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몰리 인도델리
어깨를 으쓱하며 두 팔을 벌려 고속도로 옆의 벌판을 가리킬 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Sir, It's all yours!, Wherever you like.."
뉴델리 지사의 디라지와 고속도로 같기도 하고 국도 같기도 한 길을 따라 펀잡의 루디아나_Ludhiana로 가던 중 허름한 휴게소에 들렀다. 루디아나까지는 대략 5시간 정도의 드라이브가 필요하다. 지금은 아마 길이 더 좋아져 조금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로 위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확신은 할 수 없다. 휴게소에서 우리는 간식으로 사모사 두어 개와 차를 한잔했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잡아 떠나기 전 화장실을 찾았으나 없다. 디라지에게 물어볼 수밖에..
디라지는 그저 벌판을 가리키면서 모두 내 것이니 마음 가는 곳 아무 데나 볼일을 보란다.
"Seriously?"
"Seriously.. Better watch out cobras, especially female ones ^^"
녀석이 진담 반 장난 반으로 나를 놀리지만 주변에 화장실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진실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불안한 느낌으로 볼일을 볼 밖에… 디라지에게 다시 물었다.
"여자들은 그럼 어떻게 해?"
디라지는 비로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사실 그것이 식구들과 여행을 할 때 가장 불편한 점이라고 한다.
인도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도시 안에서도 길거리에 쭈그려 앉아 큰일을 보는 인도인들을 보았을 것이고, 참새들이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듯이 철로 위에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볼일을 보는 모습을 한 번쯤 보지 못했으면 인도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노릇이다. 또한, 이른 아침이나 캄캄한 밤, 넓은 들판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에 물병을 하나씩 들고 모여들어 서로 무관심한 듯 볼일을 보는 모습도 인도를 며칠 돌아다니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개방된 곳에서의 볼일 보기라는 뜻의 Open Defecation은 인도의 위생 상태에 가장 위협적인 문제이지만, 인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등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Open Defecation이 반드시 가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도 사람들은 태어나서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이러한 배변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인권이라는 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는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인도의 모디 정부에서는 인도 사람 모두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화장실 공급 사업을 수년 동안 진행해오고 있다.
대략 1억 개의 화장실이 전국에 만들어졌으나, 이 화장실을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는 아직도 낮다. 인도 정부는 화장실이 없는 가구에 대략 160달러를 주고 화장실을 만들도록 하는데, 이 돈이 간혹 그저 주머니로 들어가기도 하며 화장실을 만들어도 화장실이 아닌 창고 등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다.
화장실을 만들어 놓고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그저 익숙한 Open Defecation 습성이다.
둘째, 재래식의 경우 온 가족이 화장실을 같이 사용하면 금방 차서 자주 퍼내야 한다는 잘못된 이해. 현재 1 pit (탱크 한 개) 재래식 화장실은 대략 몇 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대변이나 하수구 청소는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가장 하위 카스트가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한 일을 하기 때문에 Untouchable이라 불린다. 집 앞도 쓸지 않는 사람들이 화장실 청소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셋째, 수세식 변기의 경우 물이 없다는 문제. 물 부족 국가이기도 하지만 거의 모두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어 화장실 물을 끌어들여 사용하기 곤란하다.
공중 화장실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우선, 유지 보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공중 화장실의 경우 간혹 몇 루피 정도의 돈을 내야 하는데, 그러한 돈을 내고 화장실을 사용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화성에도 로켓을 보내는 인도가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중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국민들이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그들의 좋지 못한 문화를 개조하도록 이끄는 일은 더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화장실 공급에 소요된 정부 예산이 인도 우주 항공청이 (ISRO) 달에 로켓을 보내는 것의 30배가 넘게 들었다면 참 이상한 일이다.
한편, 인도가 원래부터 위생 관념이 없던 나라는 아니며 오히려 역사적으로는 대단히 위생 관념이 좋았다는 기록이 있다. 9세기 바닷길을 따라 중국과 인도를 오가며 무역을 하던 아랍 상인의 기록에 따르면, 중국인과 인도인 모두 종교의식을 치를 때 목욕을 하지 않는데 중국인은 볼일을 본 후 물로 닦지 않고 중국 종이로 처리를 한다고 적혀있다. 반면에 인도인들은 아침 식사 전에 매일 목욕재계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인도인들은 여성이 생리 중에는 성관계를 하지 않으며 식사 전에 이를 닦지 않으면 식사를 하지 않으나, 중국인들은 여성이 생리 중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성관계를 하고 양치질도 하지 않는다고 기록해 놓았다.(Accounts of China and India, Abu Zayd Al Sirafi)
간디는 독립보다 중요한 것이 청결과 위생이라고 했지만, 그가 희망했던 깨끗한 인도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 큰 변화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한국 공중화장실은 이제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정비되어 있다.
수원에는 해우재 (解憂齋)라는 화장실 문화 전시관이 있다. 2007년 세계 화장실 협회 초대 회장에 선출된 심 재덕 전 수원 시장이 협회 창립을 기념해 30여 년간 살던 집을 허물고, 2007년 그 자리에 변기 모양을 본뜬 해우재 (解憂齋) , 즉 근심을 없애는 집을 지었다. 예전 절에서 화장실을 부르던 해우소 (解憂所)에서 따온 모양이다. 그는 1999년에 한국화장실 협회를 창립,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가 결정되면서 당시 수원 심재덕 시장은 경기를 유치하고자 노력하면서 문화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아름다운 화장실 가 꾸기 사업’이었다. 세계화장실협회 ( WTA ; World Toilet Association)의 목표는 ‘깨끗한 화장실로 세계인의 보건/위생 수준을 높이자.’이다. 화장실을 바꾸면 생활이 바뀌고 인류의 미래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위생 환경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에 공중화장실을 짓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