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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John Meat는

홀리몰리 인도델리

by 초부정수

"안냐쎄요? 오늘은 무슨 고기? 안심? 등심? 꼬리?"라고 소리치며 말을 걸어온다.

"등심?"

얼떨결에 그저 등심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몇 킬로?"


"2 킬로 정도?"

나는 등심 세 근이면 꽤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기왕에 공장에 왔으니 그 정도는 사야 할 것 같았다.


"에이.. 그냥 20 킬로."


"20 킬로 TOO MUCH 에요!"

등심 20Kg은 양도 양이지만 그 가격이 꽤 바쌀 것 같아 너무 많다고 손사래를 치는데...


"No No. 기본 20 킬로. 팔로우 미."


그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20Kg의 냉동 등심을 한 박스 내어놓는다.

마치 나무로 만든 밀가루 반죽 밀대 모양의 냉동 고기 덩어리가 20개 들어 있는 박스다. 고기 한 덩어리에 1Kg씩인가 보다. 등심을 20Kg씩 사 본 적이 없는데...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사야 할 것 같다.


"얼마예요?"


"이만 원만 내." 물론 루피로 계산을 했지만 우리 돈으로 이 삼만 원 정도밖에 안되는 등심 20Kg이다. 생고기가 아니라 냉동고기라도 그렇지...


"뭐 다른 건? 꼬리 좋아.."


"대쓰요.. 꼬리는 나중에 합시다."


존은 델리 근교 공장의 매니저인데, 자신을 존_John이라 소개한다. 꽤 오래 전일이니 어쩌면 지금은 직장을 옮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핸드폰에 그의 연락처를 John Meat라고 등록해 두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도에서는 소고기 판매가 꽤 심하게 통제되고 있는데, 주에 따라 그 규제의 정도에 차이가 있고 28개 주 가운데 20개 주에서는 암소와 송아지, 수소와 거세한 송아지의 도축은 물론이며 판매와 보관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를 어길 시 최대 5년의 징역형 또는 1만 루피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델리와 근교에서의 법은 지금의 수상인 모디가 정권을 잡은 이후 더욱 심하게 적용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누구나 인도 여행을 하면서 소고기를 보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또 놀라기도 한다. 지금은 외국의 패스트푸드 체인점도 많아지고 다양한 고급 레스토랑도 많아져서 예전보다는 쉽게 소고기를 접할 수 있게 되었으나, 2000년대 말까지만 해도 그렇지 못하여 한국 식당에 가기 전에는 여간해서 소고기를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한 데는 약간의 트릭이 숨어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에 인도에 와 있던 프랑스 사람을 통해 Jone Meat를 알게 되었다. 그를 찾아가면 소고기를 살 수 있다는 아주 귀한 정보를 확보하여 그가 일하고 있는 공장으로 찾아가 보니 놀랍게도 ISO 인증을 받은 소고기 수출 공장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소고기를 먹지 않는 분위기의 인도에 소고기 수출 공장이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를 처음 본 John Meat는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말로 고기 종류를 대라고 한다. 아마 나 이전에도 많은 한국 사람이 이 자를 찾은 모양이다.


20Kg의 등심을 인도에서 구한 행복감은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등심 맛은 그 정도의 행복을 주지는 못했는데, 먼저 고기의 색깔이 한우와 같은 선홍색이 아니라 옅은 분홍색이다. 약간 옛날 소시지 같아 보인다. 그래도 소시지는 아니고 진짜 고기다. 물론 마블링도 없다. 하나, 구우면 소고기 냄새가 나며 맛도 꽤 그럴듯하여 인도에서 그 정도로 푸짐한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니 역시 하느님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을 열어 주시기는 하나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인도에 소고기 수출 공장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풀기 어려웠다. 그리고 소고기를 사서 먹었다는 것을 인도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할까 싶어 조심하다 보니 더 그 내용을 알지 못하고 그 후로도 John Meat에게는 미리 전화를 해 놓고 나름 비밀스럽게 소고기를 샀다. 이건 마치 한국 주재원들이 사우디 아라비아나 이란에서 몰래 와인이나 위스키를 사서 마시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저 현지 적응 과정에서 정보 수집 실패에 의한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나마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디라지와의 대화를 통해서이다.


"미스터 문, 그건 그냥 버펄로 고기예요. 보통 카라비프_carabeef라고 하는 물 소 고기인데... 인도가 세계에서 이 물 소 고기 수출은 제일 많이 하는 나라니까 값은 싼데, 맛은 별로야."


'카라비프?' 가라 비프인 줄 알았다. 가짜라는 의미의 비속어 가라의 어원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버펄로 고기는 가라비프 또는 유사비프이다. 이것이 인도 법의 트릭이었던 것인데, 물 소는 소이기는 하지만 인도 사람이 이야기하는 신성한 동물인 소에 속하지 않는다. 실제로 BULL과 BUFFALO는 이종간 교배가 가능하지 않은 서로 완전히 다른 종이니 비밀스럽게(?) 사서 먹을 필요가 없었다.


인도물소 BUFFALO


인도의 신성한 흰 소


인도에 가면 거리에서 늘 무리를 지어 방랑하는 소들을 볼 수 있는데, 소를 숭상하는 나라라는 인식 탓에 모두 팔자가 좋은 '자유 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소들 모두 주인이 있으며, 젖을 짜거나 밭을 가는데 동원되기도 하며, 오래전 우리나라 국민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할 때 집에 자동차 있는 사람, 또는 냉장고 있는 사람이라는 구분이 있듯이 인도에는 아직도 집에 몇 마리의 소를 가지고 있는지 기록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소는 큰 재산 목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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