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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니뚜가

홀리몰리 인도델리

by 초부정수

보기에도 묵직한 커다란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리자, 현관의 둔탁한 철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집 안에서 빗장을 걸어 놓으면 열쇠만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어 초인종을 눌러야 할 때도 있지만, 니뚜는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문을 열고 들어온다. 지금은 해가 지고 있으니 저녁 식사 준비를 할 시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니뚜는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같은 말이지만 부엌과 주방은 조금 다른 느낌의 공간이다. 요즈음의 아파트에서는 부엌 대신 주방이라는 말이 일반적이다. 반면에, 부엌은 주방과 달리 집에서 고립되어 독자적인 공간일 것만 같다. 어쩌면 부엌은 주부들만의 공간이라는 전통적 인식의 조각이 남아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여하간, 니뚜가 향한 부엌은 문이 달린 별도의 공간이긴 하다.


부엌에는 지금의 한국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물건들이 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의 가스레인지가 놓여있는데, 불을 붙이려면 가스가 나오도록 손잡이를 돌리고 성냥이나 라이터가 필요하다. 주로 한국의 식당에서 사용하는 시스템과 유사하다. 한국 주방에는 대개 가스레인지나 전기 인덕션이 놓인 자리 밑에 오븐이나 식기세척기 같은 기계가 들어있지만, 인도 집에는 그 자리에 대개 LPG 가스 실린더가 놓여있다. 수도인 델리에도 아직 도시가스 시설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넓은 땅에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긴 하다. 문제는 이 가스 실린더를 마음대로 양만큼 구매하여 쓸 수 없고, 집마다 년간 사용할 수 있는 실린더 개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에는 가구마다 14.2kg 용량의 실린더를 한 달에 한 개 구매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일 년에 15개를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영국이 지배하던 시기부터 인도는 유전을 개발한 산유국이고, 아라비아해에서는 아직도 계속 대규모의 가스전이 개발되고 있지만 워낙 인구가 많고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곳이 많아서인지 자체 수요 충족은 17~18%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밥을 하다가 가스가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종종 그런 일이 벌어진다. 가스 불의 색깔이 옅어지고 작아지기 시작하면서 훅하고 사라진다. 불교에서 열반에 든다고 하는 말이 원래 석가모니 시대의 팔리어로는 닙바나, 산스크리트어로는 나르바나라고 한다는데, "불어서 끄다"라는 뜻이다. 가스레인지의 불꽃이 사라지는 모습을 인도에서 보면 간혹 환경적인 탓인지 니르바나가 생각날 때가 있다, 니르바나는 무한한 자유를 뜻하지만 나와 같은 범인들에게는 그저 수많은 죽음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졸지에 가스 불을 잃은 니뚜의 나라 잃은 표정을 보면 아마 누구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추도식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지휘한 마음으로 실린더의 부활을 절실히 원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절실히 원하면 이루어지듯이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어디선가 가스가 꽉 채워진 실린더 한 개가 도착한다. 소위 암시장에서 웃돈을 주고 다른 가구에 배당된 실린더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니뚜는 득의양양(得意揚揚)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그런 표정에는 나 같은 이방인들은 익숙하지 않아 잘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스 실린더를 사용해 본 것이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이기 때문에 막혀있는 실린더의 뚜껑을 떼어내고 호스를 연결하는 작업이 영 불안하기만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무거운 실린더를 제자리로 옮겨 놓는 것이다. 그리고 니뚜의 거침없는 손길을 따라 가스 호스가 실린더에 날아가 붙는다. 비로소 니뚜는 혹시 가스가 새지는 않는지 확인한 후, 밥 짓던 일을 계속한다. 지역 전문가로서 분명히 자신이 나보다 훨씬 문명인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인도의 가정용 가스 실린더

여러 가지 이유로 인도의 델리에서는 인도 음식이나 한국 음식을 막론하고 식재료가 다 준비되었다고 해도 시간이 한국보다 더 오래 걸린다. 똑같은 일이라도 한국에서보다 손이 두세 번 더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훨씬 더 질이 좋은 요리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성은 더 들어가서 마침내 음식이 준비되었을 때의 심리적인 만족은 더 커지는 마술과 같은 일이 생긴다. 니뚜는 이러한 마술 연출에 보조 역할을 맡고 있다. 우선, 쌀을 씻고 밥을 해야 한다. 인도에서 구매할 수 있는 쌀은 한국의 쌀과 달리 밥을 해 놓으면 밥알이 날아다녀 젓가락을 사용해 먹기가 쉽지 않다. 인도인들이 최고로 치는 쌀은 바스마티 쌀_Basmati Rice인데, 낱알이 길쭉하고 끈기가 없으며 밥을 지으면 특별한 향이 난다. 힌디어인 바스마티라는 용어 자체가 ‘향기가 나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 익숙해지면 오히려 바스마티 쌀로 지은 밥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도 조금 더 찰기가 있는 쌀을 구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쌀과 같지는 않지만, 젓가락으로 식사할 정도의 끈기는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쌀을 씻는 것이다.


수돗물로 쌀을 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데, 정부에서 공급하는 수돗물 자체가 그리 깨끗하지 않고 석회도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물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 가스 실린더와 같이 주문해야 하지만 가스 실린더의 경우와 달리 구매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아침마다 물장수가 20리터 들이 생수를 몇 통씩 배달해 준다. 물장수라고 해서 우리의 오래전 북청물장수처럼 지게로 물을 배달하지는 않고 트럭에 물을 실어 나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가정의 주방과 달리 인도의 부엌에는 회사처럼 20리터짜리 물통들이 여러 개 놓여있고, 식수와 양칫물, 그리고 요리 등에 사용된다. 사실 생수는 아니고 공장에서 정수 처리가 된 물입니다. 이 물이 수돗물보다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자신하기 어렵지만 심적 안정감 유지에는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쌀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불순물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한 상태가 아니어서 여러 차례 잘 씻어야 한다. 생수통에서 물을 받아 이런 쌀을 씻으려면 손이 많이 가기 마련이다. 이렇듯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 비단 쌀뿐만이 아니다. 야채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인도의 델리에 한국의 슈퍼마켓 같은 것이 생겨 일차적인 손질을 거쳐 단위 포장이 되어 위생적인 듯 보이는 상품들이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십여 년이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슈퍼마켓의 상품들은 일반적인 인도 사람들이 소비하기에는 너무 비싸다.


니뚜는 슈퍼마켓에서 사 온 비닐 포장이 된 비리비리해 보이는 호박의 비닐을 벗겨 씻으며 신이 났다.


“마담! 코리아에서도 이렇게 예쁘고 품질 좋은 호박을 살 수 있어요? 코리아에서는 아직도 시골의 밭에 가야 싱싱한 채소를 살 수 있지요?” 통통한 체구와 달리 높은 톤의 목소리로 니뚜가 영어와 힌디어를 적절히 섞어 쓰며 자랑스럽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도대체 이건 또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그런 니뚜의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납니다. “그래, 이 호박이 좋구나!”


인도의 야채들은 대개 작고 비리비리해 보이는데, 더운 날씨 탓도 있지만 서둘러 팔기 위해 다 자라지 않은 채소도 수확해서 판매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겨울 인도 대기업의 여성 부사장이 한국 출장을 왔을 때, 강남 무역센터 현대백화점의 슈퍼마켓에 들른 적이 있다. 넘치게 쌓여있는 과일과 채소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났다. 그녀는 인도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상품이라고 하며 딸기를 몇 바구니 사서 인도로 가져갔다. 인도 세관 통관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론상으로는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인도는 아주 자유로운 곳이자 글로벌 한 문화를 포용하기 때문에 잘 가지고 갔다.


니뚜는 네팔 여성이다. 남편은 델리에 있는 어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을 한다. 부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외동딸을 키운다. 나이는 정확히 물어보지 않았지만, 네팔 여성들의 평균 결혼 연령이 대략 16~17세 정도이고, 어린 딸이 아직 6살 정도였던 것으로 봐서 니또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우리 기준으로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아이의 엄마여서인지 그의 말이나 행동을 보았을 때 어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니뚜와 그녀의 귀여운 딸

“니뚜, 너 정말 여기서 살 거야?” 새로 온 아야 니뚜에게 아내가 물었다.

“예스 마담! 여기 있어야 우리 딸 학교도 좋은 데 보내고 남편도 직장 출퇴근이 편해요.”


우리 집 옥상에는 아야로 일을 하는 니뚜가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쿼터가 있어서 그곳에서 세 식구가 함께 산다. 인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옥상의 쿼터_quarter는 밤에 별과 달을 보면서 칵테일 한잔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싶을 정도의 시멘트로 만든 서너 평 정도도 안 되는 컴컴한 방에 불과하여 밤이슬 정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덥다. 하지만, 기꺼이 그곳에서 머물며 아야로 일을 하고, 직장으로 출근하며 학교에 간다. 대중교통수단도 서울처럼 풍족하지 않은 환경인 탓에 델리 근교에서 출퇴근하는 것은 대단히 고단한 일이기 때문에 니뚜는 기꺼이 조그만 쿼터에서 지낼 결심을 했다. 우리는 여름에 사용할 수 있는 칠러_Chiller를 사서 방에 넣어주었다. 칠러는 좀 특이한 에어컨 같은 것인데 물을 사용하여 공기를 차갑게 하는 기계다. 인도에는 이런 특이한 제품들이 많은데, 전기가 필요치 않은 냉장고는 아프리카 등 여러 국가로 수출도 한다. 미티 쿨이라는 제품으로 미티는 흙을 말한다. 진흙으로 만든 냉장고로 기화열을 이용해 냉장을 하는 원리이다. 사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MBA School에서도 수차례 방문해서 나름대로 그 회사의 사장은 꽤 유명해졌다.


여하간, 제1화에서 이야기했듯이, 인도와 네팔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이다. 네팔인들은 네팔리_Nepali라고 하는 모국어를 사용하지만, 거의 모든 네팔인은 힌디어를 할 줄 안다. 인도 문화권이라고 이해되는 그레이터 인디아_Greater India의 개념을 가진 인도인들은 네팔도 인도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네팔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도가 네팔보다 강한 국력을 가진 국가라고 생각한다. 니뚜와 같은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더 나은 직업을 찾아 선진국으로 진출한 것이고 어린 딸은 조기 유학을 온 격이어서 성공을 위해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니뚜의 의식 세계에서 인도는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여서 그렇지 않은 한국에서는 인도와 같이 좋은 야채를 구할 수 없다 생각한다. 하물며 한국인인 나도 인도에 와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더 강화되었을 것이다. 나로 인해 인도는 이제 니뚜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선진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호박을 실제로 보여주기 전에는 그렇지 않다는 진실을 이해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 어떤 것이 없다는 것,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무(無)의 상태란 실제로 없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고 해도 자기가 이해하는 그 어떤 것과도 일치하는 것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호박이 좋구나"라고 이야기해 줄 밖에..


우스운 일이지만 델리 법인장으로 지내던 시간 동안 가장 시간을 많이 들여야 했던 일이 다름 아닌 한국 본사 임직원들에게 인도와 안도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일을 해보자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샐러리맨들이 소위 내부영업이 가장 어렵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하는 이유이다. 한국에도 인도만 만나면 니뚜가 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들과 나 또한 서로 니뚜였고, 그 누구도 먼저 "호박이 좋구나"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의 근거 없는 확고한 자의식은 신 만이 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사람의 일을 대치하려는 시도를 하는 AI 개발자들은 가능하면 공감의 영역과 도덕 윤리 영역을 프로그램에 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니뚜의 딸이 많이 컸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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