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똥, 흙, 식당의 아리에타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필립이 다시 덕수궁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대한문 앞에서 소공로를 따라 남대문 시장으로 가려는 계산이다.


“잠깐만, 한 가지만 물어보자. 저기 길 건너편에 있는 조그만 옛날 건물은 뭐야?”

데이비드는 교보빌딩 앞에 있는 전각이 궁금하다.



“고종황제 즉위 40년 칭경비인데, 속칭 비각(碑閣)이라고 해. 비석에는 고종이 즉위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바꾼 것, 그리고 황제로 칭하게 되고 독자 연호인 광무를 사용하게 된 것 등이 적혀 있지. 현판에 기념비전(紀念碑殿)이라고 적혀있어.”


“아.. 그거구나. 전당합각재헌루정 (殿堂閤閣齋軒樓亭).”


“기억력이 좋구만. 최고로 격을 높여 놓은 것인데, 저 앞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잘 모르기도 하고 별로 관심도 없어. 하물며, 예전에 핸드폰이 없을 때는 비각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종각에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많았지. 지금은 주위가 더 개발되어 큰 건물들이 많아진 탓에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잘 찾았네.”


“그래도 앞에 돌로 만든 문은 멀리서 봐도 꽤 괜찮아 보인다.”


“그러니 일제강점기에는 어느 일본사람 집 대문으로 썼었지. 나중에 복원을 해 놓았는데, 원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 아니야. 1960년대에 김 현욱 서울 시장이 지하도공사를 하면서 이 비각이 거추장스럽다고 하여 없애 버리려고 하다가 대강 복원을 한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도 아예 없애 버리지는 않았네. 없앴으면 저 자리에 또 하나의 표지석이 하나 남아있게 되었을 거 아니야. 불완전해도 저렇게 남아 있으면 좋지 뭐. 그럼 이만 이동하지..”


데이비드의 궁금증이 풀리고, 필립은 세종로를 동서로 건너 일민미술관 앞을 걸었다.


일민미술과, 이전 동아일보 사옥


"이 건물도 꽤 연식이 되어 보이는데?"

데이비드의 눈에 들어온 일민미술관 건물은 주변의 신식 건물과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특히 돌로 만들어진 건물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여서인지 작고 낡았지만 오히려 도드라져 보인다.


"일민미술관인데, 동아일보사에서 운영하는 사립미술관이야. 전에는 동아일보 사옥이었어. 그런데, 그 이전에, 그러니까 대한제국이 있던 1903년에 이 자리에는 명월관이라는 식당이 있었어."


'명월관은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걸어가면서 이안이가 명월관 이야기를 해주면 심심치는 않겠다."


"명월관은 궁궐의 음식과 잔치 등을 관리하던 전선사의 책임자로 있던 전선사장(典膳司長) 안순환이 궁중에서 나와 차린 식당인데, 서양 악단의 연주에 맞춰 기생들이 공연도 했다고 하더라. 원래 이름은 조선요리옥이라고 했던가..."


"지금의 극장식 바 같은 곳이었나 보네. 그런데 궁중요리를 먹을 정도의 손님들이 많았으려나? 먹고살기 어렵고 복잡한 시대였을 거인데..."


"그렇지, 명월관이 개업할 당시에는 일본의 간섭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러일 전쟁의 전운도 감돌아 분위기는 좋지 않았을 거야. 와중에 또 외국 사람들도 한성에 점차 많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좀 어수선했을 때인데, 안순환이 시대 상황을 잘 읽은 것 같아. 당시에는 변변한 식당, 괜찮은 호텔도 없었고 있었어도 위생적으로는 좋지 못해서 외국인들이 갈 만한 곳이 없었던 것 같아."


"그렇다면 안순환이 벤처 기업을 설립한 거네."


'어떻게 알았어? 데이비드가 꽤 똑똑한 것 같어. 사실 명월관은 기생 요릿집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었고, 당시 풍토에서는 벤처 산업 가운데 하나였다고 설명을 하기도 하지.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_ 일제 강점기 연예인이 된 기생 이야기, 신현규 지음, 어문학사)"


"생각해 보면 위생 문제는 심각했을 것 같긴 해. 소설가 김훈의 작품 <하얼빈>에 이런 내용이 있던데..."




이토는 서울에 처음 부임했을 때 똥 냄새에 질겁을 했다.

어른과 아이들이 길바닥에서 엉덩이를 까고 앉아 똥을 누었고,

집집에서 아침마다 요강을 길바닥에 쏟았다.

장마 때는 변소가 넘쳐서 똥덩이가 떠다녔다.

똥 냄새는 마을 골목마다 깊이 배어 있었고 남대문 거리, 정동 거리에도

똥 무더기가 널려 있었다.




"하긴 나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지나는 여기 청계천 주변과 종로 쪽에 빈대떡 집이 해방 후에 엄청 성행했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 청나라 사람들이 1885년경부터 수표교 주변에 거주를 시작하면서 청요리 장사를 했다는 것이야. 당연히 청요리에 필요한 돼지고기와 돼지기름 준비를 하려고 직접 돼지를 길러서 동네의 위생이 아주 나빠지는 바람에 한성부에서 골치깨나 썩어가며 관리 감독을 했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더라"


"그러니까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던 조선사람들이 보기에도 청나라 사람들의 위생 관념이 좀 거시기했던 모양이구만. 그래도 그 덕분에 빈대떡을 부칠 때 돼지기름을 쓰는 좋은 문화가 생긴 것 아닌가? 빈대떡은 역시 돼지기름에 부쳐야 제맛이지."


돼지기름 운운하는 모양을 보니 데이비드가 이제 빈대떡 맛을 알았나 보다.


"그런데, 명월관이 어쩌다 동아일보 사옥이 된 거야?" 데이비드의 궁금증은 끝이 없다.


명월관에 출연해 공연하눈 권번 기생들


"좋은 질문이구만. 그 또한 태평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 일본이 태평로를 만들 때 잘려나간 건물이 덕수궁만은 아니었어. 명월관의 일부도 잘려나간 거야. 그 때문에 명월관이 별관으로 인사동에 태화관(泰和館)을 세워 운영을 했지."


"태화관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유명한 이름이지. 삼일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곳이 거기야."


"태화관에서 술 마시다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고 하는 말이 영 실없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구만."

데이비드는 언젠가 태화관에서 술 마시다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고 하는 이야기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믿을 수 없었다.


"나도 그 시대라면 충분히 그런 분위기였을 수 있다고 봐. 게다가 민족대표들은 유학자들은 아니었지만, 공자님의 말씀 정도는 익히 알고 있을 정도의 사람들은 아니었나 싶어. 우리 문화 자체가 아무래도 유교적 배경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 않겠어?"


"유학과 술이 무슨 관계야? 공자님도 술을 엄청 드신 걸로 아는데... 그 유명한 공부가주(孔府家酒)도 공자의 집안에서 만든 술 아니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만. 논어 향당편(鄕黨篇)에 유명한 말이 있잖아.. 唯酒無量不及亂(유주무량불급란).. 뜻이 뭐냐면, 술을 마실 때는 미리 정한 한계를 두지 않지만, 몸가짐이 흐트러질 정도까지 마시지 않는다라는 것이지."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일리는 있네."


이안이 이야기를 들으면 좀 특별한 기분이 드는 필립이다. 사방에 똥이 널려있는 도시는 그 시대 일반적인 조선의 모습인데, 동시에 명월관이니 태화관이니 하는 고급 레스토랑도 존재했고, 지저분한 청나라 장사치들에 의한 환경오염 문제까지 관리 감독해야 할 필요도 있었던 조선 후기는 굉장히 다이내믹해 보인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구호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네. 오늘날의 글로벌 환경이라는 것 역시 전혀 새롭지만은 않은, 어찌 보면 인간 사회에서는 늘 존재해 온 보편적인 변화의 과정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해. 그러니 일본에 의한 조선의 근대화라는 식민사관은 역시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지나 온 과거가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과 같아."


"그렇네. 그런데, 그 과거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왜곡한 과거를 기억한다거나 다 잊어버렸다면 문제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말이 되는 것 같지 않아?"


"듣고 보니 또 그렇네. 그 또한 지금 우리 주변을 보면 잘 알 수 있구만. 결국 이렇게 똥은커녕 휴지 한 장 버려지지 않은 거리가 되지 않았어? 홍수를 방지하기 위한 대규모 청계천 준설도 오물을 치우고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일이었을 것 같기도 하네... 그런데 말이지.. 영조 때는 그 많은 흙과 오물은 다 어디로 버렸을까? 난지도 같은 것이 있지는 않았을 텐데??" 이안은 갑자기 청계천 바닥의 흙과 오물을 어디로 치웠을지 궁금해졌다.


"난지도는 아니지만, 비슷한 것이 그때도 있었어. 청계천 바닥의 흙을 퍼내는 것도 문제지만 운반을 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지. 그래서 아주 멀리 가져다 버리지는 못하고 동대문 밖에 쌓아두었어. 그 흙을 쌓아 놓은 것을 가짜산, 즉 가산이라고 했고 그 안에 굴을 파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해. 동대문 시장 쪽으로 가면 가산 터라는 표지석이 놓여있기도 해. 그 가산 안에 거지들이 살기 시작했다는데 조정에서는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말도록 뱀을 잡아 파는 권리를 주었기 때문에 뱀장수를 땅꾼이라고 불렀다는 것이지. 그 땅꾼의 우두머리를 깍쟁이나 꼭두쇠로 불렀다는 말도 있더라."


"아.. 서울깍쟁이? 그게 그건가?"


"글쎄다.. 그건 잘 모르겠다만 어쩐지 그럴 것 같기도 ㅎㅎ"


가산터 표지석. 가산은 조산이라고도 했는데 일제강점기에 꽃을 심어 방산동이라 했다고 한다..


데이비드는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빠른 문명의 발달과 함께 찾아온 불안감이라는 보편적인 세기말적 분위기를 조선 또는 대한제국 역시 피해 갈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모든 어쩌면 소소한 이야기들이 시대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수많은 감정들을 건드리며 끊임없이 아리에타를 불러왔고 이제 21세기 한국은 K자가 들어가는 많은 아리아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망상에 빠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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