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몰리 인도델리
고를 수 있는 메뉴는 쌀을 위주로 한 베지테리안 음식뿐이다...
"나는 치킨은 먹을 수 있지."
'나는 소고기만 아니면 다 먹을 수 있지만, Chicken은 물론이고 Mutton(양고기)도 괜찮지만 돼지는 가능하면 안 먹었으면 하네."
"나는 고기는 먹지 않고 양파나 마늘도 먹지 않네만."
"그럼 한국 식당으로 가지. 거기 가면 다 있고, 또 단골이니 특별히 부탁하면 모두에게 문제없이 잘 맞추어 줄 수도 있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소주도 한 잔 하고 말이야. 맨날 위스키에 보드카만 마실 수는 없지 않나?"
"좋네. 그런데 한 가지만 확인해 주면 좋겠어. 혹시 그 한국 식당은 주방이 나뉘어 있겠지? 베지테리언 음식을 하는 주방과 논베지테리언 음식 준비를 하는 주방이 서로 나뉘어 있는 거지?"
"뭔 소리여? 그런 식당이 어디 있다는 말이야?"
"당연히 나뉘어 있어야 해. 인도의 고급 식당은 다 그렇게 되어 있거든. 도마와 칼도 섞어서 쓰지 않는다고..."
"Seriously? 그럼 한국 식당은 안 되겠군. 또 타지 팰리스_Taj Palace나 모리야_ITC Maurya 호텔에 인도 식당이나 중국집 가야 하나? 그 식당들은 괜찮은데 너무 비싼 것 같아. 술도 비싸고 말이지."
"이탈리안은 어떤가? 호불호가 거의 없지 않은가? 임페리얼호텔에 괜찮은 곳이 있는데.."
"뭔 또 호텔인가? 델리에 널린 게 이탈리안 레스토랑인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나는 파스타가 싫다네. 우선 그 모양부터 맘에 들지 않거든."
"음. 그럴 수도 있지. Chinese? 인도의 중식당은 이게 중식당인지 인도식당인지 잘 모르게 막 섞여서 좀 그래. 물론 비카지카마의 하얏트 같은 곳의 중식당에서는 북경오리 같은 정통 중식도 좋긴 한데.. 참, 고기는 안된다고 했지? 중식당에는 그래도 베지테리안 요리가 꽤 있을 것 같은데.."
"겨우 네 사람인데 뭐 이렇게 어렵나? Korean은 뭐든 괜찮으니 빼고 생각하라고~"
"마침 하야트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났는데, 거기 데판야끼 요릿집이 있잖아? 마침 주말이니 와인은 무제한으로 제공한다고.."
"그야말로 베지테리안과 논베지테리안 요리를 한 철판에서 하는 것이니 미안하지만 난 안 되겠네."
"그렇지, 좀 그러네.. 델리에는 전 세계의 요리가 다 있는데 우리가 모이니까 갈 곳이 또 없구먼. 그래도 생각을 해 보자고. 뭔가 방법이 있지 않겠나?"
"I got an idea.. 아쇽호텔의 사가르 라트나_Sagar Ratna 레스토랑으로 가보지. 거기야 말로 여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지 않나? 그 집은 모두 인도 남부식 베지테리안 음식이니 여기 모두의 교집합은 되겠네. 남부 음식은 또 여기 사람들에게는 외국 음식 같은 느낌도 나지 않아? 문제는 내가 엊그제 고향에 갔다 돌아왔는데, 기름진 북쪽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고 고향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래도 나 하나 희생하면 모두 해피하지 않을까?" 아닐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의 첸나이 출신이다.
"에스키.. 난 그거 좀 그런데 배고프고, 사람이 최소한 치킨은 먹어야지 어찌 그리 먹는단 말이야?" 이 친구의 말투는 수염이 덥수룩한 겉모습과 달리 부드럽고 조용하다. 펀잡주는 주말에 닭고기와 위스키 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만_T.S. Mann은 펀잡 출신이다. 그는 늘 말을 시작할 때 '에스키_Eskki'라고 하는 말버릇이 있는데, 펀잡 사람들이 친한 사이에 사용하는 구어적 표현인 것 같다. 원래는 "Sat Sri Akal"이라는 펀잡어를 줄여서 하는 말이라는데, 본래의 뜻은 "God is the ultimate truth", 즉 신이 궁극적인 진리라는 뜻이라고 하지만 그저 흔히 말버릇처럼 쓰는 모양이다. 느낌상 우리말로 하면 '졸라 진심으로' 뭐 이런 의미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진짜 뉘앙스는 잘 모르니...
"사가르 레스토랑 괜찮지. 베지테리안 음식이 건강에 좋다구. 다이어트에도 좋고, 다들 살도 빼야 하니 거기로 가지. 아닐이 이리 센스가 넘치는 줄 미처 몰랐어.
"산지브는 집안이 구자랏 출신이지만 델리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델리 사람들의 말투는 듣기에 따라서는 화가 난 듯 소리치는 것 같이 들린다. 말도 빠르고 몸짓도 크다. 그의 성은 제인_Jain인데 그 집안은 기본적으로 제인교의 영향권에 있다. 그들은 철저한 베지테리안이고 마늘과 양파 같은 자극적인 식재료는 물론이고, 땅 밑에서 자라는 식물도 먹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불교도보다 더 철저한 금욕주의자들이다. 그에게 사가르 라트나 식당의 음식은 언제든 환영이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남자 네 명이 식당 하나를 고르기 위해 꽤 깊은 토론을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것 같아 보일 수 있을까? 게다가 이런 토론을 모두 영어로만 한다. 인도의 어느 언어도 하지 못하는 한국인은 식당을 고르는 문제에 있어서 변수가 아니므로 제외하고 정하라 했거늘! 그러나 Korean은 제외해도 되는 변수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 세명의 인도 사람들이 영어가 아니면 서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만_Mann은 펀잡어_Punjabi와 영어를 하지만 힌디_Hindi 어는 잘 못한다. 아닐_Anil은 타밀어_Tamil와 영어를 하고 약간 억양이 이상한 힌디어를 한다. 산지브_Sanjeev는 영어와 힌디어, 구자랏어_Gujarati를 할 줄 안다. 따라서, 이 세 사람의 소통을 위한 언어의 교집합은 영어뿐이다.
세 사람 모두 국적은 모두 인도 공화국_Republic of India로 똑같은 여권과 똑같은 인도 돈인 루피화_India Rupee를 사용하지만 서로 모국어가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 서로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 제주 사람이 서울 사람에게 '맨도롱 또똣할 때 호로록 들이 쌉소'라고 말하면 서울 사람이 정확히 그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느낌적으로는 뭔가 음식이 따듯할 때 들이키라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 같은 인도인들끼리지만 이들은 마치 독일 사람과 노르웨이 사람, 그리고 포르투갈 사람이 모여 각자 자기의 언어로 말을 하듯 서로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영어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이방인에게는 더 이상해 보인다.
영어도 그들이 사용하는 인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여러 언어 중의 하나일 뿐인 듯하고, 한국어도 인도에 가면 그저 인도의 어느 지역 언어가 아닐까 싶은 착각도 느낀다.
델리에서 운전을 하다 경찰이 자기 마음대로 과속이라고 차를 세우고 면허증을 요구한 적이 있다. 국제 면허증을 사무실에 두고 와서 그저 한국 운전면허증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자동차운전면허증에는 영어로 Drivre's License라고 괄호 안에 적혀있다. 그것을 본 경찰은 집 주소를 물어보더니 핑크색 과속 단속 문서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300루피 벌금을 부과하고 그 자리에 벌금을 받아갔다. 이상한 경험이다. 당한건가?
인도는 나라의 면적이 넓고 지리적 위치 특성상 만년설을 비롯하여 사막, 열대우림이 모두 존재하여 지역마다 생산되는 농산물도 다르다. 인도의 경제가 괄목할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직은 농업국가이며, 생산되는 농산물이 다르다는 것은 기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요즘에는 스마트팜의 출현으로 기후 제약을 어느 정도 우회할 수는 있지만 그 또한 근본적으로는 자연의 통제를 받기 마련이다) 지역별로 다른 기후는 서로 다른 의식주 문화를 탄생시키며, 전반적인 사회문화, 경제 및 정치 구조,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인도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에 걸맞게 이런 서로의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토론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문화는 간혹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함께하는 사회를 위한 기본은 지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인도의 또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