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덕수궁 안으로 들어갈 때의 대한문과 나올 때의 대한문의 표정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궁 안에서 보낸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백 년의 세월이 쌓였기 때문인가 싶다.
“아직 햇살이 투명하니 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 필립이 이야기한 황토현이라는 곳에 한 번 가보자. 비로 근처인 것 같던데.” 데이비드는 이 넓은 도로가 예전에는 나지막한 언덕으로 막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가봐야 지금은 언덕의 끄트머리도 찾아볼 수 없을 거인데. 뭘 보려고 하는 거야?”
“뭘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거리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을지 상상을 해보려고…”
“나도 가보고 싶기는 해. 길이라는 것이 단순한 것 같지만 사람은 물론이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유형과 무형의 모든 것이 목적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잖아. 그 길의 모습을 상상하면 또 그 당시를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을 거야. 요즈음에는 IT 기술에 따른 도로가 더 중요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도시의 도로를 관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
“난 뭐 이안이가 하는 말처럼 그렇게까지 거창한 생각으로 황토현 자리에 가보자고 한 것이 아닌데. 그냥 예전에는 언덕이 있었다니 신기해서 그러지”
간단한 잡담이 멈출 즈음 셋은 세종로 사거리에 도착했다.
“흠… 여기에 산이 있었다는 것이구먼. 아무리 낮은 언덕이라고 해도 이 넓은 길을 가로막고 있었으면 언덕을 치우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을 것 같네. 장비도 좋지 못했을 것인데.”
“일본이 여기에 있던 황토마루를 없애고 도로를 이렇게 크게 만든 이유를 생각하면 시원치 않은 장비로 고생했을 것 같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지. 일본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었거든.”
“교통체증이 있었을 리는 없고... 물류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아니었나? 한양은 고대 도시여서 오래된 길들은 사람이나 소, 말들의 이동에는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트럭과 같은 자동차가 다니기에는 불편했을 것 같은데…”
“데이비드가 내 덕에 점점 똑똑해지는 것 같구만. 1912년에 조선총독부에서 여기 황토현 언덕을 평탄화해서 폭 100m, 길이 220m의 광장을 조성하라는 훈령을 내렸어. 그리고, 이야기했듯이 태평로를 조성해서 경복궁과 남대문을 잇는 직선 도로를 만들었고, 그때 덕수궁이 잘려나갔잖아.”
“그러니까 결국 네 말은 일제의 식민지적 도시 전략이었다는 것이구만. 다카하시 도루가 두려워했듯이 조선 사람들은 청계천 물과 같아서 어디서 나타나, 어디로 모이는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꼬불꼬불하고 어디로 연결되는지도 잘 모르는 길 역시 위험하다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 직선도로는 통제와 감시가 상대적으로 용이했을 거야. 이 또한 전략적 미화일세.”
“내가 남대문시장과의 연결이 중요하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 시장(市場)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것이긴 하지만, 원래 일본식 한자어 란 말이지. 한국에서는 장시(場市)라고 했는데, 상품의 매매가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사교와 오락, 정보 교류가 일어나는 공간이었다는 것이야.”
"필립이 말을 듣다 보니 남대문 시장이 지금으로 치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의 기능을 가진 거였네. 정치나 경제, 동네 사람들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져나가서 한양을 한 바퀴 돌면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지? 일본은 이런 공간이 통제 없이 자유롭게 번성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오히려 일본이 그냥 남대문 시장을 감시하면 될 것 아닌가? 모두 모여 있으면 더 쉽지 않겠어?”
어쩌면 데이비드다운 해결책이다.
“그래서 필립이가 일본이 태평로를 남대문 시장까지 연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본래 남대문 시장은 매일 새벽 3~4시에 남대문을 개방할 때 장사치들이 물건을 가지고 들어와서 장이 만들어졌어. 그리고 오후에는 남대문 장시에서 물건을 도매로 사간 사람들이 종로의 시전으로 가서 거래를 하면서 도성의 경제가 돌아가는 시스템이었지. 즉, 남대문의 장시는 장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또 만들어지고 하는 구조였던 것이야. 청계천 물길과 조선의 오래된 도로 같은 것이지. 일본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에 따른 두려움…”
"이안이가 이제 내 생각을 읽는구먼. 그래서 도깨비 시장이라는 말이 생겼다고도 하는데, 그렇게 상설시장이 아닌 정기시(定期市)를 재래시장이라고 마음대로 정의하고, 원시적(原始的) 상품유통형태로 규정했어, (대한제국 ~ 일제초기 선혜청 창내장의 형성과 전개, 전우용) 이게 지금까지 논란이 되는데, 일본인들은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자리에 미츠코시 백화점과 같은 상설 유통 시설을 도입하면서 한국의 유통 문화 근대화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거야.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의 하나이지."
"식민지 근대화론은 늘 불편한 주제인데, 나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못해. 산업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시간 차는 있을 테지만 일어날 일은 일본이 하지 않아도 일어난단 말이지. 그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일본이 남대문은 왜 남겨두었나 하는 것이야"
"이안이는 남대문이 남아있는 것이 이상하다는 말이냐?"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야? 남대문은 남도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주요 관문인데, 남대문까지 연결되는 큰길을 만들어 놓고 남대문을 그냥 두면 병목현상이 불 보듯 뻔하지 않아? 도로를 만들면서 궁궐도 허물어 버렸는데, 좁은 도성의 문을 그냥 두었다는 건 좀 이상해. 19세기 후반에 이미 한양으로 들어오는 간선도로가 10개 있었는데 남도에서 오는 것이 8개였고, 그중에 5개가 남대문을 통과했으니 지금의 경부선 서울 톨게이트 정도로 복잡했을 거란 말이지."
"그건 이유가 있지. 지금 남대문, 그러니까 정확히는 숭례문(崇禮門)을 보면 문 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성벽은 없어졌잖아? 일본 왕자가 방문했을 때 통행에 방해가 된다며 문은 그대로 두고 성벽을 허물었지. 흔히 동대문이라고 부르는 흥인지문(興仁之門)도 마찬가지인데 문이 남게 된 그 이유는 참 거시기 하지만, 덕분에 남아서 보전되어 온 건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봐."
"뭐가 아이러니란 말인데? 없어졌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 같은데...?
"사실 이 숭례문은 일제 강점기 때 파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었어. 러일전쟁 중이던 1904년 9월부터 1908년 11월까지 조선군사령관으로 근무한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1850-1924)라는 사람이 있었지. 제2대 조선총독으로 취임을 했는데(1916~1919), 엉뚱하게도 남대문을 없애버리라고 명령을 했었어. 이유는 포차(砲車) 왕래에 지장이 있다는 단순한 것이었지. 그런데, 나카이 기타로(中井喜太郞. 1864-1924)라는 사람이 그것을 막았다는 것이야. 그는 당시 한성신보 사장 겸 일본 거류민 단장이었어.”
데이비드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영화가 떠올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프랑스에서 철수하면서 파리를 모두 불태워 버리라고 명령을 했지만, 디트리히 폰 콜티츠 (Dietrich Hugo Hermann von Choltitz) 중장이라는 사람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덕분에 아직도 전 세계의 수많이 사람들이 한 번쯤은 파리의 낭만을 느껴볼 수 있게 된 것인데...
“조선판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였던 것이군.”
"그렇게 인문학적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지. 일본인들은 생각이 조금 다르단 말이야. 콜티츠 중장과 나카이 기타로의 차이가 무엇일 것 같아?"
"콜티츠 중장은 훌륭한 인류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파리를 도저히 파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히틀러에게 거짓말을 했는데, 나카이 기타로라는 사람은 다른 이유가 있었나 보네.."
"나카이 기타로는 임진년 전쟁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1562-1611)가 이끄는 일본군이 숭례문(남대문)을 통과해서 조선 왕궁으로 입성했고, 흥인지문(동대문)은 가토와 함께 일본군 선봉을 담당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1600)가 통과해 한양을 함락시킨 자랑스러운 기념물이라는 이유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야. 인류문화유산 같은 것은 처음부터 아예 머릿속에 없었어.”
데이비드는 그렇다고 해도 나카이 기타로가 내심 문화재를 파괴한다는 것에 가책을 느꼈지만 감히 조선 총독의 명을 거역하기 어려워 핑곗거리를 찾은 것이길 바랐다.
“그래도 남의 나라 문화재를 파괴한다는 것에 조금 양심의 가책은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랬다면 서대문이라고 알려진 돈의문 (敦義門)과 서소문도 남아있어야 할 거야. 일제는 경성시구개정사업(京城市區改正事業)이라는 것을 하면서 전차선 복선화를 한다며 돈의문(敦義門;서대문)은 경매를 통해 쌀 17 가마 값인 단돈 250원에 염덕기라는 사람에게 팔아 버렸어. (매일신보 1915.3.15). 서소문도 다 그렇게 팔려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생각해 보면 네 말대로 아이러니하긴 한데, 어떤 이유로든 남아있는 유적은 좋고 나쁜 역사적 사실을 모두 잊지 말고 잘 보존하고 사라진 것은 왜 사라졌는지 제대로 기록을 해 놓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성벽은 허물어서 다 팔아먹은 모양인데, 여기 황토현을 없애면서 나온 흙도 다 팔아먹었을까? 청계천을 막는데 썼나? 그것도 좀 궁금하네.."
그렇다. 또 이렇게 길거리에 서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게다가 평소에는 거의 생각지도 않던 이야기들이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런 식으로 튀어나오는 것인지... 필립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기왕에 남대문 시장 이야기가 나왔으니 남대문 시장에 가서 저녁을 먹지. 흙 이야기를 하니 서울깍쟁이 생각이 나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