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숭례문전시효개 칠파인어격성래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남대문 시장이 가까워지자 데이비드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디로 가는 줄은 알고 그리 빨리 가는 게야? 날 따라오는 게 좋을 듯한데..."


이안은 고급 요릿집은 아니지만 60년 전통의 노포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돼지고기 육수의 이북식 냉면과 닭 무침을 안주로 소주 생각날 때 가끔 가던 식당이 어떨까 싶은데, 괜찮겠어?"


"남대문 시장에서 60년 전통의 식당이라면 상당히 다양하고 많은 정보가 모인 곳이겠구먼. 남대문 시장의 데이터 플랫폼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데이비드는 서울의 진짜 모습 중의 하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면서도 들뜨는 느낌이 좋다.





"사장님, 닭무침 하나, 제육무침 하나, 빈대떡 1장, 냉면 3개, 그리고 소주 두 병이요~~"


필립도 이미 여러 번 와 본 모양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이 거침없다.


"이렇게 큰 재래시장이 시내 한 복판에 있으니 좋네. 남대문 시장이 원래 여기에 있었다고 했지 조선시대부터?"


"이야기했었지만, 원래 남대문 시장은 새벽에 문이 열리면 상인들이 들어와서 장이 섰다가 없어지는 시스템이었고, 남대문 밖에 칠패라는 곳에 시장이 있었다고 해, 대략 지금의 염천교 사거리와 서울역 부근이었던 것 같은데... 특히 생선 같은 어물이 많이 거래되었다고 하더라."


필립은 덕수궁에서 설명했던 장시와 시장의 차이에 대해 한 번 더 설명하며 칠패 시장에 대한 설명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조선시대의 칠패 시장과 현재의 위치 비교



"생선을 팔았다고? 노량진 수산시장처럼?" 데이비드는 생선을 팔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생각한다.


"그랬던 것 같아, 지금은 없지만 당시에는 가까이에 마포나루터가 있었으니 꽤 신선한 생선을 살 수 있었던 모양이야. 정약용의 시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거든.."


"정약용이 생선으로 시도 지었어? 생선을 많이 좋아했던 모양이네 ㅎㅎ 그래 어떤 생선이 좋다고 하셨나? 강에서 잡은 생선이면 가물치 같은 것이려나? 가물치가 그때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마침 주문한 음식과 소주가 나왔다.


"필립이가 시를 읊기 전에 소주 한 잔씩 하자고. 작금이 낭만의 시대인 것은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하네.."




崇禮門前市曉開 七坡人語隔城來

숭례문전시효개 칠파인어격성래

携値小婢歸差晩 能得新魚一二枚

휴치소비귀차만 능득신어일이매


"이게 뭔 말이냐면...


'숭례문 앞 저자가 이른 새벽 열리어

칠패 사람들의 말소리 성 너머로 들려오네.

바구니 들고나간 계집종이 조금 늦는 걸 보니

싱싱한 생선 한두 마리 구할 수 있겠구나'라는 뜻인데...


정약용의 문집인 여유당전서 (與猶當全書)의 시문집에 들어있는 춘일체천잡시(春日棣泉雜詩)라는 시의 한 구절이야. 남대문 앞 새벽 시장과 칠패시장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지 않아?"


데이비드는 실로 오랜만에 한시를 들었다. 소주 한 잔과 어울린 시가 마치 노랫소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마음속에는 새벽부터 시장이 열려 시끌시끌한 모습과 조선의 왕이 아침마다 이 소리에 잠을 깨서 내관들을 엄청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싶은 걱정이 겹쳐 살짝 지나간다.


"그래서 내관들이 궁에서 멀리 떨어진 남대문 밖에 시장을 만들었나 보구먼, 잠 좀 자자 하면서 말이야."


데이비드의 실없는 소리는 우스웠지만, 이안은 언젠가 신문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한양은 정도전이 유교에 근거한 도시공학을 기반으로 설계했다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 여하간 도시에서 시장의 위치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책에서 정하고 있었지. 다만 정도전은 시장에 대해서는 그 책을 따르지 않았어.”


"시장의 위치까지 정해놓았다는 건 좀 이상한데?"


"지금 시각으로 보면 이상한데, 그때는 유교 철학이 모든 것을 지배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지. 종묘사직 같은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봤지? 그런 것들과 같은 맥락이야."


"종묘사직과 같은 맥락이라??"


"춘추시대에 중국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내용을 적어놓은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라는 책이 있어. 내용 중에는 도시계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절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해. 그중에 전조후시(前朝後市) 좌묘우사(左廟右社)라는 기준이 있어. 궁궐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행정 부서와 같은 조정(朝廷), 궁궐 뒤에는 시장을 둔다는 것이지. 그리고 왕실의 사당인 종묘는 궁궐의 왼쪽, 즉 동쪽에 두고 곡신과 토신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은 오른쪽, 즉 서쪽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야. 서울의 종묘와 사직단이 경복궁을 기준으로 이렇게 배치된 이유이기도 하고, 경복궁 앞에 행정 부서인 의정부가 있었던 것도 이것에 근거한 것이란 말이지. 그런데, 유독 시장의 경우에는 유교에서 정한 도시 공간 배치에 맞지가 않아. 종로의 시전이나 남대문 시장이나 모두 궁궐 앞에 위치하고 있거든."


“그럼 시장의 위치는 왜 고공기에 따르지 않은 것이야?”


“일부러 따르지 않은 것인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고대에는 자급자족을 하는 농촌 경제가 지배적인 시스템이었고 화폐 경제는 한 참 후에 생겼잖아. 조선과 같은 왕국은 왕이 주인이고, 주권도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와 달라서 국민에게 있지 않고 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서 그랬던 모양이야."


"그게 뭔 말이냐? 일단 한 잔 받고..."


걷느라 목이 말랐던 탓인지 닭무침은 눈으로만 맛을 보고 소주는 벌써 서 너 잔이 오고 갔다. 아릿한 위장이 닭무침을 애타게 부르는 탓에 젓가락이 절로 간다.


닭무침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재료인데 맛이 특별하지 않아? 아는 맛인데 또 다른 좋은 맛이야!"


"그래서 오자고 한 것이지. 간단해 보여도 집에서 하면 이 맛이 안나더라고. 하여간, 그래서 왜 정도전이 책에서 가르쳐준 대로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한 거야?"


"아..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말이지... 지방에서 현물을 징수해서 우선 궁궐에서 소비를 하고, 남는 것을 시장을 통해 분배했던 고대적 물자 유통 방식이 시장을 궁궐 뒤에 두게 된 이유라고 하는데, 정도전은 어쩌면 고려의 귀족사회를 끝내고 사대부 기반의 조선 창업과 천도 작업을 하면서 상징적으로 기존 질서의 일부를 뒤엎어 버린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겠냐? 백성먼저 먹고 남는 것을 궁에서 먹는 걸로 ㅎㅎㅎ 물론 이건 내 상상일 뿐이고 정도전이 이유에 대해서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아. ㅎㅎ”


소주는 이야기와 함께 본격적으로 혀와 머리를 희롱하려 더욱 달려들지만, 오래 걸어 혈액 순환이 잘 된 덕분인지 취기가 오르는 대신 머리는 오히려 맑다. 물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시간 속에서 존재한다고 하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존재했음을 알게 되니 해가 지는 이 시간이 내가 오늘도 존재했음을 인정해 주는 신성한 순간이다. 그 순간은 늘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들에 대한 궁금증이 펼쳐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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