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소공동 ‘왔다리 갔다리’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걸음을 했나 싶더니 벌써 서울 시청 앞의 넓은 잔디밭 광장이다. 아마 이런 잔디밭을 만들기로 할 때 시청 직원 몇몇은 잔디밭의 효용성과 기능성, 경제성 등의 기대효과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만드느라 고생이 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심에 이런 녹지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파란 잔디밭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잔디밭을 지나는 필립이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유다.



“에휴, 이 넓은 잔디 밭은 왜 만들어 놓은 거야? 잔디라는 식물은 열매를 맺지도 못해서 과일을 따 먹을 수도 없고 관리에 손만 엄청나게 가는 전혀 쓸모없는 것인데…”

데이비드가 뜬금없이 투덜거린다.


“잔디가 뭐 어때서? 보기에만 좋구먼.”


“니들 잔디 안 깎아봤지? 기계로 해도 그게 보기보다 엄청 힘든 일이라고. 덥기는 또 얼마나 더운 줄 알아? 난 잔디만 봐도 두드러기 날 것 같어. 이건 중세 시대에 귀족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라고 봐. 노예들이 잔디 깎았겠지.”


“뭐 그렇게까지 생각하나? 보기 좋으면 된 거지. 그리고 여름에는 잔디 덕분에 도심의 기온도 좀 내려간다고.”


“그거 관리하는 사람 생각은 안 한다니?”


“그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일을 하는 대가를 주지. 공짜로 시키나? 돈도 벌고 환경도 지키면 일하는 맛도 날 것 같은데. 데이비드 넌 집 앞 잔디 깎아도 월급을 받는 건 아니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거 아니냐?”


“아.., 내가 집에서 무료 봉사하는 노예라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였네. 돌아가면 와이프한테 맥주라도 내 달라고 해야겠다. 서울에 온 보람이 있구먼..”


“에혀, 야는 가끔씩만 똑똑한 것 같어. 시답지 않기는.. 어서 가지고. 해 떨어지기 전에..”




시청 앞의 플라자 호텔을 끼고 셋은 조선호텔이 보이는 소공로로 들어섰다.


"이 길이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워싱턴 D.C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방사형 도로의 하나구만. 그리 넓은 도로는 아니네."


"그래. 옆에 있는 조선호텔 자리가 원래 황제 등극 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조성했던 환구단이 있었던 곳이고, 환구단으로 가기 위해 새로 만든 길이기도하지."


사라지기 전 환구단. 왼쪽의 황궁우만 남았다


"언젠가 학교 후배랑 술을 마시는데, 그때 그 친구 딸이 초등학생이었거든.." 이안이 후배 딸 이야기를 꺼낸다,


" 그 후배가 하는 말이, 딸의 학교에서 선생님이 자기 동네를 포함해서 서울의 동 이름들의 유래를 알아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면서 나에게 그런 것을 어떻게 초등학생이 할 수 있냐며 투덜대더라고. 딸이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해줘서 체면을 구긴 모양이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되지 뭐..."


"그렇긴 한데, 그때만 해도 초등학생들이 핸드폰을 지금처럼 사용하지도 않았고, 후배 녀석은 아마 귀찮았을 거야. 대개 한국 아빠들이 좀 그렇잖아. 퇴근하고 오면 그냥 널브러져 버리기 십상이니.. 그런데 왜 그 이야기를 하는 거냐?"


"소공로, 소공동이라는 이름이 특이해서 옛 생각이 났어. 느낌상 여기도 유래가 있을만한 이름 아닌가?"


"아니 옛날 신문 찾아보는 취미 가진 이안이가 그걸 모른다니 뭔가 터무니없어 보이네."


"난 아는 것만 안다고. 모르는 건 그냥 모른다고 하지. ㅎㅎ 데이비드는 당연히 모를 테고 필립이 자네는 알고 있다는 투인데?"


"거 뭐 어려운 거라고 그러나. 평생 서울에 살면서 왔다리 갔다리하면 다 알게 되는 것을. 소공동이라는 이름이 왜 생겼냐 하면 말이지,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慶貞公主)가 살던 집이 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야. 소공주가 사는 동네라 하여 원래는 공줏골이라 했는데, 나중에 한자로 바꾸면서 소공동이라 한 거야."


"공줏골이 소공동이라는 명칭보다 더 정감 있고 좋은데?"


"서울에 그런 명칭이 많은데 병행해서 사용하기도 해. 예를 들면 서초구의 내곡동(內谷洞)을 안골마을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처럼.."


"그래 고유의 명칭이 있으면 가급적 더 쓰는 것이 좋을 것 같기는 해. 그런데, 필립이 너도 조금 전에 이상한 일본어를 쓰던데?"


"내가 언제 일본어를 썼다는 거야? 난 일본어 할 줄 모르는데.."


"조금 전에 왔다리 갔다리라고 했잖아. 분명히 그렇게 말하셨어요."


"그게 일본어라고? 당최 뭔 소리를 하는 거냐?"


"그러게. 그게 일본어야? 비록 요새는 잘 안 쓰는 말이지만 예전에는 일상적으로 쓰던 말인데.." 데이비드도 이안이 뭔가 오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바로 그거지, 일상적으로 쓰는 말 중에 일본어가 많다는 것은 알고들 있지? <왔다리 갔다리>라는 말에 <왔다리>라는 말이 일본어인 거야."


"어슬렁대며 오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야?" 데이비드는 이안의 설명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필립 역시 같은 생각인데...


"일본 문화 하면 뭐가 제일 먼저 생각나지?"


"글쎄.. 국화와 칼? 사무라이? 뭐 그런 것들 아닐까 싶네만.."


"그렇지. 일본 축구대표팀은 사무라이블루라고 하고 서포터스는 울트라니뽄이라고도 하니 무사 문화가 대표적인 것 같네."



"답이 다 나왔군. 왔다리라는 말 역시 사무라이 문화에서 비롯된 거야. 일본사람들은 꽃 중의 꽃은 벛꼿. 사람이라면 자고로 무사라는 일종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무사의 주종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같아서 오야붕과 꼬붕이라고 하잖아. 오야붕을 한자로쓰면 친분(親分)이라고 해서 어버이 친(親) 자를 쓰고, 꼬붕은 한자로 자분(子分)으로 아들 자(子)를 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겠지?"


"그런데 왔다리하고 뭔 관계가 있는 건가?"


"예전에 대망(大望)이라는 일본 대하소설이 한국의 정치인과 경제인들의 애독서였던 때가 있었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 기억으로는 꼬붕들 중에 기회를 봐서 주군을 바꾸는 무사들이 있었단 말이지. 그들을 와타리(渡り) 또는 와타리모노(渡り者)라고 해서 일정한 주군 없이 여러 주군을 전전하며 봉직하는 무사나 하급 사무라이를 일컫는 말이야. 현대 일본어에서는 뜨내기로 고용 살이를 하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네."


"프리랜서네 그럼. 전문직."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하여간, 왔다리 갔다리의 왔다리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란 뜻이야."


"조선의 공주님이 살던 곳에서 일본어가 난무하누만. 하긴, 일본어를 알면서도 쓰고 모르면서도 쓰는데 왔다리는 정말 몰랐네."


"그런 것 정말 많은데, 예전에는 그게 좀 문제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봐. 어차피 문화는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지도 않고 결국은 섞이게 마련이고, 또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언어를 통한 표현 방식도 넓어지고, 결국 서로 공감도 하게 되고 그런 거 아닌가 싶어."


"그것도 말은 되네. 생각해 보면 여기 소공동길에도 일본말이 꽤 많이 걸려있던 적이 있지. 지금도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는데, 이 동네가 예전부터 고급 양복점들이 많이 있던 거리였지 않나? 그때는 간판들이 대개 OO라사라고 되어있었던 기억이 나. 라사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것도 낭만과 같은 일본어더라고."



"그래? 난 라사가 비단 라(羅)와 비단 사(紗)를 쓰길래 고급 직물을 뜻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구만."


"무슨무슨 라사라는 가게 이름은 너무 옛날 말 아니냐? 나도 미국 가기 전에 많이 본 것 같은데..."


"아직도 좀 있지. 사람들이 예전처럼 양복 정장을 잘 안 입게 돼서 맞춤 양복점들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장인들이 남아있어요.. 이 근처에도 아직 장인이 운영하는 전통 있는 양복점이 꽤 있다고. 하여간 <라사>는 원래 포르투갈어 'Raxa'에서 온 건데, 16세기 무렵에 일본으로 건너간 포르투갈인들이 서양의 모직물을 ‘라샤(Raxa)’라고 호칭하는 것을 들은 일본인들이 그 직물의 이름을 한자로 ‘羅紗’라고 표기하면서 조선 말기에는 서양에서 유입된 직물을 라사라고 부르기 시작한 모양이야."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에서 애신이 코트를 이 동네 라사에서 맞추지 않았나 싶네. ㅎㅎ"


"데이비드 너도 한국 드라마 많이 봤구나. 아마도 그렇겠지? 그때 서울 아니면 양복을 어디서 맞췄겠어?"


"나도 그 드라마 빼놓지 않고 봤는데, 이 동네가 맞아. 그리고 그 시대에는 사실 여기부터 남산 자락까지가 일본 자본이 들어와 있던 장소라서 아직도 일본의 흔적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지. 남대문 시장은 일본 자본의 침략에 가장 최전선에서 대항을 하던 전위대였다는 사실도 이제부터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남아있는 흔적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주변에는 은행들이 굉장히 많아서 예전에는 은행거리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점을 알아두기 바래."


1899년 대한천일은행 본점. 황실 자금과 상인들의 자금을 기반으로 만든 민족자본 기반의 은행으로 일본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


"그래? 어차피 남대문 사장에서 한 잔 하기로 한 것이니 가서 이야기하지 뭐. 이곳이 정녕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의 중심이었단 말인데, 한 잔 하면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구."


데이비드는 한 잔 할 생각에 갑자기 기운이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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