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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두 남녀가...

홀리몰리 인도델리

by 초부정수

내 앞에 나타났다.


"You must be Mr. Soo..'

남자의 말씨가 부드럽다. 태도 또한 친근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다.

남자 옆에 인도 전통 복장인 사리를 입고 서있는 여자는 엷은 미소를 지을 뿐 말이 없다. 5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대머리남자는 (실제는 더 젊을지도 모른다) 더운 날씨에도 하얀 긴 팔 셔츠 위에 옅은 베이지 색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 정도로 여겨지는 아리안 계통의 골격을 지닌 여자는 길고 짙은 검은색 머리칼과 짙은 눈썹 때문인지 강한 느낌을 준다.


며칠 전 내무부의 KKP와의 그리 즐겁지 않은 대화 이후 뉴델리의 메리디언 호텔 커피숍에서 인도 협력사인 바얌테크의 라탄 대령과 이야기 중에 이 두 남녀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라탄 대령은 IT 엔지니어 출신의 퇴역 장교로 입찰 참여 시 우리의 인도 측 PM으로 공을 많이 들였던 터라 그 역시 작금의 상황이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인도에서 군인, 특히 장교들은 상당히 존경을 받으며 스스로도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Do I know you?"

KKP를 만난 이후 스트레스가 쌓인 탓인지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그리 친절한 느낌을 주지 못하던 중인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하니 짜증 섞인 반응이 나왔다. 게다가 Mr. Soo라고 하는 것을 봐서 어디선가 내 이름을 들었으나, 나를 잘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이름의 맨 마지막 글자를 성으로 착각했거나 인도 사람들처럼 성 대신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니니 아마 내가 그들에게는 첫 한국인이었던 모양이다.


"No, Not really, sir.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내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으며, 지금 내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다. 라탄 대령은 주제가 다소 껄끄러운지 자리를 피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대뜸 사람의 문제를 들먹이는 경우는 범죄 혐의자를 대할 때 이외에는 잘 없는 일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를 안다고 하시니 앉아서 차나 한 잔 하시죠."

주변 상황이 복잡하여 단순히 모른 척할 수 없는 일이니 들어는 봐야겠다. 사실은 내가 그 시간에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미루어 짐작하면 운전기사들을 수소문해 알 수는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늘 기사들에게는 동선을 알리지 말라는 주의를 주지만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IT 기반의 네트워크는 변변치 않지만 인도 사람들로 이루어진 인적 네트워크의 효과는 놀랄만하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마니야라고 하고, 미스 오브로이라고 하는 함께 온 여자를 소개했다. 오브로이_Oberoi 집안은 인도 펀잡주 출신의 유명 가계로 고급 호텔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을 하는 재벌 집안이다. 인도는 집안의 결속력이 우리보다 더 강한 측면이 있어 마치 삼국지에서 상산의 조자룡이라는 식으로 출신 지역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는 것 같은 느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아 미스 오브로이라고 하니 집안 배경을 먼저 따져 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여자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요?"

나의 질문에 그는 자신의 배경을 먼저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뭄바이에서 큰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건설회사라는 곳을 들어 본 적이 없으며, 그가 하는 사업이라는 것은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인도에는 별별 회사들이 다 있고, 우리가 익숙한지 않은 사업도 많으니 그럴 수 있다. 함께 온 미스 오브로이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혼녀인데, 전 남편이 중앙정부의 무슨 장관이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의 조합이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간단히 생각하면 로비스트들이다. 물론 그 수준을 알 수 없지만, 나를 찾아온 것을 보면 그리 수가 높은 로비스트는 아님이 분명한데, 나름대로 정부 쪽에 줄을 대고 있나 보다. 하긴 당장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없었을 거다. 어디선가 얼마 전 한국 놈 하나가 내무부의 KKP와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를 찾아온 모양인데 인도에는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인지 비밀도 없고 맞는 말도 없다.


인도인들도 늘 바쁘다 (자이푸르)



델리 코넛 플레이스

미국과 유럽에서는 로비 활동이 합법화되어 있으며 정당한 행위로 인정받고 있지만, 인도에는 한국과 같이 로비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로비 산업은 거대하며 공공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그렇다. 입법화되지 않은 탓인지 로비가 뇌물 수수와 동일하거나 비윤리적인 행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관련 법적 규제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로비 활동 전반이 부도덕하거나 비윤리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마니아의 조건은 충분히 불법적인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무슨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자신들이 내 문제를 해결을 할 수 있다며 그 대가로 무려 프로젝트 금액의 3%를 달라고 한다. 그것도 선불로... 36억 원을 달라고? 말이 안 된다... 그 정도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면 KKP 정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나를 호구로 본 것 같은데, 이들이 이러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조건이 꽤 센데,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거요? 들어봅시다…”


“내가 먼저 조금 설명을 하지요..” 미스 오브로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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