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좌판에서 창고로 또 시장으로, 그리고 북창동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소주 한 잔 들어가니 닭무침의 맛이 더 깊게 느껴지지 않아?"

필립은 데이비드의 닭무침 경험이 궁금했다. 이런 음식은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이게 어떻게 보면 치킨 샐러드 같은데, 샐러드와는 달라. 묵직한 요리 같단 말이지.“


"고추장과 소주 때문일 거야. 샐러드를 소주랑 먹지는 않지"


"그런가.. 하여간 맛 표현은 참 어려워. 근데 그 고독한 일본인은 잘하더라고. 엄청난 재주야.."


"아..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고로상을 말하는구만. 나도 가끔 보게 되는데, 남 밥 먹는 걸 왜 보나 싶으면서도 넋 놓고 보고 있더라고."


"이안이도 보는 모양이구만. 어릴 때는 남 밥 먹는 거 쳐다보면 추잡스럽다고 야단맞았었는데.. 그럼 넉 놓고 보는 이안이가 고로상처럼 맛 표현을 해 보지 그래?"


"일부 패턴이 있긴 하지."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온 고로)

"여기가 우리 일본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 한 남대문 시장이군."

(남대문 시장 골목을 걷다 OO면옥 간판 앞에 멈춘 고로)

"시장 골목 안에 이런 집이 숨어 있었군... OO면옥... 이름부터 꽤 묵직하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들여다보다가 ‘닭무침’을 발견한 고로)
“닭무침... 생소한 이름인데... 닭고기를 무쳐냈다는 건가?
차가운 듯하면서도, 매콤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걸로 하지.”

(잠시 후, 스테인리스 보울에 담긴 닭무침이 나옴)

“오... 이 비주얼... 야채와 닭고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양파의 아삭함, 그리고 그 위를 뒤덮은 저 고추장 양념...
무심한 듯 퍼부은 이 고추장 소스가... 예사롭지 않다.”

(한 입 먹은 후)

“아... 이거다.
처음엔 달큰하다가, 이내 매운맛이 혀를 두드린다.
하지만 그 매움이 사납지 않다.
닭고기는 차고 부드럽고, 양파는 아삭하고,
무쳐낸 양념은 중독성 있다. 젓가락이 멈추질 않아...”

(냉면 한 젓가락 추가로 먹으며)
“닭무침에 냉면... 이 조합, 이런 시원하고 화끈한 음식이라니...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고로)
“닭무침...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다.
시장 한복판에서 만난 이 한 접시,
한국인은 역시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안이가 그 프로그램을 많이 보긴 했구먼.. 느낌이 비슷하네.. ㅎㅎ"


"그런데, 일본이 남대문 시장을 왜 그렇게 가지고 싶었다고 한 거야?"

데이비드는 일본이 남대문 시장을 가지고 싶어 했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그랬나? 이유가 있지. 미국 공사관이 정동에 들어오기 전까지 외국인들은 사대문 안에서 거주를 못하도록 했었어. 그러니까 조선 시대에는 외국인들이 도성 안에 들어와서 살지 못하게 한 것이야. 그리고 일본인들은 저기 남산 쪽과 진고개라고 해서 지금의 충무로 쪽에 모여 살도록 했지. 덕분에 아직도 이곳에서는 일본의 잔재가 남아 있지."


"아. 그래서 경성 3C라고 했던 것 중의 하나인 조선 신궁이 남산에 있었던 모양이네."


"그건 불법 합병 이후에 생긴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남산 쪽에 일본인들이 많이 있었던 것은 맞아. 하여간, 처음에는 일본인들이 많지 않았지만 점점 많아져서 한일 합방 당시에는 경성 인구의 14%가 일본인으로 채워졌다고 해. 그리고 지금의 충무로와 명동 지역까지 세력을 넓히게 되었어."


"그래서 김두한이 일본 야쿠자와 주먹다짐을 할 당시 일본 야쿠자 본거지가 혼마찌라고 부르던 지금의 충무로와 명동 쪽이었던 모양이네." 필립은 예전에 본 영화인 야인시대가 생각났다.


일제 강점기의 혼마찌. 지금의 충무로 부근..

"그렇게 보는 게 자연스럽긴 해. 그런데 그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와서 사업을 하기에는 명동과 충무로는 너무 작았던 거야. 아직 청계천을 건너 북쪽으로 진출할 정도의 세력은 안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대문로를 따라 시장 쪽으로 상권을 넓혀가기 시작했어. 그런데 내가 이해하는 남대문 시장은 굉장히 한국적인 곳이어서 일본인들이 영향력을 미치기 어려웠을 거야. 어쨌든 일본인들이 야금야금 이 지역을 잠식해 들어왔어. 어떻게 들어왔을 것 같아?”


"글쎄.. 그때는 상설시장이 아니었다고 했으니 상가 건물 같은 것을 샀을 리는 없고... 땅을 샀나?"


"비슷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성부의 인구가 대략 30만 명 정도였다고 하더라고. 30만 명이면 시장이 번창하고 상설 점포가 생기기에는 충분하지. 남대문 시장에도 따라서 하나둘씩 상설 점포가 생겼는데, 자본이 없는 상인들이 만들 수 있는 상설 점포는 남대문로를 따라 조성된 가가(假家)라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것이야. 지금의 말로는 무허가 가건물 같은 것이었지. 초가로 된 허름한 형태로 화재의 위험도 가진 가건물이었고, 좌판을 깔고 장사하던 사람들도 그런 가가(假家) 앞에 좌판을 깔기 시작했을 거야."


"일본인들이 그 가가(假家)라는 것을 사들이기 시작했구먼."


1880년대 남대문로의 가가(假家)


"맞아, 그러자 한성부에서는 남대문로가 점점 좁아져서 왕의 행차가 어렵다는 이유로 가가(假家)를 철폐해 버리고, 신식 건물을 지어 관리하면서 일본 자본의 침투를 막았지."



단 한채만 남은 한옥 상가. 지금은 카페로 사용 중이다


"그럼 원래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다 어떻게 된 거야? 졸지에 일터가 없어진 것 아닌가?"


"데이비드 말대로 원래 그곳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일터를 잃은 것은 맞아. 대신에 선혜청이라는 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단 말이야."


"선혜청이라면?"


"선혜청은 광해군 때 대동법을 시행하면서 세금을 쌀이나 돈으로 받던 곳인데, 그곳에 창고가 있었단 말이야. 거기에 시장이 생겨서 창내장(倉內場)이라고 했어. 이제는 지금처럼 어엿한 상설 시장이 모양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한데, 상인들이 들어와서 돗자리를 깔고 장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도떼기시장'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기도 하더라."

선혜청내 창내장 (카를로 로세티 촬영)


"그 선혜청이 이 근처에 있었던 모양이구만."


"숭례문 옆에 있었던 것 같아. 그곳에 가면 선혜청터라고 하는 표지가 있지."



"겨우 표지판 하나만 남고 다 사라진 거구나.. 조금 아쉽긴 하네..'


"건물은 없어졌지만, 선혜청이라는 것과 관련된 흔적은 이 동네에 남아있지."


"필립이가 하는 말은 뭔가 남아있어서 사람들이 기억을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렇지. 남대문 시장 앞에 남대문로가 있잖아? 그 도로 건너편 동네 이름이 북창동이거든. 북창동이라는 뜻은 창고의 북쪽에 있는 동네라는 말이니까, 이곳에 창고, 즉 선혜청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잖아."


"북창동이 그런 내력을 가진 동네였구만. 나는 LA에서 북창동 순두부집은 간혹 갔는데, 그 북창동인지 몰랐네."


'그 북창동 순두부는 원래 시작이 LA인데, 북창동의 내력이나 물어보지 그랬냐?"


"그러게 말이다. 앞으로는 동네 이름부터 알아봐야 하겠어. 오늘은 전통 시장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의 음식에 소주를 기분 좋게 취하게 마시고 있으니 몇 백 년을 거슬러 와 있는 것 같어. 그래서 그런가 나 같은 여행자들이 그 당시에 조선에 오면 어디서 묶었을지 궁금하네.."


"그건 내일 또 이야기해 보고, 오늘은 그저 조금 더 마시고 푹 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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