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이안은 덕수궁 정관헌 앞의 소나무 그늘 아래로 데이비드와 필립을 데려갔다. 그곳의 돌계단은 마치 셋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꽤 아늑한 자리를 내어 주었다.
"여기가 고종 황제가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도 만나고 했다는 정관헌 (靜觀軒)인데, 글자 그대로 조용히 내려다본다는 뜻을 가진 장소이니 우리가 이야기하려던 것을 한 번 차분히 들여다보자고."
"건물이 조금 특이하네. 건축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한국식도 아닌 것 같고 서양식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동남아 양식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데이비드는 정관헌으로 오면서 지나친 석조전을 비롯해서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모여있는 덕수궁의 모습이 어쩌면 덕수궁이라는 명칭이 생길 당시의 세계정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이 정관헌은 사바틴이라는 러시아인 건축가가 설계를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그 사람이 경복궁에서 왕비의 시해 장면을 목격한 작자라고 하더라. 다만, 무슨 이유인지 실제로 누가 살해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해."
"예를 들어서 회사에서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하는 것을 목격한 작자들이 일반적으로 그 사실을 모른 체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걸 잘했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닌 것은 알지?"
"이안이는 그렇지 못한 인간이지. 오히려 너무 행동이 앞서서 지금 우리랑 이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주말에 골프도 안치고 말이야. ㅎㅎ"
"나는 PGA 골프장 아니면 별로 흥미가 없어서 안치는 것일 뿐이란 말여. 나중에 데이비드가 미국에 불러주면 싱글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지."
데이비드는 갑자기 골프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이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니 상관하지 않기고 했다.
"미국에 오면 골프 치러 언제든 가지 뭐. 그게 뭐 대수라고. 샌디에이고에 토레이파인도 좋고, 페블비치 클럽도 좋으니까 같이 한 번 가지 뭐. 단, 내가 조금 전까지 궁금해하던 것을 먼저 해결해 줘야 할 거야."
중년 남자들의 수다도 아줌마들 못지않아 정관헌까지 온 이유를 잊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민망한 느낌이 드는 필립이다. 하지만 이안과 같이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남자들 사회가 여자들 사회보다 더 뒷말이 많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렇지. 내가 이안이 미국 가서 골프 칠 수 있게 궁금증을 풀어주지. 아까 제국주의 영국의 3C 정책을 이야기한 것은 일본이 조선에서 한 일과 비교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야.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제국주의 영국은 이집트의 Cairo, 남아프리카공화국의 Cape Town, 그리고 인도의 Calcutta를 잇는 축을 중심으로 전 세계 식민지를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하려고 했단말이지. 그런데 언뜻 보니까 조선에도 일본이 이런 것을 만들어 놓은 것 같더라구."
"조선이 뭐 얼마나 커서 그런 것을 만든단 말이야?"
"조선이 절대로 작지는 않지. 유럽에 가져다 놓으면 거의 영국만 한 땅이라고. 대략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정도를 합쳐놓은 정도의 면적이지. 유럽에서 영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아주 큰 영토를 가진 나라이지 않나?"
중국 옆에 붙어있는 반도여서 상대적으로 작은 땅으로 보였을 수도 있는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자, 데이비드는 미국에 돌아가면 옆집의 어린 녀석에게 제대로 알려줄 것이 생겼다. 언젠가 겨우 여섯 살 먹은 녀석이 한국이 어디냐고 하여 세계 지도를 보여주며 가리켰더니 꼭 쥐만 하다며 웃었던 기억이 났다.
"그렇긴 하네. 유럽에는 정말 쥐만 한 나라들이 꽤 많지. 하여간, 그래서 조선 어디에 3C가 있다는 말이야?"
"조선이라고 하기보다는 일본이 만든 경성부, 그러니까 지금의 서울에 그것도 덕수궁과 아주 지척에 만들어 놓았지. 대한제국의 건국이 1897년이잖아? 일본이 불법으로 한일합병을 한 1910년에 조선총독부를 만들고 청사는 남산에 있었는데, 1926년에 청사를 경복궁 경내에 지금은 철거했지만 총독부 건물을 만들어서 이전을 한 거야. 그리고 1910년에는 아마도 가장 당면했던 일이었을 것인데, 조선은행을 설립했지, 그 건물은 지금 신세계 백화점 건너편에 화폐박물관으로 운영 중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1920년부터 1925에 신궁(神宮)으로 격상하여 완공한 조선신궁은 남산에 있었어. 남산의 소월길을 따라 올라가면 남산 도서관이 있는데 그 근처에 있었다고 해. 그 신궁으로 가는 길이 일본인들이 만든 소월길인데, 꽃피는 봄에 가면 구불구불한 길이 아주 낭만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 거야."
"그래서 3C라고 하는 거야? Chosun XXX 이렇게 이름을 붙인 거구만. 결국 네 말은 조선 총독부를 통해 식민지 정치를 확고히 펼쳐 나가면서 조선은행을 설립하여 착취 기능이 최대화된 식민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조선인들의 손발을 묶어버리고자 한 것이란 말이군. 그리고 조선신궁에 참배를 강요해서 민족정신과 문화를 말살하고 완벽히 일본에 동화시키려고 한 잘 짜인 시나리오라고 보는 것이구만. 그럴듯하다."
"뭐 망상일 수도 있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봐. 그리고 당시에는 조선의 영문표기를 Chosen으로 했더라. '조센징'이라는 말을 영어로 쓴 모양이야. 그걸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내가 이렇게 기특한 친구를 가지고 있었는 줄 미처 몰라서 미안혀. 그런데 말이야, 굳이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당시의 일본은 군사력도 강했고 조선 사람들을 억압하는 데는 선수이지 않았나? 구태여 그런 복잡한 시나리오를 만들 이유가 있었나 싶기도 하네."
"다카하시 도루(高橋 享)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일이 없겠지? 이 일본인은 한국인들이 잘 알아야 하는데,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소위 식민사관이라고 하는 말은 들어봤지?"
데이비드는 식민사관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내용을 정확히 알아본 적은 없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스스로 엽전이 다 그렇다고 하거나, 대강대강 문화를 가진 조선 놈들이 하는 일이 그렇다고 하는 등 다분히 자조적인 시각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역사관이라는 어렴풋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한국인들의 나쁜 습성으로 나라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그런 내용 아닌가?"
"결국은 그런 것인데, 일본이 한국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날조한 역사관이지. 한국인들의 좋지 못한 민족성 때문에 늘 남에게 지배를 당하는 비루한 역사를 가졌으니 일본이 도와서 발전시켜 줘야 한다는 주장이 그 핵심이지."
"그 다카하시 도루라는 작자가 하는 말이야? 그 사람은 도대체 뭐 하던 사람이냐?"
"조선의 역사는 독립 국가의 역사로서 가치가 없다. 약 2천 년을 거쳐 내홍(內訌)을 겪거나 예속을 겪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조선인 전부가 우러르는 이상적 인물인 민족적 위인의 출현을 보지 못했다. 만약 조선인이 자랑할 만한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면 평양에서 조선을 열었던 것으로 그들이 믿고 있는 은殷나라 때의 기자箕子(?~?) 정도라고 할까. 기자가 조선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조선 역사가 국민적 가치를 결여하고 있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례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조선인 스스로도 자국의 역사는 자못 경시하여 불필요한 학문이라고 한다라고 책에 쓴 사람이지. <식민지 조선을 논하다>라는 책의 저자인데, 식민사관을 최종적으로 정립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
"뭐 좀 이상한 사람이구만. 아는 것도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이 사람이 수재들만 입학할 수 있다고 하는 동경제국 대학 출신이야. 게다가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조선어 조선문학 전공 교수이기도 했어. 경력이 화려한데,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 교장도 역임하고 1945년 패전 이후에는 일본에 귀국하여 텐리대학(天理大學) 교수로 부임해서는 조선문학, 조선 사상사 등을 강의했고, 같은 학교에서 조선학회를 창립했다고 해. 간단히 이야기하면 일본인으로서 대단히 학문이 높은 지식인이며, 조선 전문가로 명성이 높았던 사람이야. 그리고 그의 저서인 <朝鮮人>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대한민국의 독립 이후까지, 어쩌면 지금의 일본인과 한국인들 각자가 이해하고 있는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것도 사실이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등의 유교 망국론 같은 것도 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어."
"그건 일부 맞는 말 아니냐? 유교가 발전을 저해하는 것도 사실 아니야? 그렇게 들어왔는데 나도..."
"이것 봐, 데이비드 조차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을 보라고. 유교 망국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이 다카하시 도루가 이런 식민사관을 정립해 나가다가 큰 위협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지. 그리고 청계천은 그의 두려움을 더하게 해 준 명당수라 할 수 있다고."
이안과 데이비드는 필립이 청계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더 궁금했다.
"청계천은 갑자기 왜? 그때는 그냥 더러운 하천이었을 건데.."
"일단 들어보셔. 아주 웃긴다고." 필립이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간다.
"다카하시 도루高橋 亨가 1923년 5월 일본의 박문관(博文館)에서 펴낸 잡지(雜誌) 태양(太陽)에 <조선의 문화정치와 사상문제>라는 글을 기고했어. 주요 내용은 일본이 문화정치를 통해 조선인을 교화하고 근대화를 이루고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조선인들은 그것에 반항하며, 하물며 일본의 문화 수준이 조선의 문화 수준보다 낮다는 주장을 넘어 일본의 고유문화란 없다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다고 썼지.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조선에 대한 문화정책을 어떻게 펼쳐 나가야 결국 조선인을 일본인과 같이 문화인으로 개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 거야."
"하지만, 문화정치라는 것의 정체는 3ㆍ1 운동 발발과 함께 일본에 대한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세계에 대한 기만적 정책이었잖아. 그 문화정책의 결과로 오히려 조선에 대한 식민 정책은 더 가혹해졌고."
"그렇지. 다카하시 도루高橋 享는 이런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느낀 탓인지, 이 기고문의 도입 부분에 조선의 하천은 일본과 달리 발원지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즉, 여기저기 계곡 사이에서 나온 수맥이 땅 위를 흐르는 대신 바위틈에서 솟아나거나 땅속으로 흘러들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데, 조선인들은 그 수맥을 잘 알고 우물을 파서 물을 솟아나게 한다는 점이 신기하다는 듯 구구절절 설명을 하는 거야. 경성부, 즉 한양에도 이런 우물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씩 예시를 들어 설명을 하고, 땅 위의 하천은 말린 명주와 같이 물기가 없는데, 이것은 일본과 완전히 다른 경우로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고자 하는 일은 수박의 푸른 껍질을 붉은 과육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면서 걱정을 늘어놓았어. 고분고분해야 할 조선인들이 3ㆍ1 운동을 계기로 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지."
물에 대한 이야기를 도입부에 한 것은, 조선인들의 마음은 조선의 물과 같아서 일본인이 알기 어렵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 데이비드는 청계천과의 관계가 더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물이 청계천 물이라는 말이야?"
"지금의 청계천은 한강물을 과학 기술을 이용해 끌어올려 하수 처리를 한 후 다시 흘려보내는 식으로 되어서 정말 깨끗한 명당수처럼 관리가 되고 있잖아. 그런데, 원래의 청계천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부터 물이 흘러 내려와 모이고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던 구조였어. 중요한 것은 이렇게 산에서 내려온 물이 조선의 궁을 거쳐 청계천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지. 그런데 다카하시 도루가 본 청계천에는 물이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이야. 아마 이런저런 개발을 하면서 지하수들이 빠져나갔겠지. 지금 지하철 공사 등 오랜 도시 개발을 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물이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명당수와 궁궐이 핏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는 데 생각이 미친 데이비드는 비로소 경성 3C가 필요해진 일본을 이해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물이 갑자기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는데, 한국인들은 그 맥을 잘 알고 있고 그 맥은 또 황제와 연결이 되어있는 것 같다는데서 일본은 조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