하는 그 당시의 작고 문화적 조류에서도 뒤 떨어졌던 섬 하나에서 일어난 일이 나중에 엄청난 재앙의 시작이라고 하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
조총이야기가 1592년의 임진전쟁으로 넘어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우선 막걸리의 표준화와 다네가시마 조총의 관계 파악이 먼저라는 필립의 의견에 따라 이안은 다네가시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니까 그때가 1543년이었다고 하니 임진전쟁 시작 약 50년 전이지. 이 작은 섬에 중국의 배가 표류하다가 들어오게 되었어. 배 안에는 Wu Feng이라는 중국인과 외국인이 타고 있었는데, 다네가 섬사람들은 Wu Feng 이 글자를 알아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되었기 때문에 학자라고 믿었고 외국인은 상인이라고 이해를 하여 다네가 섬의 영주인 토키아키를 만나게 해 주었다고 하지.”
“믿었다고 하는 것을 보니 학자가 아니었구먼!”
“사실 Wu Feng 은 그 당시 악명 높은 중국 해적인 Wang Chih였고 상인이라고 한 외국인은 포르투갈의 해적이었지. 여하간, 다네가 섬의 영주는 이 사람들이 가져온 조총을 보고 마음을 빼앗겨 총 두 자루에 엄청난 값을 치러주고 샀어.”
데이비드는 다네가 섬 영주가 조총을 보고 혹 했다는 이안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원래 중국에서 화약이 만들어졌고 화약을 사용하는 무기도 중국에 많았을 텐데 포르투갈 사람의 조총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데.”
“그건 그렇지. 이미 중국에서 그러한 무기와 화약도 일본에 수입이 되었지만 그 당시까지의 무기는 사실 활과 칼에 비하여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잘 사용되지는 않고 있었다고 하네. 포르투갈의 조총 역시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것 같아. 게다가 개인이 아름아름 총과 총알을 만들어 사용하던 시절이어서 서로 규격이 달라 다른 총의 총알은 사용할 수도 없었다고 하네.”
"그건 좀 문제네. 전쟁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었겠어. 그런데 그런 총을 섬의 영주는 왜 산거냐?"
"영주와 포르투갈 해적 사이에 이런 대화가 있었다고 해."
(영주) 조총의 비결이 무엇이므니까?
(해적) 마음을 바르게 하고 한쪽 눈을 감는 것이요.
(영주) 고대 성인들은 어떻게 마음을 바르게 하는지 가르쳐쓰므니다.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말과 행동이 의미가 업쓰므니다. 그런데, 한쪽 눈을 감으면 멀리 있는 것이 정확히 보이지 않지 아니므니까? 왜 눈을 감아야 하므니까 ?”
(해적) 모든 일에는 집중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집중을 하면 넓게 보이는 것은 필요치 않는 것이요. 한쪽 눈을 감는 것은 시력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중력을 더 키워주는 것이 되는 것이요
(영주) 그것이 바로 노자가 한 말씀이므니다. Good sight means seeing what is very small.
"영주가 속았구만!"
"뭐 그럴 수도 있고.. 하여간, 영주는 매일 조총 연습을 하고 사람을 시켜서 화약도 만들게 하는 동시에 대장장이에게 똑같은 총을 만들라고 했지. 그런데 만들 수가 없었던 것이야. 총신을 개머리판에 정확히 붙이는 방법을 몰라 인저 총이 발사되지 않는 것이지.”
이안은 술이 조금 취하면 '인저'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버릇이 있다. 아마 고향 말이 아닌가 싶지만 아는 척을 한 적은 없는 필립이다.
“결국 총의 발사 문제는 일 년이 지난 1544년에 두 번째 외국 선박이 들어오면서 해결이 되었지. 그 배를 타고 총기 기술자가 같이 왔고, 이 사람에게 기술을 배우기 위해 다네가 섬의 대장장이는 자기의 딸을 주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어.”
"그렇다고 해도 조총이 활이나 칼보다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인저 어떻게 일본에서 전쟁의 주요 무기가 된 것이야?” 데이비드의 질문에 비로소 이안이 할 말이 생겼다.
“그게 중요한 건데… 다네가 섬에서는 이제 조총이 유명해져서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겼어. 그리고 기술을 습득한 섬의 총기 기술자들은 학원을 세워서 수습공들을 가르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총기 제작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일본 본토 각지로 퍼지게 되면서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이지.”
데이비드는 이제야 이안이 표준화를 운운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똑같은 막걸리 통을 만드는 식으로 전국적으로 조총의 표준화가 자연스럽게 된 것이구만. 같은 학원에서 배운 기술자들이 같은 디자인에 같은 구경의 총을 사방에서 만들게 되었겠네. 그 당시 유럽이나 중국의 조총들이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고 개인이 만들어 쓰는 수준이었다면 전쟁 중에 내 총에 맞는 총탄이 떨어지면 그 총은 그저 무용지물인데, 다네가시마가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라는 말이구나.”
“그래. 결국 임진왜란 발발 50년 전에 이미 조총은 세계 최초로 군대를 무장할 수 있는 수준의 표준화가 된 것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스페인과 같이 전 세계를 정복할 생각으로 전쟁을 일으킬 때는 그만한 대비가 있었던 거야. 그게 바로 다네가시마..”
"듣고 보니 뭐라 하기도 참 그러네. 그런 작은 섬에서 일어난 하나의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사건이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들 삶의 모습을 상당 부분 결정짓게 된 거잖아. 임진전쟁은 사실 당시로는 엄청난 규모의 세계 대전이었는데, 전쟁의 결과는 조선, 일본, 명의 영토는 그대로 유지되어 그 누구도 이득없이 피해만 본 전쟁이야. 특히 피해가 엄청났던 조선은 결국 일본에게 불법 합병이 될 때까지도 회복되지 않았고, 명은 망했고, 일본은 쇄국을 하면서 일본 역사 최초로 200년 넘는 평화의 시기를 보내다가 미국의 힘에 눌려 갑자기 유신이라는 것을 하면서 자기들이 유럽인이라고 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에 다네가 섬에 포르투갈 해적이 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도키아키 영주가 선문답을 하지 않았다면,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지 못했다면, 임진년 전쟁이 그저 활과 칼로 시작이 되어 그저 그런 왜구의 난이었다면 조선이 망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선이 망하지 않았다면 청일전쟁도 러일전쟁도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래도 세 명의 친구들의 머릿속에는 일본은 어떻게든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