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전략적 미화와 경성 3C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덕수궁이 원래는 지금 보다 더 컸다고 했는데, 규모가 줄어든 결정적인 이유가 뭔지부터 이야기를 좀 해주면 둘러보기가 더 쉬울 것 같은데, 어때 이런 이야기도 가능하겠지?"


"데이비드가 궁금해하니 가능하지 않아도 해야 하지 않겠나 싶네만, 이건 나보다 필립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네. 이야기 좀 해봐라."


"그냥 챗지피티가 해주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해 달라는 거지?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런 거야."


필립은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결정하는데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필립의 생각에 이건 단순히 한 두 가지의 생각으로는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지만 지난 일들은 보기에 따라 간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덕수궁 주변을 먼저 봐야 해. 우선 대한문 앞에 태평로라는 대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덕수궁이 원래는 지금의 시청 청사까지 연결이 되어 있었더라고. 없어진 구역에는 궁을 지키는 군이 사용하는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없애고 길을 내서 남대문 시장까지 큰 길이 하나로 연결이 된 것이지. 남대문 시장은 전통적인 조선의 재래시장이고 조선의 자금과 인력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었고…”


데이비드는 평평한 곳에 길을 만들면서 굳이 궁궐의 일부를 허물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구만. 원래 조선이 개국하고 수도가 된 한양은 철저히 계산된 계획도시였지. 그 계획 중의 하나가 성내(城內)에서 화재가 날 경우 불길이 일직선으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단 말이야. 그래서 남대문부터 경복궁까지 연결되는 도로를 직선으로 내지 않고 돌아가게 설계를 했다고 하더라. 일설에는 풍수설에 따라 남산이 불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하여 화(火)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그랬다고 하는데, 어찌 되었거나 그 당시의 도시 관리와 재난 방지 차원에서도 상당히 과학적인 방책이었다고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그러니까 지금의 대한문 앞에는 경복궁으로 향하는 대로가 없었다는 말이지. 남대문을 통과해서 경복궁으로 가려면 지금의 시청을 왼쪽으로 두고 돌아서 세종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야 했었단 말이야.”


사진: 도성도(都城圖). 조선 5대 궁궐과 4대 문 4 소문(규모면에서 자금성 면적의 60%지만 5대 궁궐을 합치면 자금성보다 훨씬 큰 규모이다.). 양산신문 2018 07.03. 출처 : 양산신문(http://www.yangsanilbo.com)


일본은 덕수궁을 일부 허물고 남대문에서 경복궁까지 하나로 연결되는 도로인 태평로를 건설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리고 도로가 언제 만들어진 거지?"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는 황토현(黃土峴), 또는 황토마루라고 하는 고개가 있어서 태평로가 생기기 전에는 경복궁까지 바로 가는 길이 뚫려있지 않았던 거야. 세종로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가면 황토마루라는 이름의 카페도 있던데. 하여간, 1912년에 조선총독부에서 경성시구개정사업(京城市區改正事業)이라는 것을 실시하면서 도심부를 격자형으로 재편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 황토현부터 남대문까지 연결되는 길을 똑바로 내었던 것 같아.”


데이비드는 비로소 덕수궁과 태평로의 인과 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심을 격자형으로 재편했다? 그건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인데... "


데이비드는 프랑스 파리가 떠올랐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파리를 런던과 같은 근대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당시 장관이던 오스만 남작에게 지시하여 진행한 파리개조사업(1853년)의 진짜 목표는 도시를 2월 혁명과 같은 내전에서 지키는 것이었다 알고 있었다,


"파리개조사업 같은 것이구만. 혁명 이후에 파리에 넓은 대로를 만든 것은 쉽게 바리케이드를 세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방사선 형태의 도로는 군대와 노동계급 구역 사이에 최단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길을 통해 혁명군이 한 곳으로 몰려들게 유도하여 방어를 쉽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하더구먼. 지금 파리에 관광을 가면 그런 것은 관심이 없고 도시 계획이 아주 아름답게 되었다는 생각만 들지.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작업을 ‘전략적 미화’라고 불렀다고 하네. 이것과 너무 비슷한 이야기 아니냐?"


이안 역시 데이비드의 설명이 그럴듯하다 싶다. 프랑스의 초대 대통령으로 친위 쿠데타를 통해 황제에 오른 프랑스의 마지막 황제이자 독재자인 나폴레옹 3세와 군국주의 일본이 한 일이 결국은 같은 맥락이었기 때문이다.


파리의 방사선 도로
A 지역은 일본 상업중심지였던 황금정(현재 을지로). B지역은 덕수궁을 중심으로 한 대한재국의 중심지


"전략적 미화라는 말이 그럴듯하구나. 일본이 오스만의 사례를 가져온 것일 수도 있겠어. 일본도 지금의 을지로 입구 쪽인 황금정에 방사선 도로를 낼 계획을 세웠지만, 예산 문제로 지연되면서 결국 완성이 되지는 못했어. 당시에 그곳은 충무로, 명동 지역과 더불어 일본 상권이었잖아. 청계천을 가운데로 한 북쪽 종로는 물론 너희도 잘 알다시피 민족 자본의 중심이었고. 김두한 패거리도 민족 자본 운운하면서 종로를 나와바리로 했다는 것 아니냐. 뭐 결국 깡패이긴 하지만."


”결국 덕수궁을 잘라내서 태평로를 만들었다는 건 대한제국으로 탈바꿈한 조선의 황제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구만.“


데이비드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필립이 생각하는 더 큰 이유는 다름 아닌 태평로가 연결하고 갈라놓은 것들이었다.


"네 말도 맞아. 그런데, 나는 대한제국이라는 것보다 덕수궁의 위치가 일본에게 조금 더 위험하게 보였을 거라고 생각해. 마침 프랑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생각해 보자고."


덕수궁과 파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지 데이비드는 물론 이안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


"덕수궁과 파리는 너무 나간 것 아니냐? 너도 망상증이야?"


"망상 일수도 있지만, 일단 내 생각은 그래. 프랑스 루이 14세는 파리시내 백성들의 냄새가 싫다며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아예 거처를 옮겨버렸어. 전제국가의 황제가 백성들과 굳이 가까이 있을 이유도 없고 역사적으로 어떤 황제도 그렇게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어. 덕수궁은 반대의 경우야. 사실 백성들과 완벽히 떨어지고 싶었다면 창덕궁이 가장 좋은 곳이지. 경복궁은 북한산에 오르면 궁의 내부가 보이기도 하지만 창덕궁은 전혀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없거든.”


덕수궁의 위치가 도시 한 복판이라는 사실이 새삼 데이비드의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국운이 경각에 달려 있던 시기에 백성들과 바로 닿아있는 덕수궁이 가진 의미가 있었을 듯싶다.


"그런데 말이지, 필립이 네 말은 고종이 황제가 되어 오히려 백성들과 가까이 있으려 했다는 거야? 좀 더 나가면 제국주의 국가들의 압박에 백성들과 함께 힘을 합쳐 대응하려고 덕수궁으로 왔다는 그런 식으로 고종을 실드 치는 이야기야? 필립이 너도 나 만큼 망상이 좀 심한 편인 줄 미처 몰랐다."


"내 말이 아니고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다는 건데, 일리가 없지는 않은 듯 해. 사실 덕수궁 주변으로는 일본을 제외한 서양 국가들의 공관이 있었다는 것이 덕수궁을 황제국의 중심으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 같기는 해. 왕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로 고종에게 일본은 악몽이 되어버렸을 것이고 어떤 형태로든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게다가 백성들이 대한문 앞에 모여 황제가 되어달라고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에도 최적의 장소였기는 하지."


"그렇게 생각하면 어차피 당시의 조선이 열강들 틈바구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을 것 같구먼. 그래서 그 와중에 고종이 덕수궁 앞 도로를 워싱턴 D.C. 의 도로를 벤치마킹해서 방사형으로 만들면서 미국의 관심을 바란 것일지도 모르지. 이안이 말대로라면 말이다."


데이비드는 이런 이야기를 굳이 검증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워싱턴 D.C. 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조금 전에 알게 된 일이니 말이다.


"하여간, 필립의 생각은 덕수궁과 태평로가 서로 다분히 적대적인 성격이었다는 것이구먼. 덕수궁은 백성들과의 연결에 필요했고, 태평로는 그것을 떼어 내려고 한 것이고?"


"얼추 그런 뜻인데,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덕수궁은 백성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그 백성들과 함께 대한제국을 건국하기 위한 목적이 이었지 않나 싶다. 환구단도 덕수궁 근처의 조선호텔 앞에 지었잖아. 나중에 잠깐 가보면 정확히 알 수 있지."


조선호텔과 황궁우 (사진 출처 : 조선호텔)


"잠깐.. 환구단은 무슨 약 이름 같은데 그게 뭐지? 그리고 태평로는 무엇을 연결하고 무엇을 떼어 놓으려는 거였단 말이야?"


"환구단은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하늘에 황제로서 제사를 지낸 곳이 환구단이고, 황궁우는 부속 건물인데 皇은 황제, 穹은 하늘, 宇는 집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 뜻은 황제의 하늘 집 정도로 알면 될거야. 용도는

신위판 (神位版)이라고 하는 조상, 즉 역대 조선 왕들의 신위를 모셔 놓았던 곳이야. 그게 원래는 종로에 있는 종묘인데, 종묘도 멀다 싶어서 황궁우를 또 만들었나 싶기도 하고.. 하여간, 환구단은 꽤 규모가 컸는데, 일본은 그곳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호텔을 지으면서 태평로를 만들었단 말이지. 지금 그 호텔이 조선호텔이고 그 앞에는 환구단에 있던 황궁우 하나만 외롭게 남아있어."


"연결한 것은?"


"남대문 시장이라고 봐. 이건 조금 더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인데, 혹시 너희들 제국주의 영국의 3C 정책을 알고 있나?"


"예전에 대학생들이 Cash, Camera, Car.. 이 세 가지가 있어야 여자 친구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은 했었지. 3C.."


이안은 필립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대학 때 친구들과 농담 삼아 이야기하던 바로 그 3C를 일부로 들먹였다. 영국의 3C 정책은 19세기 제국주의 정책과 관련해서 Cairo, Cape Town, Calcutta를 잇는 축을 기준으로 식민지배를 강화하려고 했고, 독일은 3B 정책이라고 하여 Berlin, Byzantine, Baghdad를 연결하는 철로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식민지배를 강화하려고 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3C가 뭐 어떻다는 건지는 어디 좀 앉아서 이야기하자. 너희들 말 듣다 보니 다리가 아프다."


데이비드는 겨우 10여분 동안이었지만 꽤 많은 시간을 오르락내리락한 것 같았다. 그 많은 시간들이 그저 흐른 것이 아니고 쌓이고 쌓여 지금 세 명을 한 곳에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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